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윤 Nov 18. 2022

휴대폰, 그 은밀한 나의 버디

  저는 휴대폰으로는 전화통화와 메신저 사용, 그리고 때때로 인터넷 검색만 하는 사람이 저예요. 평소 새로운 휴대폰 기기에 대한 호기심도 관심도 없는 편이에요. 뭐, 새로운 전자기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겠어요. 색색의 니트나 신발, 청바지에는 한없이 쏟는 관심과 달리 휴대폰은 고장 없이 사용하면 그걸로 된 거라고 여기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집 앞 마트에 가기 위해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데, 빠직! 휴대폰이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 거예요. 그것도 액정이 바닥을 대차게 들이받는 자세로 말이죠. 아뿔싸. 혹시... 설마? 하며 조심스레 들어 올린 휴대폰의 액정은 우려했던 것과 같이 산산조각이 나버렸죠. 왜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요. 휴대폰은 왜 대체 차 문을 열자 떨어진 걸까요? 아마도 호주머니에서 스르륵 빠진 게 분명해요. 아니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난 언제쯤 실수를 안 하고 살 수 있을까요. 또 한 번 서툰 내 행동에 책망해봅니다.


           

  휴대폰을 잃자, 저는 깨달았어요. 사실 휴대폰은 어쩌면 내 영혼의 단짝임에 틀림없어요.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의 목록들이 다 여기에 있잖아요. 나를 알고 싶으면 휴대폰을 보면 돼요. 그러면 나는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 것이 분명할 테니 이게 현실이 되면 절대 안돼요. 여하튼, 휴대폰에 깔려있는 앱은 지금 현재 여기에 살고 있는 나의 관심 목록이라고 보면 돼요. 다수의 인터넷 쇼핑몰 앱부터 은밀히 활동하는 SNS, 즐겨 듣는 라디오 채널, 아이 교육과 관련된 앱들, 그리고 어느 캠핑의 밤에 낭만적인 기분으로 깔아 두었던 별자리 어플까지. 오늘 내가 쏟고 있는 흥미를 요약하면 이 앱들 일지 몰라요.    


       

  그뿐인가요. 금융과 관련된 것들도 모두 앱으로 처리하고 있죠. 거래하는 은행들의 앱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늘 째려보고 있는 주식 앱까지. 겸손한 잔고와는 달리 은행의 앱들은 얼마나 번듯한지, 은행 앱의 개수만 보면 나는 내가 부자인 것만 같아요. 물론 여러 문자로 조합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순간, 현실의 숫자들에 씁쓸해지죠.


           

  사실 진짜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들과 SNS 앱이에요. 내가 어느 날 밤, 또는 문득 어느 순간 궁금해서 검색해보았던 흔적들이 남겨있죠. 어떤 날은 스트레이트 진의 핏과 중청이나 연청이냐에 대해서 파고들었던 날도 있고, 그레이를 구두를 사볼까 말까 고민했던 흔적도 남아있어요. 또 아이 학원에 관해 정보를 찾아본다며 밤늦게까지 검색하고 읽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죠. 사실 주변에 물어보면 좋겠지만, 인맥도 좁은데 저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물어보는 일이 어렵기만 하거든요. 저같이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에게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카페들은 반가운 샘물이 틀림없어요.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가끔 입으로 나오는 말보다 이불 속에서 그리고 소파 위에서 꼼지락 거리는 엄지손가락이 더 솔직하기도 하더라는 거죠. 그땐 나 혼자니까 눈치를 덜 보는 까닭일까요?


           

  하지만 쉿! 이렇게 리버럴 하게 찾아본 나는 비밀이에요. 이상적인 모습으로 바라는 나는 노력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잘 되어가는 방향의 삶을 살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거든요.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발은 끊임없이 젓고 있지만 표면은 우아한 모습의 백조를 꿈꾸나 봐요.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보이네요. 여하튼 오늘의 사소한 결정, 그게 두루마리 화장지를 몇 롤짜리 몇 겹을 사는 것이 가장 최저가인지 눈이 뻘게지도록 검색하는 나는 비밀이에요. 무심하게 산 걸로 해주세요. 물론, 어느 날은 검색만 하다가 지쳐서 결국 구매하지 않는 이상한 날들도 있죠.


         

  SNS도 마찬가지죠. 팔로우는 하지 않으면서도 관심이 가서 자주 찾아보는 사람들의 아이디 몇 개정도는 외우고 있어요. 팔로우 목록도 내가 나를 보여주는 것 같거든요. 어느 정도 감추고 싶어요. 또 현실과는 다른 예쁘게만 나온 사진들을 모아놓은 내 SNS 계정도 있는데, 눈치챘겠지만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어요. 내 삶과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여줄 수 있지만, 정서적이고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는 부끄러워요. 가까운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남편에게만 공개하고 있죠. 남편이 사진을 찍어주니까요. 가끔 내 계정에 있는 사진을 보면 ‘어머나! 이 여자 참 잘 살고 있네!’하는 착각이 들 정도예요. 어쩌면 SNS는 내 일상의 베스트 앨범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잘 나온 사진 한 장을 위해 남편에게 사진 찍어줘를 100번쯤 했다는 것도 비밀이에요. 이곳은 편집된 진실이 익스큐즈 되는 곳이니까요. SNS에서는 알면서도 서로 속아주는 게 매너 인지도 몰라요.


            

  나는 언제나 증거를 흘리고 다니는 칠칠치 못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내 휴대폰은 대놓고 증거를 흘려도 괜찮은 곳이었던 거죠. 휴대폰은 정말 나만의 것이니까요. 어떤 간섭도 없는 오롯한 내 공간이죠. 최상의 배우자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어쩌면, 휴대폰은 어쩌면 있는 나를 그대로 받아주는 고마운 마음의 안식처 인지도 몰라요. 내 마음에 두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곳이죠.


     

  은밀하고 리버럴 한 나, 감추고 싶은 나, 심지어 어쩌면 나도 몰랐던 속물 같은 나를 휴대폰은 아무 말 없이 받아줘요. 나를 평가하지 않아요. 이 정도면 휴대폰은 영혼의 단짝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오늘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잠이 들 때까지 내 몸에 찰싹 붙어있어도 불편함이 없죠. 아니 내 손은 언제나 먼저 휴대폰을 찾아요. 이렇게 보니, 내가 끌려다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런데 이상하죠. 내 영혼의 단짝을 잃어버렸는데 왜 한편으로는 이 낯선 상황이 편안한 걸까요? 내 손과 주머니에 휴대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지금이 왜 홀가분하게도 느껴지는 걸까요?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복구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찾았을지 슬슬 궁금해지기도 하는군요. 아무래도 나라는 사람은 참 의뭉스럽기 그지없어요.


          

  결국 액정을 교체했어요. 휴. 다행이죠. 그동안 찍어놓았던 사진도 그대로 있고, 무엇보다 다시 공인인증서를 깔고 세팅하는 번거로움에서 해방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메신저 앱을 확인했죠. 역시 메신저 앱의 오른쪽 상단에 읽지 않은 메시지의 개수가 조그맣고 빨간 원 안에 나타나네요. 그래, 나를 찾는 사람이 이렇게 있지. 흐뭇하게 앱을 실행시킵니다.


           

  . 나에게 노크해준  화장품 스토어, 동네 반찬가게 알림, 동네 마트 주말 행사, 보험회사 약관 개정 알림이군요. 그나마 반가운   모아도 치킨값이  되는 겸손한 주식 배당금 알림 메시지네요.  지인들은 밤새 그저 안녕했나 봅니다. 그래요. 서로의 안녕은 다행이니까요.



  그래요, 메신저 속 128개의 연락처 목록들은 각자 거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휴대폰은 오늘도 내 손에 있네요. 그렇다면 내 버디는 휴대폰인것이 분명해졌네요. 물론 휴대폰은 그대로 있고, 내 엄지손가락이 열심히 휴대폰을 두드릴 게 분명하지만, 이런 나를 받아주는 게 어디예요. 그거면 됐죠. 어떤 나도 받아주는 너그러운 버디로 충분해요. 오늘도 영혼의 단짝 휴대폰을 손에 쥐고 티브이를  생각이에요. 반가웠다고, 그리고 다시 나의 은밀한 탐색을 허용해주어 고맙다며 인사할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김밥은 사랑을 싣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