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는다

주의집중 학습심리 교육심리 인지심리 공부법

by 주윤

시험지를 마주했을 때 아련해지는 순간을 기억하나요? 분명히 널 만났던 것 같은데, 몇 쪽이었는지도 생각이 나고, 그 단어는 그 페이지 오른쪽 위에 있었고 그 위에는 그림도 있었거든요. 다만, 딱! 그 단어만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이 답답함. 처음엔 교과서에서 보았던 기억이 희미하게라도 났었는데 점점 멀어지는 느낌. 아, 그렇게 님은 갔고 답안지에는 ‘오꼬노미야끼’로 써내고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교과서를 펼쳤을 때 ‘이코노미’를 보는 순간, 머리를 쥐어뜯었던 기억. 왜 우리는 분명히 보았던 것을 그대로 기억해 내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인간의 특성에 있습니다. 우리는 보았지만 보지 못하니까요. 또는 보이는 대로 보지 않으니까요.


인간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는다.


보이는 대로 보지 않는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일까요. 분명히 횡단보도에서 빨간 불일 때 건넜고, 친구를 보고 이름을 잘 불렀는데 말이죠.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례를 한번 살펴봅시다.


길을 지나가고 있어요.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져요. 이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A는 ‘그냥 스쳤나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어요. B는 ‘뭐야, 기분 나쁘게, 왜 쳐다봐.’하고 여길 수도 있죠. C는 ‘뭐야, 쟤가 나 좋아하나?’라고 여길 수도 있죠. 지나가는 타인과 눈이 마주친 동일한 일에도 우리는 본 것을 본 것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같은 경험의 순간도 내 생각대로 해석합니다.


오른쪽 그림에서 무엇이 먼저 보이나요? 하얀 꽃병이 먼저 보였나요? 아니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나요? 옆에 친구나 부모님이 있다면 이 그림을 보여주고 무엇이 보이는지 물어보세요. 나와 같을까요? 또는 나는 하얀색을 꽃병이라고 했지만, 누군가는 물병으로, 맥주 한잔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은 술잔이라고 대답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루빈의 컵(1915)

이 사진은 1915년 루빈(Edgar Rubin)이라는 학자가 제시한 그림입니다. 인간은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각자의 생각, 경험, 욕구에 따라 다르게 지각한다는 이론을 제안했죠.


인간은 기록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억하는 존재예요. 기록한다는 것은 우리 자동차에 설치된 블랙박스처럼 경험한 모든 순간을 편집 없이 사실 그대로 저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기억은 자동차에 설치된 블랙박스처럼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내 경험의 순간과 순간 사이사이에 내 생각과 해석을 끼워 넣어 전체로 기억하는 존재죠. 참 익숙한 비유인 절반의 물이 담긴 물컵을 떠올려본다면 잘 이해가 될 거예요. 컵에 물이 절반 있을 때 누군가는 ‘물이 절반이나 있네!’하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물이 절반밖에 없어.’라고 말하죠.


아닌데요. 똑같이 기억하는데요. 하고 말한다면 생각해 봅시다.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시험을 본 학생이라면 시험 답안 내용은 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요? 같은 교재, 같은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수업 내용, 같은 시험지인데도 불구하고 답안 내용도, 점수도 다릅니다. 심지어 같은 수업을 듣고 난 후, 학생의 필기도 다릅니다. 동일한 주제를 제시한 탐구보고서의 내용도 모두 다른 내용과 형태를 보이죠.


당연하다고요? 과연 당연한 것이 늘 괜찮을까요? 이런 인간의 특성은 창의적 산출물이 아닌 정확한 용어와 내용을 학습하는 객관적인 학습을 공부할 때는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보았지만 보지 못한다


보았지만 보지 못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요?

괴짜 심리학자들의 재미있는 실험을 소개해보겠습니다. 환자는 검진을 위해 의사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와 진료실에서 마주 보고 앉습니다. 환자는 검진표를 작성하고 의사에게 전달하도록 지시받았습니다. 이때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의사 A는 검진표를 주려다가 펜을 떨어트립니다. 떨어트린 펜을 줍기 위해 몸을 숙이는 순간 의사가 B로 바뀝니다. 환자는 검진표를 받아 들고 작성한 후 되돌려주려는 순간 의사는 또 펜을 떨어트리게 되고 펜을 줍기 위해 몸을 숙이며 또 다른 의사인 C로 바뀝니다. 하지만 환자는 자신 앞에서 사람이 A, B, C로 바뀌었음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문진표에 집중했기 때문이죠. 실험에서 환자였던 사람들은 본인이 당할 줄은 몰랐다며 눈앞에 서있는 의사 3명을 보고 당황스러워했습니다.


말도 안 된다고요? 그렇다면 일상적인 질문을 해볼게요. 500원짜리 동전은 모두 본 적이 있죠? 그렇다면 500원짜리 동전에서 학의 머리는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쪽일까요? 수도 없이 보았던 태극기의 태극무늬와 건곤감리의 방향을 정확하게 기억해서 그릴 수 있나요?


우리는 아무리 보았어도 ‘0000’ 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합니다. 같이 밥을 먹어도 밥이 맛있어서 하나하나 눈으로 보고 맛보며 음미하고 먹은 학생은 오늘 어떤 반찬이 나왔는지 세세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반면 빨리 먹고 친구들과 놀 생각을 했던 학생은 오늘 된장국이 나왔는지 미역국이 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0000’ 하지 않으면 보여도 보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지 않는다. ‘0000’은 무엇일까요?


기억의 부자가 되는 문지기-주의집중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인 정보처리이론(Information Processing Theory)을 살펴보겠습니다. 앳킨슨과 쉬프린(Atkinson and Shiffrin, 1968)의 기억모델에 따르면, 우리가 정보를 처리할 때 3개의 기억 저장고와 5개의 인지과정을 활용합니다.


정보처리모형


감각기억(sensory memory)은 눈으로 보고 들었던 감각정보를 최초로 저장하는 기억저장고입니다. 시각정보는 1초, 청각정보는 2-4초 정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어! 아닌데, 난 한 번 본 것도 잘 기억하는데.’하고 생각한 사람은 수업시간에 펼쳤던 교과서의 내용과 선생님의 설명을 그날 밤에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집에 갈 때까지 보았던 간판, 차 번호,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의 얼굴을 다 기억해야 합니다. 우린 어떤 면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어떤 면에서는 안타깝게도 매우 짧은 감각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고 들어야 기억할 수 있을까요?


바로 앞선 0000의 답이기도 한 ‘주의집중’입니다. 우리는 주의집중하고 지각한 정보만 단기기억으로 보내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주의 집중력은 주의력(attention)과 집중력(concentration)이 더해진 의미입니다. 주의력은 눈과 귀에 들어오는 많은 자극 중에 불필요한 자극은 걸러내고 중요한 자극을 선별하는 능력입니다. 집중력은 자신과 시간의 흐름도 잊고 몰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수업 시간에는 참 많은 자극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설명, 판서, 수업자료와 교과서뿐만 아니라 앞 친구의 뒤통수, 책상 위에 지우개, 갑자기 부러진 샤프심, 유난히 얼룩져 보이는 책상, 옆 친구와 순간 닿은 팔꿈치까지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자극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주의 집중력이 좋은 학생은 이 많은 자극 중에서 선생님의 설명과 판서를 중요한 자극으로 선별합니다. 그리곤 부러진 샤프심 교체보다는 얼른 다른 펜을 꺼내어 선생님의 설명에 경청하며 제 생각을 끄집어내고 필기하는 활동에 집중합니다.


그 대가로 남은 것은 정확한 기억입니다. 우린 집중한 내용만 보고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주의집중의 힘


문제는 주의집중하지 않았을 때, 주의집중의 빈자리에 자신의 경험과 배경지식, 정서를 입혀 부정확한 기억, 오개념, 실수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경험을 지각(perception)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죠. 대표적으로 시험 때 가장 흔한 실수인 ‘바르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에서 ‘바른 것’을 고르는 일이 이런 이유입니다. 주의집중을 놓치는 순간, 우리는 읽고 싶은 대로 읽으려고 합니다. 그 결과는 분명 다 맞았다고 생각한 시험 결과를 확인한 순간, 머리를 쥐어뜯게 되죠.


주의집중은 자동적인 생각의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어 보이는 대로 보도록 해주고,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해 줍니다. 내가 본 것을 의심하고 주의를 기울여 집중해 보세요. 불편하고 의도적인 주의집중의 노력이 정확한 기억을 만들어줍니다.


중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오류 없이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잘 안다는 것은 정확한 앎을 토대로 앎들을 새롭게 연결 짓는 힘을 의미합니다. 앎들을 새롭게 연결 짓는 유용하고 의미 있는 생각은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주의집중은 기억의 부자가 되는 문지기입니다. 주의집중은 오늘 하루도 우리의 눈과 귀, 손과 코, 입으로 감각했던 무수히 많은 경험 중에 중요한 정보에 확대경을 대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 중요한 정보를 더 세세히 눈에 담고, 또렷하게 경청하고, 손 끝에 남긴 흔적을 기억하여 의미 있는 하루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글은 주의집중의 비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