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화 낼 권리가 있다

by 주윤

나는 늘 같은 문제로 주윤이에게 화를 낸다. 음식을 먹을수록 뱃고리가 늘고, 게임은 할 수 록 더 잘해지고, 쇼핑도 할수록 더 아이템을 잘 고르듯이 화도 그렇다. 화를 낼수록 더 잘 낸다.



익숙한 문제 상황은 화에 더욱 취약하다. 문제 상황의 노출 빈도가 높을수록 화가 발발하는 발화점은 점점 낮아지는데, 어쩌면 이미 마음은 늘 언제든지 화를 낼 수 있는 준비를 차곡차곡해나가는 듯하다. 특히나 아이의 습관 중 고쳐야지! 하고 마음먹은 행동이 보일 때마다 엄마의 마음속 촉촉한 수분은 증발하고 점점 바삭하고 건조해진 마음이 면적을 넓혀간다. 마치 두고 보자! 불똥 하나만 튀어봐! 와락! 불붙어버릴 테니! 하고 단단히 각오된 마음이 늘 준비되어있다. 그래서 아무리 별거 아니고 가볍더라도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문제에는 화가 쉽다. 이때 내 화의 속도는 빛보다 빠르다.



우리 집에는 프로 딴짓러가 살고 있다.

“주윤아! 이제 이 닦고 세수해야지. 5분 안에 하고 나와!”

주윤이가 먹은 아침을 정리하고 베란다에 널어놓은 양말을 가져올 때까지 주윤이는 거실에 나와있지 않다. 설마, 하고 화장실에 가보면 우리 주윤이는 세면대 옆에 앉아 땅에 닿지 않은 고 작은 발을 동동 구르며 놀고 있다. 아... 아... 아...



연산 문제집을 풀 때 주윤이의 딴짓은 좀 더 다채로워진다. 일단 한 문제를 풀고 연필을 놓는다. 손가락으로 책의 모서리를 동그랗게 말거나 구기기, 값이 같은 숫자를 서로 이어야 하는 문제에는 꼬불꼬불 달팽이 선으로 이어서 어떤 숫자끼리 연결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해 놓기, 갑자기 물 마시러 다녀오기, 응가하러 가기, 소파에서 풀겠다고 문제집 가져가서 눕기, 그리고 갑자기 잠이 몰려오기.



너무 익숙한 모습이어서, 분명히 이전에도 앞으론 그러지 말자라고 다짐했었어서, 이미 여러 번 좋게 말하다가 와락! 불같이 혼을 냈었고 그때마다 주윤이도 눈물 콧물 쏙 뺐었어서 내 마음에 치익! 불이 붙는다. 그래도 오늘은 잠깐 눌렀다.

“주윤! 지금 딴짓하네! 그만! 엄마 지금 화내는 거 아니야. 주의를 주는 거야. 주윤이는 엄마가 좋은 말로 주의를 줄 때 그걸 알아차리는 아이 맞지?”

“네.”

“자, 그럼 다시 시작해보자! 알지? 또박또박 글씨. 특히 연산은 숫자를 정확하게 써야 해. 엄마가 이전에도 이야기했었지?”

“네~~에에에엣!!!!"



주윤이의 대답하는 목소리에 살짝 귀찮음이 보인다. 힐끗 쳐다보니 표정도 씰룩 씰룩하는 것 같다. 그리곤 일부러 연필 쥔 손에 힘을 잔뜩 주어 꾹꾹 눌러놓은 덕분에 다음 장까지 새겨진 강렬한 숫자가 보인다. 이 정도면 페이지가 찢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여길 정도이다. 이 숫자 5에는 주윤이의 마음속 확 꾹꾹 눌러 담겨있다.



이거, 반항 아닌가? 이거 내가 기분 나빠해도 되는 거 맞지 않나? 벌써부터 반항이라니!

“김주윤! 지금 뭐 하는 거야! 엄마가 딴짓하지 말라고 좋게 말했잖아. 그런데 이제 글씨를 일부러 이렇게 쓴다고? 이게 뭐야!”

“엄마! 크~~~~!!!!!!”

“김주윤, 그 표정 뭐야?”

“엄마! 나도 기분 나빠요. 엄마가 화내니까 나도 화 안 나겠어요? 나겠어요?”

“뭐라고?”



그래, 생각해보면 내가 화가 나듯이 주윤이도 화가 날 수 있는 사람이 맞다. 주윤이도 당연히, 사람이기에 화를 낼 권리가 있다. 주윤이는 나에게 행복을 쥐어주는 해사한 환한 미소를 가진 아이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주윤이는 감정을 가진 아이이고, 감정에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주윤이의 마음속에는 불같은 화가 있는 게 당연하다.


오만하고 이기적인 나는 주윤이의 화는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화는 인정함과 동시에 굳건한 당위를 부여한다. 나는 엄마라는 역할에 힘입어 내가 주윤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주윤이의 나쁜 습관을 고쳐야 하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주저 없이 화를 낸다. 그런 내 화에 주윤이가 화를 내면 나는 태도의 문제를 들어가며 더 혼을 낸다. 그때부터 내 화는 예의라는 더 큰 명분을 얻는다. 그런데 왜 주윤이는 화를 내면 안 될까. 분명 기분이 나쁠 텐데.



화는 누가 누구에게 내는 것인가. 첫 번째는 상대가 내게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될 때이다. 물리적으로 멀고, 내가 화를 내도 상대가 내 생활에 크게 지장을 줄 것이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나는 화를 낸다. 두 번째는, 상대가 나보다 약하다고 판단할 때이다. 어떤 사람도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 섣불리 화를 내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내가 상대를 어느 정도 얕잡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의 인간됨을 유지하기 위해 인정하기 싫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 세 번째는, 내가 너무나 옳다는 오만이다. 상대의 의견을 하찮게 여기는 마음은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화가 필요하다 여긴다. 이때의 화는 당위가 된다.


그렇다면 엄마로서 나의 화는 어떠한가. 나와 주윤이는 첫 번째에 해당하지 않는다. 우린 누구보다 가깝고 사랑하고 아끼는 엄마와 아들이 맞다. 그렇다면 내가 주윤이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유가 된다. 이 두 가지 이유의 공통점은 내가 주윤이를 개별화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주윤이보다 물리적으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내가 보살핌을 제공하는 역할이라는 우쭐대는 마음으로 내 화를 합리화한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힘은 내가 주윤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주윤이의 화를 꽁꽁 묶어둔다. 예의와 태도를 지도한다는 도덕적 가치 앞에 주윤이의 진심의 화를 마땅하지 않고 하찮은 것으로 찌그러트려 버린다.



좋은 마음은 좋은 말과 행동에 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특히 웃어른을) 배려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는 아름다운 태도를 화가 난 표정과 말투로 주윤이에게 내리꽂는 나의 말과 행동에는 어떤 배려가 있고 어떤 경청이 있는 걸까? 왜 주윤이는 화가 난 나의 얼굴에 눈치를 봐야 하는데, 나는 내 화의 불덩이를 받아 한껏 달아오른 주윤이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일까. 내 화가 당연하듯 주윤이의 화도 같은 무게를 가져야 맞는 거 아닌가. 주윤이도 화를 낼 권리가 있는 거 아닌가.



인간이 생존과 진화를 이어가기 위해서 건강한 공격성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나를 위협하는 상대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의 존재를 과시하거나 필요한 경우 싸워 이겨야만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내게 신체적, 또는 심리적 위협을 가한다면 “그만해.”하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누군가가 나에게 불합리한 제안을 한다면 “그건 아니지.”하고 나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공격성은 우리의 신체적 심리적 안녕을 위해 꼭 갖추어야 할 소양이 맞다.



그런데,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세상에 나가면 중년기 이전까지의 성인 초기에는 물리적으로 적은 나이 때문에 직급에서도 위치에서도 목소리가 작을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어릴 때 고집스럽고 위압적인 부모님의 눈치만 보던 아이는 자라는 과정에서도 선생님,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틀에 맞춰지는 삶을 통해 나를 소모하고 나를 잃는다.



나는 내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중년이 되는 삶을 내 아이에게 바란 적이 없다. 나는 주윤이가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강점을 더욱 발전시켜 김주윤의 개별적인 한 인간을 실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하고 바란다. 동시에 약점을 보완해야 하는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회적 매너 영역의 약점을 살살 둥글게 깎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다.



경청하는 태도의 중요성, 내 의견을 화내지 않고 전달하는 의사소통 기술,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 공감하는 마음, 타인의 입장을 역지사지해볼 수 있는 조망능력,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습관. 이 아름다운 매너들은 아름다운 방법으로 전수해주어야 하는 게 맞다.


나는 주윤이의 미소뿐만 아니라, 주윤이의 화 역시 ‘그랬구나.’하며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주윤이의 반복된 행동에 화를 내듯이 주윤이도 나의 반복된 지적에 화를 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엄마는 화내는 사람이 아닌 혼을 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주윤이의 미흡한 행동에는 급발진하는 화가 아닌, 묵직하고 단호한 주의를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주윤, 지금 연산 문제집 푸는 데 손 보고 있네!”

“주윤아, 엄마가 아까 손 보고 있다고 말한 거, 주윤이가 스스로 모르고 딴짓하는 게 보여서 지금 주의 준 거야. 알아채면 스탑! 알지?”

“네!!”

괜히 더 크게 대답하는 주윤이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기분 나쁨이 묻어 있다. 사실 날 지적하는 데 기분 좋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 싶어 짐짓 모른 체 했다. 그리곤 한 가지 갑자기 궁금한 질문이 떠올랐다.


“근데 주윤아, 생각해봐. 엄마는 고칠 거 있어?”

“음...”

“없어? 엄마가 주윤이에게 딴짓 그만하라고 하는 것처럼, 주윤이도 엄마가 자주 하는 행동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을 수도 있잖아.”

“있어요. 엄마가 화를 내는 거요. 딴짓할 때 화내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럼 지금처럼 이렇게 주의 주는 거는?”

“그게 좋아요. 좋은 말로 해주세요.”



나와 주윤이는 서로에게 환경이 되어주는 의미 있는 관계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낀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날카롭고 깊은 상처를 입는다. 우리는 서로 가까워서 눈물 날 듯이 감사하고 고맙고 힘이 되면서도, 그래서 누구보다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난 내 사랑이 주윤이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내 사랑은 주윤이를 존중해주고, 주윤이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그로 인한 내 사랑의 결실은 주윤이가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라는 신념을 갖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주윤이가 화를 낼 권리를 존중해주고 경청해줄 의무가 있다. 그리고 더욱 힘껏 내 사랑을 좋은 말과 행동에 담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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