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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l 08. 2022

우러러보면 개운한 목 스트레칭은 덤입니다.

  새로운 과목의 수업을 맡게 되었다. 기회가 생기니 덜컥하고 싶은 마음에

  “네, 대학원 다닐 때 관련 수업을 수강해보았습니다.”하고 말해버렸다. 그리곤 정작 수업이 다가오자 수업 준비에 대한 부담감에 머리가 무거워진다.      


     

  나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의 이론을 제대로 학습하길 바란다. 그 이유는 이론을 외우기 바라서가 아니다. 이론은 과거의 생각이다. 이 과거의 생각만으로는 현재를 사는 학생들과 그 학생들이 만날 미래의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론은 쓸모 있는 과거의 생각이다. 나는 이론이 학생들 현재의 삶과 이후의 삶에 쓸모 있는 도구로 쓰이기를 바란다. 나는 내 수업에서 배운 이론을 아주 잘 배워서, 자신의 삶에 이론을 적용시켜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후의 삶에서 그 이론이 필요한 순간에 쏙쏙 꺼내어 도구로서 잘 사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강의를 준비하고, 강의를 하고, 시험문제를 출제한다.  


        

  강의에 대한 내 바람이 현실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정확히는 일상의 나와 강의자로서의 나 사이에 공기의 무드를 바꿀 필요가있다.



  예전에 티비에서 악뮤의 찬혁님이 앞 출연자의 말이 끝나고 자신의 차례가 오면 자신의 말이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공기를 자신의 앞 차례에 둔다고 했다. 나에게도 그 공기, 간격이 필요하다. 평소 일상 속에서 노 메모리와 구멍 뚫린 주의력을 흘리고 다니는 나를 그대로 강단으로 데려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그거 있잖아요. 그분. 그분. 그 무슨 글자가 들어가는데, 그분 성함이 뭐였죠?”

이건 오 마이 갓. 오! 노! 어제 일도 기억이 안나는 일상의 나는 집에 두어야지 강의실까지 데려갈 수 없다.



  나는 일주일 중 그 2학점의 2분 반, 4시간의 수업에서만은 친절한 설명자 또는 안내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부린다. 그러기 위해서 평소 허술한 나와 강의자로서의 나 사이에 공기의 결, 그리고 밀도를 바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욕심이라는 게 부리기는 참 쉬운데, 채우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욕심을 채우려면 그 자리엔 부담감이라는 벽돌이 언제 왔는지 모르게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묵직한 부담감의 자리가 비워져야 그곳에 욕심이 채워지는데, 그 벽돌을 치우는 일은 행동이 필요하다.



  강의 하루 , 나는 일상과 다른 플랫한 공기와 행동을 모은다. 먼저 초보 시간 강사인 나는 4-5학기 동안 해오던 같은 과목 수업도 수업  날에는 아무 약속도 잡지 않는다. 그리고 부담을 날리는 행동을 한다. 나에게  행동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손으로 찾아보고, 눈으로 읽어보고, 정리하고, 말로 뱉어보는 과정들이다. 그렇게 수업 준비에만 하루 종일 매달린다.



  그 시작을 해야하는데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 새로운 주제에 대한 부담감만 더 피어오른다. 부담감의 연기를 어느정도 날려보내지 않으면 압도될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이틀간 고민하다가 메시지를 보낸 후, 대학원 선배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제가 이번 학기에 새로운 수업을 맡을 것 같아요. 제가 실은 이 과목은 처음이거든요. 혹시 이 과목은 어느 정도까지를 다루어야 하나요?”

   “선생님! 나도 이 과목을 지난 학기에 했고 이번 학기에도 해야 돼. 내가 그동안 참고했던 교재를 알려줄게. 그리고 그 교재에를 쓸 때 내가 좀 아쉬운 점이 있었거든. 교재를 정리한 방식 때문에 학생들이 교재 안에서 챕터를 넘나들어야 하더라고. 그 점을 보완해서 강의노트를 만든 게 있어. 그것도 같이 메일로 보내줘 볼게.”

  “어머나! 이 은혜!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도 강의 노트를 보고 같이 다듬어 가면 좋지.”

  “고급 자료를 선뜻 공유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교수님의 피땀 눈물...!”

  “뭘. 그런 건 걱정도 마.”

  “교수님의 은혜가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집니다. 똑똑 두드렸더니 덥석 잡아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목 아플 거야. 우러러보다는 이런 건 언제든 물어봐. 있는 건 다 줄 테니.”

  “덕분에 목 스트레칭 제대로 하고 있어요. 아낌없이 내어주신 그 태도도 함께 배울게요.”


          

  교수님은 내가 대학원에 막 진학했을 때 같은 지도교수님께 배우신 선배님이시다. 지도교수님의 애재자이자,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배움을 해오시던 분이셨다. 그리고 내 논문도 심사를 해주셨는데, 부끄러운 문장과 엉성한 논리로 한 줄 넘어 가기가 어렵게 턱턱 막히셨을 텐데도 사려 깊은 코멘트를 남겨주셨다. 연례행사처럼 뵙지만, 나는 교수님을 만날 때마다 내 5년에서 10년의 삶에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있는 건 다 줄 테니.’

  이 말이 너무 멋있었다.


  교수님이 얼마나 진심을 다해 강의자료를 만드셨을지 나는 짐작이 간다. 기존 교재에서 강의 때 불편한 부분을 다듬고, 레퍼런스를 검토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셨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 이론이 적용된 사례를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영상자료도 잔뜩 검색하여 강의 준비를 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가진 전문성에 진심까지 더한 자료로 진행된 수업은 학생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나라면? 아직 초보 시간강사인 나라면 아마 그 자료를 선뜻 후배에게 줄 수 있을까? 나의 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만든 자료를 선뜻 내어줄 만큼 나는 넉넉한 아량을 가지고 있나? 아무리 다른 학교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지만, 나만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까? 내가 어렵게 간 길을 누군가 쉽게 가려는 것을 나는 억울한 마음 없이 볼 수 있을까? 아니, 쉬운 길을 내가 내어줄 수 있을까?   


        

  교수님과의 짧은 대화 후, 마음속을 채웠던 부담감의 벽돌이 몇개쯤 치워졌다. 동시에 여러 개의 물음표가 내 머리와 마음을 가득 채웠다. 모든 물음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나라면?’


          

  보내주신 메일을 열어보니 역시나 보통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안다. 간단해 보기기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간단해 보여서 이해되기 쉬운 한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선된 자료와 논리적인 흐름, 그리고 매끄러운 문장이 필요하다. 정선. 논리. 매끄러움. 이것들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김연아 선수의 점프는 너무나 가볍고 쉬워 보이지만,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쉬워 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어렵다. 누군가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 노력, 그리고 인내의 시간을 견뎌낸 결과물만이 보통의 우리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더욱이 물리적인 거리가 있는 4차원의 세계에서 움직임과 활자로 진심이 전해지기 위해서는 상상도 못 할 에너지를 가진 것이어야만 한다.


          

  그 자료를 주셨다. 그리고 걱정 말라고 하셨다.   

최선을 나누어주셨으니, 나도 내 수업에서 최선을 이어가고 싶어졌다.


        

  삶에 영감을 주는 말을 듣거나 경험을 하게 되면 내 삶은 그 전과는 질적으로 달라진다. 나는 한 사람이 자신의 업에 진심을 다하는 태도를 다시한번 보았다. 또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웠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업에 진심을 다하는 태도를 보았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어떤 모습을 보고 닮느냐는 내가 업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 되어준다.


  더욱이 나는 이제 진심과 전문성이 담긴 자료를 받은 사람이다. 이것은 자신의 일에 진심과 노력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아낌없이 주는 삶의 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더 나아가 이젠 나도 그런 태도를 알게 되었으니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의 씨앗을 품게 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 머리와 마음을 채웠던 많은 물음표 들은 느낌표로 정리되었다.

  ‘나도, 지금부터 누군가에게 넉넉한 도움을 베푸는 사람이기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나의 수업도 매 시간 최선이 담기기를!'


          

  삶에서 영감을 주는,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 영감들이 하나씩 내 마음에 뿌려준 씨앗을 키워가는 것이 내 몫이겠다. 끊임없이 새로운 씨앗이 뿌려지도록 그분들을 우러러보느라 목 스트레칭을 개운하게 하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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