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1학년이 되소서

by 주윤

축구 교실이 끝나고 축구 선생님께서 성현이에게 “성현아, 축구 배우더니 실력이 아주 늘었더라!”하고 칭찬을 하셨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은성이는 선생님을 또렷히 올려다보며

“선생님! 저는 안 배웠을 때부터 원래 축구를 잘했어요!”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은성이가 이 말을 할 때의 표정과 말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축구 교실에서 공을 찰 때마다 은성이는 제 몸으로 자신감을 쌓는 한 걸음씩을 얻었음이 분명하다. 그 순간마다 은성이는 이 구역의 메시였고 네이마르였다. 나는 은성이의 그 말과 자신 있는 태도가 너무 귀엽고 대견해서 은성이 엄마에게 이 말을 전해주었다. 은성이 엄마는 순간 부끄러워했으나 나는 그때 은성이의 말에 담긴 순수한 진심이 참 예뻤다.


은성이의 귀여운 발칙함을 본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은 마음속에 자부심을 크으게 하나쯤, 아니면 자잘한 여러 개를 땅땅하게 품고 있구나! 싶어서 내 아이의 발칙한 자신감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아이에게 물었다.

“주윤아! 주윤이는 무얼 잘해?”

“엄마 뭐라고요?”

“응, 주윤이는 무얼 잘한다고 생각하냐고.”

“음, 생각 안 해봤어요.”

“응? 그럼 생각해봐.”

“생각이 안 나요.”

“응? 주윤이는 영어로 말하기도 좋아하고 잘하고, 글씨도 또박또박 쓰게 되었고, 발표 목소리도 또랑또랑하다고 칭찬받잖아. 안 그래?”

“엄마, 내가 영어를 외국인 선생님만큼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그래도 엄마보다 잘하잖아.”


결국 내 고백이 되고야 말았다. 그런데 뭐야. 원래 아이들은 자부심 몇 개쯤을 호주머니에 담고 다니던데! 게다가 초등학교 1학년이면 유치원생이랑은 그레이드가 다른 형님이라 겸상도 안 하는 그런 자부심이 대단하다던데!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엄마, 은성이랑 채원이는 공부를 잘해요.”

“아, 그래? 그럼 주윤이는 어때?”

“음, 전 그 정도는 아니에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니라는 말을 너무나 경쾌하게 하는 주윤이의 당돌함이 꽤나 귀여웠다. 그래서 당시엔 남편과 나는 '음, 자기 객관화가 되어있군!’ 하며 예상치 못한 아이의 당돌한 말을 웃어넘겼다. 그리고 이후에도 몇 번쯤 농담 삼아 그 이야기를 했었다.



그땐 그저 귀엽고 웃기기만 했는데...문득, 주윤이가 수업시간이 아니면 딴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했던 말이 나를 훅 스쳤다. 수업시간의 주윤이가 궁금하다. 여전히 수업 시간에 딴생각을 하고 있나...!?


“그럼 주윤이는 몇 번째 정도로 바른 자세야?”

“음, 한 20번째?”

“맙소사. 주윤이 반 28명이잖아. 야~주윤아, 그래도 절반은 하자!”

“한번 제일 잘하는 친구부터 말해볼까요? 민유, 서윤이, 설아, 수혜...... 흠, 절반은 힘들 것 같은데.”

“아니 그래도 탑 텐에는 들어보자!”

“엄마 어떻게 갑자기 그래요.”



아이고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손을 잡고 둘이 신난다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그래도 절반은 해야지, 아니 10 손가락 안에는 좀 들어야지 않나. 게다가 본인이 바틈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엄마랑 손 잡고 가면서 남의 얘기하듯 신나게 하는 아이가 참 웃겼다. 아니, 엄마를 뭘로 보고. 숙제하라고 할 때 도끼눈 뜨던, 강압적인 파쇼 엄마를 잊었나.



그러다 문득, ‘바른’에 대한 주윤이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바른’에 대해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서로 정리하면 그래도 10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을까.

“주윤아, 그럼 바른 자세는 어떤 거야?”

“음, 잘 앉아있는 거?”

“잘? 잘이 어떤 행동일까?”

“...”

“눈은 선생님, 귀는 쫑긋! 손은 무릎이나 연필! 그리고 포인트는 책상 위에는 교과서랑 연필 한 자루만 올려놓는 거야. 눈길이랑 손길이 다른 물건으로 가면 선생님 못 보잖아.”



내가 생각하는 바른 자세를 행동적인 말로 바꾸어 말해주었다. 주윤이는 흠. 하고 받아들이는 눈치다. 아이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그동안 어떤 자세로 수업을 받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우리 1학년은 하나씩 알아가는 단계니까 이전의 자세에 대한 잔소리는 접어두기로 하였다. 그러자 주윤이는 요즘 최대 어려운 일을 고백했다.


“엄마, 저는 교과서 몇 쪽 펴는 게 어려워요.”

“응? 교과서 펴는 거?”

“네, 교과서 펴세요. 하면 어딘지 모르겠어요.”

아, 우리 주윤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니, 귀도 들리고 숫자도 아는 데 이게 어렵다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어려움이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이해가 안 가기도 한다. 하지만 난 지금 이미 자애로운 ‘괜찮아’ 오은영 선생님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이 아이가 내 아이여서가 문제이지 뭐 그럴 수 있다.



“아 그래? 이것도 선생님과 눈을 떨어뜨리지 않고, 귀 쫑긋! 하면 돼.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페이지를 귀 기울여 듣고, 교과서 아래에 쪼그맣게 씌여진 숫자를 보고 확인하면 돼.”

“그게 어렵더라고요.”

“음, 그럼 말이지. 그럴 땐 옆에 짝꿍 교과서를 슬쩍 봐. 그것도 포인트야.”

“아하~”

“그리고 주윤아, 눈 선생님! 귀 쫑긋! 이걸 잘했으면, 스스로에게 마음속으로 칭찬도 해줘. 그거 잘하기 어려운 거야. 노력하는 거잖아”



이렇게 대화하는 도중, 나는 깨달았다. 내 질문부터가 잘못 되어 있음을. 나는 여전히 몇 번째야? 하고 물으며 상대적인 비교로 아이가 잘하고 못함을 판단하고 있었다.



삶의 과정에서 내가 하는 일에 지치고 방전이 될 때가 있다. 이때 나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과연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에 대한 불안이다. 이때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은 지난한 과업을 계속하게 해주는 연료가 되어준다. 이 연료 없이는 내 과업을 지속할 수 없다.


타인의 칭찬, 상, 상대적인 우월감. 이런 것들이 대게 연료가 되어주는데 여기에만 기대다 보면 위기를 맞게 마련이다. 마치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해외 물류난이 생기면 국내 대란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먼저 타인의 칭찬과 상은 타이밍과 운의 콜라보이다. 칭찬은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격려를 해줄 때 힘을 얻는다. 즉 칭찬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나와 소통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하고, 나의 노력을 세세히 눈여겨 봐주어야 하며, 적시에 격려해주어야 한다. 쇠약해져서 격려가 필요한 순간에,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 내가 필요한 격려를 툭! 던져주는 일은 인생에 몇 번 없다. 일단 나는 이 조건에 해당되는 것이 한 개쯤 있는 것 같은데, 나머지가 다 없으므로 나도 꽝이다. 의미 있는 칭찬은 일생에 몇 번 받기 힘들다.


상대적인 우월감도 가끔 확신을 준다. 하지만 상대적 비교는 안정적이지 않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가 상대적으로 잘했으면 나는 잘하는 건가? 만약 그 상대가 어느 날은 나보다 잘 해냈을 때, 나는 이제 갑자기 그 일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건가?


이렇게 타인의 칭찬, 상, 상대적 우월감은 모두 아웃 오브 컨트롤이다.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가 없다. 아니, 내가 내 자부심 좀 얻겠다는 데 왜 다른 사람에게 기대야만 하나. 국내 자원이 없으면 기술을 익히는 게 맞다. 그래야 외부의 압력에 좀 더 대대 하게 대처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한 기술은 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개인적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수업 시간의 ‘바른’ 자세라면, 어떤 나의 행동이 ‘바른’인지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는 것이다. 이때 내가 내린 정의가 주변 상황에 적절한가를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그때 느꼈던 기분이 어땠는지도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어줄 수 있다.


이렇게 상황에 적절하게 세워진 나의 정의를 내가 실천했다는 것은 너무도 대견한 일이다. 이때는 스스로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낌없이 쏟아주어야 한다. ‘나 자랑하는 거야.’하고 뻔뻔하게 웃으며 다른 사람에게 자랑도 해보는 것. 내가 그동안 참았던 맛있는 음식을 나를 위해 먹여주는 것. 거울 속 나에게 “잘했어.”하고 추켜세워주는 것. 스스로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주는 것. 이런 것들은 다 내가 만드는 연료가 되어준다. 그렇게 내 노력에 대하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쥐어 준다.


지금은 28명 중 20번째 정도로 바른 자세를 가진 주윤이도 10번째가 될 수도 있고 5번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번째보다는 순간순간에 ‘내가 잘하고 있구나.’를 자주 느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내 질문부터 바꿔야겠다 주윤이가 반에서 몇 번째나 되느냐는 질문이 아닌,

"오늘은 눈 선생님! 귀 쫑긋! 했어?"



우리가 만든 바른 자세의 정의인 이 두 가지를 잘 해낸 수업시간이라면, 잘 한거라고 말해주어야겠다. 그러면 주윤이가 꼭 스스로를 칭찬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스스로 연료를 채워 넣고 그 힘으로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단단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 가끔은 발칙하고, 너스레를 떨며 자랑도 하는 1학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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