아동발달 학교심리
신기한 일은, 어린이들은 늘 시험 결과를 궁금해한다. 아니 기대한다고 보는 게 맞다. 100점을 맞았을 거라고, 결과가 좋을 거라고 기대한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듯 시험결과를 기다린다.
“선생님! 시험 결과 언제 나와요?”
“2교시에 시험 보고 지금까지 수업했는데 채점할 시간이 없었지.”
“그러면 오늘? 내일? 나와요?”
어린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빨간펜을 집어 든다. 언제부터 색연필은 잘 쓰지 않는다. 주관식 오답의 경우 어린이들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 첨삭을 하기 위함이다.
-과학 교과서 79쪽 참고!
-참 아름다운 답이다. 하지만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한 원인은 교과서 87쪽 참고해서 3가지!
-위 지문 3문단의 2번째줄. 국어 답은 지문에서 찾기!
-누가? 주어 쓰기
-~다. 이렇게 문장으로 마무리하기
-문제를 풉니다!
동글동글 동그라미를 그리고 아픔의 빗금을 내리고 첨삭을 하다 보니 나의 모나미 빨간펜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좀 더 써보겠다고 이면지에 직직 그어보지만 여지없다. 입구를 분리해서 심지에 빨간색 잉크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작별을 고한다. 안녕. 너도 다 했구나. 하지만 나는 준비된 자! 연필꽂이에서 파란색 모나미를 꺼내 채점을 계속한다.
선생님의 펜은 언제나 빨간색과 파란색이 먼저 닳는다. 언제부터인지 삼색볼펜을 쓰지 않는다. 빨강과 파랑이 없고 검정만 남은 삼색펜은 이미 그 쓰임이 다 한 느낌이다. 평소 스케줄을 정리하거나 업무를 할 때 연필을 좋아하는 나는 더욱 그렇다. 선생님은 빨강과 파랑 둘 중 하나로 어린이들에게 간다.
“우와! 결과 나왔다!”
시험지를 들고 교탁 앞에 서자 어린이들의 동그란 눈이 더 동글동글 커진다. 두 손을 맞잡고 기대의 눈빛을 보내는 현우도, 두 눈을 가리고 호들갑을 떠는 연서도, 옆으로 앉아 짝인 지원이의 손을 붙잡고 100점을 기원하는 선우도, 뒤를 돌아 앉아 한빈이와 발을 동동 구르는 경원이도, 뭐 그쯤 별거 아니라는 움직임 없는 몸에도 염원의 눈빛을 내게 보내는 하윤이까지. 이 순간 어린이의 기대를 담은 아우성은 네모난 교실보다 크다.
오늘도 역시나 시험을 잘 본 하윤이는 아무 말 없이 시험지를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제 마음에 혼자 보낸 후 시험지를 접는다. 하윤이의 그런 매너와 배려에 나는 하윤이를 존중한다. “아! 또 빼먹고 풀었어!” 간혹 한 문제씩을 빼먹고 문제를 푸는 연우의 탄식에 나는 “연우야~연우야~눈 똑바로 떠야지! “하고 오른손가락을 브이로 만들어 내 눈에 한번 연우의 눈에 한번 날려준다. 쌍둥이 형제인 슬찬이는 시험지를 먼저 받고 제 점수를 확인했다. “예! 1개 틀렸다!” 동생인 유찬이가 시험지를 받고 좋아하자 슬찬이 표정이 약간 일그러진다. 슬찬이의 마음이 안쓰럽다. 서로 잘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걸 자주 말해주지만 실망을 갖는 건 어쩔 수 없다. 실망이 슬찬이에게 원동력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잔뜩 기대해 놓고 시험지를 나눠주니 여기저기 풍선에 바람 빠진 소리들이 들린다. 그중 이 말은 관용어구인가 싶게 자주 들리는 말이다.
“초등학교 공부는 다 필요 없다고 그랬어. 중학교 가면 진짜 성적이래요. “
아직 중학교를 안 가본 어린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니 어디서 들어본 말이겠지 싶다. 나도 쉽게 들리는 말인데 오늘따라 이 말이 내 마음을 붙들어놓는다. 나는 뿌듯한 하윤이도, 아쉬움에 마음이 푹 내려앉은 연우도, 실망에 마음이 흔들린 슬찬이 가 보인 순간의 진심을 본 사람이니까. 과연 정말 이 마음들이 아무것도 아닌 걸까. 이 진심들이 보잘것없는 것일까.
“어린이들, 초등학교 공부는 정말 필요가 없을까요?”
“그렇대요. 중학교 가면 진짜래요. “
“그러면 우리가 매일 아침에 잠을 쫓고 학교에 와서 하는 일은 쓸데없는 일인가요? 그러면 우리나라는, 여러분의 부모님은, 그리고 선생님은 이 무용한 일을 위해 왜 애쓸까요? “
“...”
“이유는 하나예요. 여러분이, 어린이는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영양소를 골고루 먹어서 건강한 몸을 키워내는 것만큼 골고루 배워서 균형 있는 인지능력을 키우는 건 중요해요. 여러분은 지금 자라고 있잖아요. 국어를 공부할 때 읽고 이해하고 생산하면서 문자로 분석하고 상상하는 생각하는 힘이 길러져요. 수학을 공부할 때는 숫자잖아요. 정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분류하고 a가 b고 b는 c니까 a는 c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의 힘을 기릅니다. 과학도 그래요. 세상을 관찰하고 설명하며 우리 세상을 알아가고, 왜 그런지 탐구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경험해요. 20번 시도하면 1번 겨우 성공합니다. 그 과정에서 귀납적 사고와 문제해결력을 쌓아갑니다. 사회는 왜 배울까요? “
“역사를 알아야 하니까요. “
“그렇죠. 역사를 알아야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죠. 경제를 배우고, 정치를 배워야 내 생각을 사회에서 펼칠 수 있어요. 게다가 사회 안 배우잖아요? 그러면 사기당해요. “
“에이, 선생님~~”
“여러분의 키는 유치원 때의 키, 작년의 키에 더해서 오늘의 키가 되었죠. 초등학교 공부도 마찬가지예요. 초등학교는 각 생각하는 힘의 토양을 만드는 시기예요. 문해력, 상상력, 논리력, 문제해결력이라는 토양의 자리를 잡아주고, 골고루 공부하며 양질의 양분을 탄탄히 뿌려 비옥한 토지를 만들어주는 시기예요. 이 기본을 하지 않으면 양분이 부족한 토양이 됩니다. 아무리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해도 뿌리를 튼튼히 잡아주지 못하거나 힘이 부족한 토양이 될 수 있어요. 그때 토양의 기본을 잡아주려면 밭을 갈아엎어야 할지도 몰라요. 더 큰 노력이 듭니다.
초등이 영어로 elemental school이에요. elemental은 ‘근본적인’이라는 뜻이에요. 오늘도 여러분은 학교에서 여러분의 성장에 근본적인 토양을 마련해 주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의 배움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세요. “
초등학교는 근본적인 삶의 태도를 빚는 곳이다. 각 과목들을 배우며 인지적 영역의 토양을 개간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부, 관계, 체험활동에서 나의 강점과 약점을 발견하며 자기 개념의 영역도 개간한다. 친구와 가족, 학교라는 사회에서 자신의 정서와 행동을 조절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친사회적 태도의 토양도 갈고닦는다. 더듬더듬 리코더 연주를 배우면서 마음대로 안되어 눈물을 흘리면서 연습해서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하고, 6가지 매트동작을 연결하여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내며 안되던게 되어지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이런 낙관을 모아 끈기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간다. 신체적 영역의 건강한 발달 역시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각 영역의 토양을 개간하여 자리를 마련하고 배움을 통해 인지와 정서, 신체적 발달 과정에서 경험한 뿌듯함과 실패경험, 끈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다시 시작하는 회복탄력성을 통해 발달의 토양을 만드는 곳이 초등학교이다. 이 근본적인 활동이 균형 있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양질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나는 우리 어린이들이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태양이 쨍쨍하고 물도 흠뻑 충분한 날엔 뛸 듯이 기뻐하며 제 잎과 열매와 꽃을 힘껏 피워내며 순간을 즐기기를 바란다. 살다가 날이 흐리고, 비바람이 몰려오고, 홍수가 나고, 가물 때를 만나 주저앉아질 때에도 그들의 뿌리를 다정하게 잡아주는 비옥한 토양이 있어주길 바란다.
우리 어린이들은 오늘도 연필을 들고, 다정한 말을 건네고, 뛸 듯이 기뻐하고 세상이 접힌듯 처절히 실망하고, 안되던 일이 내 눈물과 노력으로 되어지는 신비를 경험하며 제 토양을 갈고닦는다. 윤기 나는 갈색의 토양에 틔워진 초록싹들은 날마다 쨍쨍하고 싱싱한 잎을 뽐낸다. 여기에 고랑을 파봐 하며 한 마디 보태는 것도, 때론 이건 뽑아야지 하며 채근하는 것은 나의 일이다. 무엇보다 기쁜 나의 일은 초록의 뽐을 보는 것이다. 근본적인, 기본적인 토양을 만드는 과정에 내가 함께할 수 있다는 영광을 기억한다. 어린이들에겐 무용한 하루는 없다. 쓸데없는 오늘은 누구에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