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연습을 빨리 끝내는 여덟 살의 기술

by 주윤

우리 집 여덟 살 어린이는 유아시절 모든 어린이들이 그렇듯 소리 나는 악기를 만지는 것을 신기해했다. 특히 누르기만 해도 소리가 나오는 피아노가 꽤나 신기했는지 친구 집에 놀러 가거나 야외에 피아노가 있으면 언제나 건반을 눌러보며 재미있어했다. 물론 마구잡이로 건반을 누르고 소리가 나면 자신도 신기하고 흥미로웠겠지만, 나도 마구잡이로 나는 피아노 소리에도 우와~하며 호들갑을 떨곤 했다. 그래서 여덟 살이 되어 피아노를 배워보기로 했을 때에도 아이는 기대하고 약간 흥분을 하기도 했다.


엄마인 나는 아이가 피아노에 흥미가 있구나! 하고 흐뭇해했다. 악기 중에 피아노는 건반악기로 음계와 악보에 대한 이해, 양손의 동시 사용, 눈과 손과 머리의 협응 등 아이의 발달에 꽤나 도움이 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우리 집 여덟 살은 3달째 접어들며 처음엔 신기하고 좋아하던 피아노가 이젠 지루해졌나 보다.

“엄마! 꼭 틀린 곳에서 또 틀려요! 왼손에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미를 치는데, 오른손도 그렇게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꼭 그게 잘 안돼요.”

그러더니 여덟 살은 급기야 선언했다.

“엄마, 피아노가 제일 재미없어요.”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자기 절제가 필요한 활동인 것 같다. 본인 마음대로 누르면 소리가 나던 피아노 놀이가 아닌 피아노 학습은 정해진 규칙이 너무나 많았나 보다. 악보에 그려진 음표와 음계를 배워야 했고, 그 음표를 피아노 건반과 매칭 시켜야 했다. 어떻게 더듬더듬 오른손으로 도부터 도까지는 해냈는데, 이젠 두 손을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니! 갈수록 태산이지 싶었나 보다.


더욱이 피아노를 처음 만났을 때는 눌러서 소리만 나도 어른들이 우와~하는 호들갑으로 우쭐하게 해 주더니, 이제는 그때보다 더 잘 치는 데도 틀린 곳을 지적해댄다.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투지도 아직 없을 여덟 살에게 이건 도통 좋아하기가 어려운 배움임에 틀림없다.



이때 엄마는 고민이 된다. 하기 싫다는 아이의 말을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일단 온고잉 할 것인가. 이 팽팽한 줄다리기는 모두 합당한 이유를 가진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쪽에서는

‘행여 아이가 질리면 어쩌지?’

‘아직 어린데,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

‘우리 애한테 안 맞나? 다른 것을 찾아볼까?’

이렇게 행여 어린아이 잡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과 아이의 적성과의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지에 관한 우려들이 모두 몰려와 내 귀에 속삭인다.


그래도 온고잉의 쪽에서는

‘이번에 싫다고 끊으면, 다른 활동에서도 조금 싫으면 끊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할 거야. 그렇게 하면 안 돼.’

‘힘들어도 중요한 것은 참고 배우는 것도 끈기를 배우는 공부야.’

‘지금 피아노를 해두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 음악 교과는 기본이고 이후에 음악을 밀도 있게 향유할 수 있잖아.’

이렇게 피아노가 가진 장점뿐만 아니라 행여 이후에도 하기 싫은 것이 나오면 또 그만두려는 성향을 키우게 될까에 관한 우려들이 또 모두 다가온다.


이런 고민들은 얼마간 지속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아노 학원을 가는 일도 지속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이번 달 피아노 수강료를 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이번 달은 다녀야 해.”

(이걸 보면, 사실 아이는 싫다는 말을 월말, 즉 새로 등록해야 하는 시기 즈음에 꺼내는 것이 유리하다. 월 초에 싫다고 해봤자 일단 이 번달 말까지는 대부분은 다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는 즐겁지는 않지만, 이번 달에도 일주일에 이틀, 한 시간씩 피아노 학원을 가게 되었다. 일주일에 하나씩 새로운 곡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잘 되는 적도 자주 틀린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한 대의 피아노와 혼자 앉아있는 피아노 연습실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시 해보자는 생각을 했을까. 하기 싫다는 생각에 연습 분량을 미루고 미뤘을까? 그 1인 연습실만큼의 싫음을 채웠을지, 그 과정에서 다시 해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였을지에 대해 혼자 상상해보았다. 그 상상의 과정에는 엄마로서 아이가 짠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혼자 자신을 조절하는 시간도 필요하겠다는 양가감정이 늘 공존했다. 하지만 나는 상상만 할 뿐, 그 시간은 아이에게만 주어져 아이가 겪어야 할 시간이고 공간이고 사생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아이가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았나 보다. 아이와 내가 같이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에 가는 길에 아이가 호들갑을 떨며 내게 말한다.

“엄마!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 치기를 빨리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

“응?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건, 피아노를 한 번 치고는 동그라미를 2개씩 그리면 돼요!”

“진짜? 너무 웃겨! 한 번 치고 10번 그리면 바로 끝나겠네?”

“그건....”

아이가 생각해도 한 번에 10번 동그라미는 좀 너무했나 보다. 나는 한 술 더 떠서

“아빠는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서 별명이 오토바이었데.”

“왜요?”

“선생님이 피아노 10번 치라고 하면 오토바이처럼 빨리빨리 얼른얼른 쳐서 끝내버리고, 학원에 있는 만화책 봤데.”


어려움이 생겼을 때, 억지로 계속하는 것도 그리고 그만두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방법은 아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를 다독여보기도 하고, 다시 해보기도 하고, 때론 싫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도 하고, 살짝 요령도 피워보는 그 과정들이 모두 그 상황을 겪어내는 방법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 경험들 안에서 어려움에 대처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나만의 해결 방법을 스스로 체득하기도 한다. 이 과정이 있어야 나만의 고유한 역경 해결의 지문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어려움의 산을 한번 넘으면 또 잠깐은 괜찮아지고, 그러다 또 산을 만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산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삶은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아이가 커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역경을 겪어내는 과정에서 내 좋음, 힘듦, 어려움을 거짓없이 진솔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한 명쯤 있는 삶은 참 괜찮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이 지금은 내가 되어주고 싶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우리는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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