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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n 28. 2022

매일의 수영에 같은 날은 없다

  나는 올봄부터 수영 레슨을 듣기 시작했다. 수영을 배우면 곧 다 해버릴 줄 알았던 하룻강아지였던 나는 얼마나 주변에 “저 수영해요.” “저 곧 00동 물개가 될 거예요.”하고 호들갑을 떨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수영강습이 날을 더해가고, 곧 3개월에 이르는 시점. 나의 호들갑과 하룻강아지는 창렬히 산화되어 간데없다. 그저 여전히 물에 들어가면 마음이 급하고 버둥거리며 기우뚱하는 호흡과 팔다리를 가진 내가 있을 뿐이다. 그래, 좀 잘해야 너스레도 떤다.     



  나에겐 비슷한 시기에 수영을 시작한 동지가 있는데, 이 동지와 이야기를 할 때 그렇게 마음이 편하다.  “저도 평균으로 봤을 때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하고 말하는 나의 동지는 바로 나의 8살 아들이다. 둘 다 수영 부진학생으로서의 고충을 나눈다.



  “주윤아, 엄마는 목에 힘을 빼는 법을 몰라. 아니 힘을 빼라는데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야 아~이거구나. 할 텐데, 전혀 모르겠어.”

  “엄마, 저는 이제 음파는 좀 하거든요. 근데 그전에 머리 넣기가 그렇게 힘들더라고요.”

  “그치~물에 들어가면 마음이 바빠지잖아. 그치? 좀 차분하게 하면 좋을 텐데.”

  “맞아요. 엄마. 그리고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어떻게 물에 머리를 넣었는지 알아요?”

  “어떻게?”

  “선생님이 똑바로 저를 보고 넣으라고 했을 때요.”

  “크크크크. 맞아. 선생님이 무서우면 정신 똑떽이 차리고 하게 된다! 선생님이 너무 친절하면 설렁설렁하게 되더라고. 넌 어때?”

  “맞아요.”



  나의 동지와의 수영 강습 이야기는 정말 잘 통한다. 서로 다른 곳에서 레슨 받고 있어도 서로 겪는 고충은 어쩜 이리 비슷한지! 수영은 너와 나의 연결고리!            



  사실 나는 동지에게도 공유를 하지 않은 나만의 마인트 컨트롤 방법이 하나 있다. 사실 이건 들으면 다 놀릴까 봐 아무에게도 말을 안 했다. 이상과 실력의 거리가 또 너무 멀게 되면, 아니 이건 멀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된다. 음, 그 거리가 여기 지구의 대한민국의 작은 소도시에서 230mm의 사이즈의 두 발로 서있는 나와 저 멀리 있는 다른 은하 정도의 거리랄까. 크기도 마음도 겸손한 작은 두 발이 여기 작은 땅을 딛고 있지만, 그래도 저 멀리에는 광활한 우주가 있다는 것은 막연히 알고 있으니 일단 꿈은 크게 가져본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입 밖으로 꺼내면 사람이 좀 이상해 보이는 것쯤은 아는 나이이니 혼자만 알기로 한다. 그리고 소중한 보물은 원래 꽁꽁 숨겨두는 거니까. 나만의 마인드 컨트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중 부끄러움을 가장 큰 이유로 삼고 혼자 몰래 살짝 꺼내보고 다시 넣어둔다.        


   

  나 혼자만 마음속 깊고 깊은 옹달샘에 혼자 숨겨둔 방법은(제발 웃지 말아요. 아니다. 뭐, 괜찮아요. 이걸로 한번 크게 웃으셔도. 하하하.)

  ‘나는 한 마리의 돌고래. 저 푸른 바다. 나는 그 푸르름의 물기가 온몸에 닿아 윤기로 반짝이는 유선의 매끄러운 돌고래. 자. 이제 나의 시간!’

하고 물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래, 뛰어든다는 표현부터가 틀렸음을 이 글을 쓰는 순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줄을 지어 대기하다가 내 차례가 되면 수경을 눈에 밀착하게 내려쓰고 팔을 쭈욱 어깨 뒤로 펴고 크게 숨을 들여 마신 후 몸과 머리에 푸른 이미지 트레이닝을 담은 채 물속으로 들어간다.    


       

  내 이미지 트레이닝은 프리다이버 자크 마욜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그 선수는 물을 이겨낸다기보다 물과 사랑에 빠져 돌고래처럼 바다의 흐름에 스스로가 끼어들어간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돌고래를 사랑하고 돌고래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래, 수영을 글로 배운다는 게 나는 이미 진건가...? 난 아직 사랑까지는 아니고 친해지고 싶은데, 내 몸은 너무 물이랑 낯을 가린다. 그래도 일단 생각한다.

‘나는 물을 잘 안다. 나는 능숙하다. 나는 돌고래처럼 물을 유영할 거다.’        


  

  이 순간 나는 정말 진지하다. 그게 문제인 것 같다. 그 진지함은 어깨와 목에 잔뜩 붙어 그렇게 내 몸을 똑바로 편다. 아니 평소에 앉아있을 때나 꼿꼿할 것이지 쓸데없이 물속에서 나는 세상 꼿꼿한 몸이 된다.

  “선생님, 어떻게 목에 힘을 빼요? 저는 그게 뭔지 몰라요. 힘을 뺀 목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그 기분도 몰라요. 어떻게 하죠?”

  “선생님, 웨이브 할 때 발등을 보라고 하셨어서 열심히 발등을 보려고 하다가 몸이 시옷자가 된 것 같은데, 괜찮은 건가요?”

  “아니요. 회원님. 고개부터 앞가슴까지만 접었다 펴면서 웨이브 하셔야지 허리를 구부리시면 나중에 허리 아프세요.”

  “아~제가 그래서 허리가 지난 시간부터 아팠군요.”

  “네, 발등 보시고 시작!”      



  팔다리를 보면 나는 그렇게 나를 아낀다. 특히 배영을 할 때 발을 좀 더 힘차게 차도 될 텐데 행여 더 하면 힘들까 싶은지 내 다리는 팔랑팔랑거린다. 물론 내 이미지가 돌고래이긴 하지만 그래도 발은 철썩! 하던데 나는 돌고래 영상에서 부드럽게 유영하는 이미지가 남아있는 데다 그렇게 내 다리를 아끼느라 살랑살랑 발을 찬다.      


  “선생님, 웨이브 할 때 다리가 팔랑팔랑 거리면 안되죠?”

  “그럼요. 다리에 힘을 주고 계셔야죠.”     


  “회원님, 멈추세요. 배영 할 때는 허벅지는 들고 무릎 아래로 차셔야죠.”

  “아~허벅지가 아니라 무릎 아래요?”

  “아, 허벅지로 잔뜩 찰 수 있으세요?”

  “하하하하.... 저 이제 다시 갈게요. 허벅지 무릎 아래, 허벅지 무릎 아래......”          



  앙상한 발차기 유저인 나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쓸데없이 팔 동작은 너무나 과장스럽다. 특히 평영을 할 때 내 팔은 엘라스틴 걸의 쭉쭉 늘어나는 팔이 된다. 아마 분명 그 순간 내 팔은 다리보다 길어짐이 분명하다. 분명히 선생님께서 팔을 넓게 벌리지 말라고 하셨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하지만 내 팔은 그렇게나 넓게, 열심히, 쫘악 벌린다. 평영을 할 때 내가 팔을 넓게 벌리는 매 순간, 나는 선생님의 말씀과 지도가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내 팔은 내가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원을 매 순간 그리고 있다. 기억해라, 주윤아. 개구리는 쭉 뻗은 뒷다리로 헤엄친다는 것을. 앞다리는 그저 거들뿐.           



  사실 나에게 수영의 꽃은 평영이다. 어푸어푸 수영 선수를 할 것도 아니어서 타이트한 심장 박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유형을 하고 싶은 욕심도 없고, 놀러 간 숙소 수영장에서 접영을 할 생각도 없다. 처음 평영 발차기를 배울 때 나는 이제 됐다. 싶었다. 이제 하산해도 되겠다. 아니 평영 발차기만 몇 번 배우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팔을 저었는데 물속에서 내 몸이 너무 부드럽고 자유로웠다.



  ‘나 해녀네. 아니 전복 어딨어? 해삼 어딨니~’

그 며칠을 나는 혼자 해녀가 되어 물속을 누볐다.    


       

  하지만 그것도 삼일천하. 팔 동작과 호흡을 배우는 순간, 해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저 밸런스라는 것이 무엇인지 절대 모른 채 개별적인 안간힘을 뽐내는 순수한 팔, 다리, 호흡만이 있을 뿐. 수업 끝나고 매번 남아서 혼자 해보겠다고 머리를 들어 올리는데, 그럴 때마다

  ‘이 정도면 얼굴에 찰과상 입겠는데.’

하며 다시 물에 철퍼덕! 촵 촵 얼굴을 물에 내리꽂는다. 우리나라의 어느 작은 소도시 푸른 수영장에는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 평영을 너무 열심히 하는 까만색 반신 수영복을 입은 한 수강생이 오늘도 얼굴 빨개지며 물에 얼굴을 부딪히고 있다.



  아, 정말 되게 못한다.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게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매주 월, 수, 금 오전마다 수영을 간다. 처음보다는 더 나아졌으니까. 사실 내 몸과 수영실력이 나아진 것에 비해 ‘점점 더 나아지고 있어!’ 하고 여기는 내 기대와 착각이 좀 더 큰 것 같다.           



  그래도 매일이 같은 날씨가 없듯이 매일의 나는 같은 실력의 내가 아니다. 어떤 날은 지난번보다 좀 더 몸이 무거운 것 같은 날이 있다. ‘아, 지난번에는 더 잘 나갔는데, 왜 오늘은 아니지?’하며 다시 마음을 잡게 되는 그런 날엔 다시 잘해야 하니 또 한 번 물에 뛰어든다.     


      

  어떤 날은 내가 정말 물을 밀고 있는 것 같고, 몸이 쑤욱 앞으로 나가는 것처럼 가뿐한 날도 있다. 이런 기분은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데, 이때는 혼자 뿌듯함에 내 어깨가 저 수영장 천장에 닿을 것만 같다. 너무 마음이 불러서 내 배가 무거워져서 이러다 물에 가라앉지 싶을 정도이다.           



  수영의 하루는 매일이 다르다. 오늘은 산뜻한 습도에 맑은 햇살이 비추는 날이었으면,  다음 날은 제발 비야 내려라. 싶지만 내리지 않는 습도를 가득 머금은 회색의 날이기도 하다.  어떤 날은 아무  없이 스윽 하던대로 되는 날도 있다. 이렇게 정체되는 날과  나아진  같은 날의 시소가 계속된다(다행한 것은 원체 바닥이었기에  못하게 되기는 어렵다.).


  물론 언젠가 지금보다 수영을 잘하게 되는 날이  것이다.(오겠지? 온다면, 그날이 온다면!) 지금보다는 나아졌겠지만 그때도 여전할 것이다.

  '어! 오늘은 지난번보다  안되네.’

  '! 오늘은 좋다.’

하며  안에서  오락가락할 것이다.

수영,  요물. 그래서 오늘은  어떨지 모르니 가게 된다. 오늘만의 수영 기분을 느끼고 싶으니까. 정말 모르니까.            



  “주윤아, 오늘 엄마 수영반에서 선생님께서 잘하는 사람들이랑 좀 더 배워야 하는 사람들을 나누고, 오늘은 좀 더 배워야 하는 사람들을 더 지도해주셨거든. 엄마는 어디였을까?”

  “당연히 더 배워야 하는 사람이지요.”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매일 말하잖아요. 엄마 저도 수영반에서 원래 잘하는 친구들보다 좀 못하는 편이거든요.”

  “아 그래? 어때? 엄마는 처음엔 좀 기분이 그랬는데, 결국엔 좋았어. 선생님께서 확실히 한 명씩 다 자세히 알려주시고 엄마도 궁금한 거 물어봐서 오늘 많이 배웠거든. 오늘 좀 좋았어.”

  “저도 그 방법 괜찮은 것 같아요. 저희 반도 원래 잘했던 친구들이랑 안 그런 친구들이랑 나눠서 가르쳐주세요. 배워야지요. 그리고 저 처음보다 지금 좀 더 잘하게 됐거든요. 저 그거 알아요.”

  “오~! 주윤이 진짜 멋지다. 그래도 우리 점점 나아지고 있어! 곧 수영장에서 대결하자!”     


 

  그 예측할 수 없는 내 몸과 푸른 물의 랑데부가 기대된다. 내 몸은 원체 낯가림이 심해서 언제 푸른 물과 수영의 영법들과 좀 친해질지는 장담이 안된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수영과, 그 푸른 물과 친해지고 있는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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