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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l 05. 2022

여덟살이 괜찮다면 괜찮은 것이다

  “어머니, 잠깐 올라오시겠어요? 주윤이를 민호랑 재윤이가 괴롭히는 걸 교장선생님께서 보시곤 지도를 하고 계세요. 잠깐 올라오셔서 이야기 들어보셨으면 해요.”     

  갑자기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괴롭힘이라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니. ‘괴롭힘을 당해서’라는 말을 듣는 순간, 주윤이가 학교를 잘 다닌다고 여긴 것이 너무 안일했나, 원만한 학교생활을 위해 노력했던 우리의 방향이 잘못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모든 1학년의 시간들이 모두 달려와 오늘의 일에 책임을 물었다. 우리의 4개월 간의 학교생활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실은 주윤이를 데리러 학교에 오기 전, 오늘 내가 가장 신경을 썼던 중요한 고민은 방학 때 수영을 다녀볼까 줄넘기를 다녀볼까였다. 그리고 무슨 요일 무슨 시간에 운동을 넣어야 좀 동선이 편안할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오전의 그 생각들은 다 너무 하찮아졌다. 방학 때 스케줄을 잘 짜서 운동을 무슨 요일에 주 며칠 하는 것이 뭐가 중요한가. 주윤이 학교생활에 켜진 적신호는 내가 대단히 뭔가 잘 못 생각하고 있거나, 중요한 것은 놓치고 쓸데없이 곁다리만 고민하고 있다는 시그널이 분명했다. 지진이 난 머릿속은 내 생각이 키운 여진으로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학교 현관으로 들어가기 전,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두 이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민호? 민호라구? 민호는 주윤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인데.’



  주윤이는 민호가 있어서 학교생활이 좋다고 말했다. 점심시간마다 함께 줄넘기를 하고는 서로 줄넘기 한쪽씩을 잡고 비밀의 길에 다녀온다고 했었다. 줄넘기 줄로 서로 마음을 이은 민호를 진정한 친구라고 말하던 오후, 주윤이의 목소리는 신이 났고 얼굴은 언제보다 환하게 가득 찼었다.

  “엄마, 오늘 민호랑 있잖아요...”

하고 말할 때마다 나는 참 기뻤다. 민호가 있어서 학교가 즐겁다는 주윤이를 볼 때마다 나도 민호가 주윤이와 같은 반이어서 좋았다. 이것만으로 주윤이의 학교생활에 안심이 되었다.  


         

  나에게 주윤이가 학교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좋은 친구와 서로 잘 노는 것이었다. 만나면 즐거워서 놀고, 쉬는 시간마다 또 놀고 싶고, 놀다가 서로 의견이 안 맞으면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또 놀고 싶은 그런 사이. 남들은 다 재미없어도 우리끼리는 숨 넘어가게 재밌는 이야기를 가진 사이. 함께 노는 게 좋으니까 서로 다른 면을 조율하며 발과 마음을 맞추어 가는 사이. 이런 친구는 서로에게 말랑말랑한 활기를 건네주는 데다 투닥거림이 생겨도 비눗방울처럼 톡톡 터지며 산뜻하게 사라진다.

  “오늘도 즐겁고 안전한 하루 보내!”

  “오늘은 어땠어?”

매일 아침과 오후마다 내가 주윤이에게 건네는 문장에는 주윤이가 친구들과 많이 웃고 때론 화해하며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었다.     



  주윤이가 전해준 민호와의 이야기에 나는 그 바람이 이루어진 것으로 믿고 안심해왔다. 그런데 주윤이를 민호가 괴롭혔다니. 모든 부정적인 추측들로 지진이 난 머리와 쿵쾅거리는 심장의 난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학교 현관으로 가는 매 걸음은 불안과 의심으로 무거웠다. 사기를 당한 것만 같았다. 서로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윤이와 나만 모르고 속고 있던 것이다.

  ‘그럼 그동안 민호는 주윤이를 놀림거리로 여기고 있었는데, 주윤이만 쫄자처럼 민호 좋다고 따라다닌 건가? 바보같이?’          



  현관에 도착하니 교장선생님 앞에 세 명의 여덟 살 소년들 그리고 민호 어머니와 담임선생님께서 와 계셨다.

  “놀라셨죠. 제가 하굣길에 학생들을 보는 데, 1학년이 하는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과격한 면이 있어서 세 학생들을 불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두 학생들이 이미 사과는 했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올라오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윤이는 이미 울어서 부은 빨간 눈에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다. 주윤이 옆에는 주윤이보다 더 작고 순해 보이는 민호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고, 그 옆엔 재윤이가 찔끔 나온 눈물을 닦고 고개를 떨구고 앉아있었다.



  이윽고 재윤이 어머님이 오신 후 교장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물으셨다.        

  “민호랑 놀다가 민호가 책가방을 휘둘렀는데 거기에 제가 살짝 맞았거든요. 그런데 그때 재윤이가 우산으로 머리를 때렸어요.”

  “주윤이랑 민호가 책가방으로 때리고 놀길래 저도 우산을 휘두른다는 게 주윤이 머리에 맞았어요. 말렸어야 했는데 같이 했어요.”

  “저랑 주윤이가 책가방으로 놀고 있었는데 재윤이가 왔어요.”          



  여덟 살들은 하교 시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엄마들과 교장선생님, 담임선생님 앞에서 말을 했다. 두 아이는 고개를 들지 못하며 말을 했고 주윤이는 다시 한번 서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손수건으로 주윤이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다시 한번 물으셨다.

  “주윤아, 지금도 마음이 안 좋구나. 가장 기분이 나쁜 게 10이고, 나쁜 기분이 없어진 게 0이라고 하자. 그리고 친구들이 아까 사과도 했지. 그럼 지금은 아픈 마음이 얼마나 남았니?”

  “처음에 민호 책가방에 맞았을 때는 안 아팠어요. 그래서 0이었거든요. 그런데 재윤이 우산에 맞았을 때는 너무 아팠어요. 그때는 10이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음, 한 2.5 정도예요.”

  “그래, 2.5가 남았구나. 그러면 친구들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를 해볼까? 우리 아까 사과를 했지만 주윤이가 2.5가 남았으니까 다시 한번 사과할 수 있겠어?”

  “네.”

  “주윤아,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괜찮아.”

  “주윤아, 미안해. 이제 그런 일이 있으면 말릴게. 우산으로 안 그럴게.”

  “괜찮아.”

  “주윤아, 이젠 어때?”

  “이젠 0이 됐어요.”     



  친구들의 진심 어린 사과와 마음을 쓰다듬어주시는 교장선생님의 말씀 덕분에 주윤이의 흐린 마음에는 옅은 햇살이 비추며 따뜻한 아지랑이가 피는 것 같았다. 민호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얼굴을 떨구며 ‘내가 왜 그랬지. 이게 무슨 일이지.’하는 듯했다. 재윤이 역시 ‘내가 왜 그랬을까.’하는 표정이었다. 우리 여덟 살들은 그 순간 진심이었다. 재미로 시작한 서툰 행동의 결과를 엄마와 선생님, 그리고 친구 앞에서 책임지고 있었다. 여덟 살 꼬마 1학년이 형아가 되어가고 있었다.   


       

  세 여덟 살 소년들의 말을 들으니 나는 너무나 안심이 되었다. 무엇보다 민호도 주윤이를 좋아하며 지내는 게 맞다는 것은 가장 묵직한 확신으로 다가왔다. 그저 여덟 살들의 장난과 놀이가 서툴러서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이지 주윤이를 괴롭히려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윤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거리의 대상이 아닌 좋아하는 친구 간에 벌어진 서툰 장난이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다. 그리고 오늘 일로 서로 어색해지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셋다 같은 반인데, 주윤이가 평소에 민호를 정말 좋아하고 잘 지내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번 주에는 재윤이랑도 방과 후 수업을 같이 하면서 좀 더 친해졌다고 주윤이가 저에게 말했거든요. 서로 장난으로 했는데, 1학년이어서 서툴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났나 봐요. 주윤이가 괜찮다고 했으니 저도 괜찮습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주윤이를 안아주고 되돌아오는 길, 주윤이는 점점 얼굴이 맑아졌다. 내가 준비한 간식을 먹으면서 표정도 환해졌고, 목소리도 평소처럼 또랑또랑해졌다.

  “주윤아, 괜찮아졌어?”

  “네, 괜찮아요.”

  “주윤아, 친구들이 주윤이를 놀리거나 때려서 기분 나쁘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아! 그걸 안 했네.”

  “그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큰소리나 진지한 목소리로 하! 지! 마! 하라고 했지?”

  “네.”

  “그랬는데도 계속하면 그땐 어떻게 하라고 했어?”

  “그땐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했어요.”

  “그래, 다음부턴 꼭 그렇게 해야 해. 싫은 걸 말하는 것도 용기야.”       


   

  그날 오후, 담임선생님께서 다시 한번 주윤이는 괜찮은지 물으시는 전화가 왔다. 그리고 두 어머님께서 내 연락처를 물으셨다고 하셨다. 학교에서 되돌아오는 길에도 진심으로 미안해하시며 나에게 사과하셨던 두 어머님들도 오후에 다시 한번 사과를 전하셨다.           

  “주윤아, 그리고 민호 어머니랑 재윤이 어머니께서 주윤이에게 너무 미안하시다고 또 말씀하시는데 엄마가 주윤이 괜찮다고 말해도 돼?”

  “네, 괜찮아요.”

아이는 괜찮다는 말에 나는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계속 묻는 것도 아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더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가끔 엄마는 말을 줄여야 하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었다.   


       

  “주윤이가 우는데 제가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제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방심했나 봐요. 이번에 저도 배웁니다. 주윤이에게 좋은 친구가 되도록 집에서도 잘 지도하겠습니다.”

  “부디 주윤이 마음을 잘 달래주세요.”     

  두 분 모두 단어 하나, 그리고 문장 하나에 마음을 들이셨을 것이 느껴졌다. 진심 어린 사과에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을 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겸손의 마음을 전하셨다.      



  “주윤이도 괜찮다고 해요. 너무 염려 마세요. 아직 1학년어서 장난이 서툴렀나 봐요. 저희 아이도 아직 서툴러서 나중에 어떻게 행동할지 장담이 안 되는 걸요. 부디 앞으로도 서로 좋은 친구로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사실 내 마음은 주윤이보다 빨리 괜찮아지진 않았다. 맞고 왔다는 것이 속상했다. 생각은 구석구석 끼워 맞춘 듯 정리가 되었지만, 주윤이 마음에 비춰진 햇살이 내 마음에는 더뎠다.          


 

  생각으로는 모두 이해가 되었다. 장난으로 그런 것이 확실했고, 서로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여덟 살 소년들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어머님들도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전화와 메시지로 전하셨다.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께서도 아이들끼리의 사소한 장난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서툼의 순간을 잡아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지도해주셨다. 모두의 진심이 모인 금요일 오후의 하굣길이었다. 이 모든 진심들이 주윤이의 마음에서 나쁜 마음을 0으로 만들어주었다. 당사자가 괜찮다고 명랑하게 말한다.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아무리 부모라도 내가  괜찮다고 어깃장을 놓는  아니지 않나. 주윤이가 자기 마음을 괜찮게 만든 것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몫이 맞다.



  이미 벌어진  앞에서 내가   있는 일은  태도를 우아하고 명랑하게 다듬는 . 그리고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과 방법을 생각하는 . 이미 벌어진 삶의 문제에 내가  일은   가지이다.       


    

  마음에 남은 불편한 습도를 주윤이의 괜찮음, 학교의 지도, 진심 어린 사과라는 온기로 쬐어주며 다시 하교 길 학교 앞에서 주윤이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주윤이가 걸어온다. 엇! 그 옆엔 민호. 두 여덟살 형아들이 서로 손을 잡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온다.           



  아이코! 내가 아무래도 시간이 많은가 보다. 아직 갱년기는 아닌 것 같으니 정작 여전히 서툰 것은 내가 맞다.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이 외부의 온도와 습도에 좌지우지되는 것에 속수무책인가 보다. 이 더운 여름, 강렬한 햇살이 비추는 날에 불편한 습도는 뭐고, 뭘 그렇게 우아하고 명랑하게 태도를 다듬을 필요가 있는가! 이미 여덟 살 형아들이 저렇게 손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하교하는데! 각자의 행동을 서로 시원하게 인정하고 책임지는 여덟 살 형아들이 나보다 한참 낫다.                



  “안녕!”

나는 민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순해 보이는 민호를 보니 내 마음에 눈 부신 햇살이 비췄다. 마음에 잔잔히 남아있던 습도가 햇살에 산뜻하게 말려졌다. 마음속 동그란 비눗방울들이 산뜻하게 톡톡 터지며 자취를 감추었다.     



  여름날, 여덟 살의 산뜻한 우정을 응원하는 이 재미진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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