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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학교에서 행복하다

사회정서학습 긍정심리 학교심리

by 주윤

일요일 오전, 대청소를 끝내고 창을 열어 봄을 집으로 들였다. 앞 베란다도 활짝. 마주 보고 있는 부엌 창문도 활짝. 맞바람이 오고 가도록 힘껏 창을 열었다. 거실의 블랙테이블에 새로 산 반원 글라스의 와인잔도 놓았다. 빛나는 상아색의 봄이 찰랑찰랑 와인잔에 담겼다. 와인잔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명랑한 기포에 내 마음도 함께 들떴다.



창밖은 사월의 초봄. 어제까지만 해도 올해는 꽃이 늦네. 하고 안달 났던 내 마음이 무색하게 창밖은 꽃대궐이다. 땅바닥엔 손톱만 한 연두들이 간질간질 땅을 갈질이며 퐁퐁 돋았다. 허리춤에는 찬란한 노랑 개나리가 노랑! 노랑! 하고 제 빛으로 봄을 환하게 밝힌다. 발그레한 분홍 뺨을 가진 투명한 하얀 벚꽃이 봄의 파스텔 하늘에 꽃자수를 놓았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하늘하늘 내리는 하얀 꽃잎은 덤이다.



여리여리한 수줍은 색들이 온 세상을 채우는 계절, 봄. 노랗게 웃고, 연두로 웃고, 분홍이 웃는 봄. 그 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봄이 오는 만큼 내 행복도 노랑으로, 연두로, 분홍으로 살랑살랑 불어온다. 이 봄의 향연 앞에 나는 봄을 닮은 여리한 황금빛 까바 한 병을 들고 앉았으니 오늘은 다 했다.



나만 좋아하는 일을 한 건 아니었나 보다. 오늘도 기어이 지구가 돌아버렸다. 지구에겐 휴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지구는 도는 것을 꽤나 좋아함에 틀림없다. 아니면 지구는 한 시도 쉬지 않는 워커홀릭. 아니다. 이렇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늘 하는 걸 보면 지구는 돌 때마다 행복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좋아서 하는 일. 그걸 당해낼 재간은 없으니.



기어코 일요일 밤이 와 버렸다. 내일이 있는 사람에겐 슬픈 시간. 좋은 오후를 보냈으면 좋은 오후였어서 서운하고, 아무것도 안 해서 아쉬운 오후를 보냈으면 허망해서 슬픈 시간. 슬픔의 이유는 달라도 기운이 빠지는 건 같은 시간. 서로를 다독일 시간.



"아, 내일이 월요일이다."

침대에 누우며 한숨과 함께 나직이 나오는 말에 남편도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크게 숨을 쉰다.

"엄마! 전 좋은데요!"

응?! 좋다구? 지금? 일요일 밤에? 내일이 월요일인데? 내일은 또 시작인데? 매일 아침 일어나기 싫어해서 아빠가 입에 넣어주는 과일을 씹으면서 일어나는 네가?



처음 민트초코를 입에 넣었을 때의 생경함이 이런 걸까? 나를 맥이는 걸까? 그만큼 유머러스했던가, 나의 열 한 살이? 모든 의심을 눈에 담느라 한없이 팽창한 나의 눈으로 열한 살을 본다. 이불을 덮고 만족스럽게 웃고 있다. 진짜? 진심? 정말? 사실?



"엄마, 학교가잖아요. 저는 학교 가면 좋아요. 친구도 있고, 공부도 하고, 배우고, 놀기도 하고."

"아......"

그 순간 우린 같은 장소 다른 공간에 있었다. 학교가 좋구나. 아, 그렇구나. 그럴 수 있구나.



학교는 오랜 시간 해야 할 곳이었다. 해야 할 일이 시작된 곳이 학교였기 때문이다. 동네 골목에서 고무줄 하며 놀고, 비사치기 하며 놀고, 자전거 타고 놀다가 여덟 살이 되어 학교를 가게 되면서 놀이는 오후로 미뤄졌다. 좋아하는 것들을 뒤로 미는 법을 그때 배웠다. 해야 할 일 때문에. 그때부터 학교는 원흉이었다. 학교 때문에, 학교 가야 하니까. 학교는 좋은 탓이 되어 주었다. 학교 탓을 하면 이해받았다.



학교 탓을 해서 좋은 점은 그뿐만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학교라는 적이 있어 핍박받은 내 좋아하는 것들은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자습시간에 몰래 나와 혼자 영화 보는 희열, 야자 땡땡이치고 나와 떡볶이 먹고 시내에 구경 갔던 재미. 지긋한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모여 피자가게에 가서 샐러드를 퍼먹으며 깔깔대던 기억. 쉬는 시간에 본관 1층 커피 자판기 앞에서 쓸데없는 농담을 하던 시간. 싫은 학교 때문에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런 내 마음을 반영해 주듯 실제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행복은 처참한 수준이다. 2024년에도 OECD 가입국 중 우리나라 어린이의 행복은 최하위였고,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그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시험, 성적과 같은 성취 상황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학교가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험과 성적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하니까. 역시 학교가 문제다.



조사결과를 자세히 보았다. 아동종합실태조사의 재미있는 결과는 아동의 행복이 처참한 수준임을 밝혔던 동일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어린이의 학교생활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라는 사실이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스스로 성취를 한다고 느끼고, 즐거운 기분을 자주 느끼며, 친구들과 잘 지낸다고 말한다. 학교가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지금 어린이들에게 학교는 해야 할 일로 가득한 곳이 아닐 수 있다. 우리 세대가 겪은 과거의 눈으로 오늘의 학교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 그 비판의 눈 덕분에 오늘의 학교 만족이 이루어진 것도 주지의 사실이 분명하다. 고마운 일이 맞다. 다만, 봄의 마음으로 봄을 살고, 가을의 마음으로 가을을 살아야 하듯, 지금을 보는 시선도 중요하다.



자세히 보면 예쁜 구석이 있다. 학교도 그렇다. 오늘도 교실에서는 어린이들이 연극을 하겠다고 대본을 들고 대사를 연습한다. 수학시간에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가느다란 연필에 제 생각을 전달한다. 내가 자랑스러웠던 일에 대해 열 두줄의 글을 쓰며 나를 돌아본다. 점심시간에 매일 갓 지어진 5~6첩 반상을 두 손에 받아 따뜻한 온기로 허기를 채우며 맛있는 감사함을 표현한다. 운동장을 뛰어 숨차하면서 발그레한 볼로 흥분된 붉은 마음을 온 세상으로 뿜어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감탄하는 일. 배우는 모습에 멋있어 감탄한다. 어떻게든 앞구르기를 해보려 낑낑거리는 그 팔목과 잘해보려고 티셔츠를 고무줄 바지에 힘껏 밀어넣은 그 마음에 감탄한다. 처음 먹는 채소를 먹어보려 어떻게든 최소한의 젓가락질을 하는 그 디테일함에 웃는다. 함께해서 재미있고, 배워서 뿌듯하며, 집을 떨치고 나와 내 발과 내 손으로 내 목소리를 내는 곳. 어린이의 나다움의 욕구를 채워주는 곳. 그곳이 지금은 여기,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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