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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Sep 26. 2022

1학년 학부모 상담주간_그 모든 면이 내 아이가 맞다

오후 4시 5분 전, 메모지와 연필을 들고 거실 테이블에 앉았다. 휴대폰을 켜고 스케줄 앱을 켠다. 그래, 오늘이 맞다. 그리고 4시가 맞다. 그래도 내 앙상한 기억력에 한없이 겸손해져 가는 깜박 쟁이 나를,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선명했던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은 이미 저 멀리 뿌연 안개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메모리를 얼마간 상실한 중년의 엄마는 다시 휴대폰을 켜서 메시지 앱을 누른다.

  “면담 일정 알립니다. 9월 20일 화요일 오후 4시 00분 전화 면담입니다. 평화로운 하루 되기를 바랍니다.”

친절한 선생님의 상담 확정 문자를 확인했다. 이제 더 이상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제야 내 마음엔 의심의 구름이 걷힌다.           



  연필을 든 내 마음에 확신을 쥐어주기까지 성실한 지구는 열심히 돌았고, 이젠 2분 전이다. 이젠 갑자기 또 막연히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니던 걱정이 든다.

  ‘뭘 여쭤보지?’          



  3월에 나눈 1학기 상담은 ‘김주윤 사용 설명서’처럼 내가 아이를 소개하고 걱정스러운 부분을 말씀드렸다. 3월, 그것도 겨우 셋째 주에 아이를 파악한다는 것은 무속인 말고는 어려운 일이 맞을 것이다. 나 역시 늘 성장하고 변화하는 살아있는 아이를 선생님께서 첫인상에 판단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독특한 행동양식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귀한 상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생님께 내가 집에서 알고 있는 아이의 독특한 행동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내가 아이를 기를 때 중요하게 여기는 점을 공유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사실 1학년은 3월에 갑작스럽게 학교라는 낯선 행성에 도착한 외계인들이다. 선생님은 학교라는 곳을 전혀 모르는 외계인과 함께 교실에 앉아 있으려니 땀이 삐질삐질 나실 게 분명하다. 선생님에겐 학교가 너무나 익숙해서 해야 하는 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정확할 텐데, 우리 외계인들이 그걸 알 리가 있나! 학교라는 새로운 행성에 놓인 외계인들이 보이는 새것의 행동에 학교 베테랑 선생님은 자주 황당하고 때론 그 천연덕스러운 무지의 해맑음에 신선한 실소를 지으시느라 분주한 3월을 보내고 계실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외계인들이 이해도 된다. 사실 학교는 참 요상하다. 생긴 거랑 하면 안 되는 것이 너무 짝꿍처럼 붙어있다. 쭉쭉 뻗은 직선의 복도는 보는 순간 다리가 먼저 반응할 만큼 달리기에 너무나 최적화된 곳이 분명한데 달리면 안 된단다. 그리고 상대가 물으면 답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예의 아닌가? 선생님이 물어보시니 대답을 하려는데, 아니 손을 들라니요! 집에서는 한 마디만 해도 “우와! 이렇게 잘하네!”하고 칭찬을 받았는데 말이다. 백번 양보해서 좋아 그래, 규칙이라고 하니 준법정신으로 손을 들었는데, 이젠 심지어 선생님께서 나를 선택해야 말을 할 수가 있다니! 역시 세상은 한번 타협하면 끝이 없다. 나 아는데, 진짜 아는데 선생님이 지명 안 하면 나 말 못 하잖아요. 그러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게다가 엄마가 어릴 땐 놀아야 된다고 해놓고 왜 수업 시간은 길고 긴데 쉬는 시간은 그렇게 눈 깜짝하면 끝나는 거예요? 아니 왜 그러는 거예요? 학교는?         


  

  우리 여덟 살은 아무리 생각해도 요상한 학교에서 두 계절을 보내고, 이제 세 번째 계절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아마 수업시간 자세는 베테랑이 되어 집중하는 시간과 딴짓하는 시간의 균형을 나름 만들었을 것이고, 화장실에서 응가를 시도해볼까 아니면 아직 부끄러우니 참아볼까를 고민하기도 할 것이다. 급식에 좋아하는 반찬도 이제 몇 가지쯤 말할 수 있고, 물론 또 이젠 절대 안 나왔으면 하는 반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친한 친구도 생겼고, 좋아하는 놀이도 생겼다. 급식 시간 후, 친구와 비밀을 길을 찾아 탐험을 해보기도 했고, 등굣길 학교 교정에 네 잎 클로버가 떼를 지어 사는 화단의 위치도 이젠 정확히 안다. 약속의 그 화단엔 언제나 친구와 형아 누나들 그리고 제법 단단해진 여덟 살의 작은 손에 네 잎 클로버가 자신 있게 반짝인다.   


        

  그렇게 아이가 학교를 알아가는 만큼 선생님께서도 여덟 살에 대한 이해의 면적을 넓혀오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확인하신 여덟 살의 모습은 내가 집에서 보아온 모습과 같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나의 여덟 살은 더 듬직했을 수도 있지만 때로 서툴렀을 수도 있다. 그게 궁금했다. 학교에서의 주윤이의 모습. 너무나 궁금하지만 어쩌면 평생 내가 보지 못할 학교에서의 주윤이의 모습이 참 궁금했다.           



  상담이 계획된 날부터 나는 계속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할까를 내내 고민했다. 머릿속에 떠도는 많은 두서없는 문장을 연필 끝에 붙여서 종이에 내려놓고 보니 결국은 두 가지였다. 교우관계에서의 모습과 수업시간의 모습.           



  “쉬는 시간에 주윤이는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활동성이 있는 편인가요?”

  “친구들과 놀 때 친구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인가요, 아니면 리드하는 편인가요?”

  “친구들은 주윤이와 함께 노는 걸 좋아하는 편인가요?”

  “어떤 특성을 가진 친구들과 주로 노나요?”

  “학급에 주윤이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가 있나요?”

  “주윤이는 쉬는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나요?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인가요. 아니면 친구들과 노는 편인가요?”

  “주윤이는 수업시간에 어느 정도 집중하나요?”

  “주윤이는 생각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도전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빨리 포기하는 편인가요?”

  “주윤이가 행동이 좀 느린데 혹시 문제가 될만한 상황은 있었을까요?”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주윤이의 학업적/생활적 강점은 어느 영역인가요?”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주윤이가 어느 부분을 좀 더 노력하면 더 좋을까요?”          



  나는 3월엔 “우리 주윤이는요...”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맡기는 엽기적인 그녀의 아련한 견우였는데, 9월엔 인터뷰이의 정보를 호시탐탐 노리며 오로지 직진하는 독수리의 눈을 가진 열혈 기자가 되어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께서 보아오신 주윤이를 설명해주셨다. 나는 내가 드린 질문마다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메모했다. 이 메모를 언제 또 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학교에서의 주윤이를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인화하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휴대폰 카메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듯이 나는 오늘의 상담에서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선생님의 단어들을 연필에 옮겨 적었다. 행여 날아갈까 봐. 그리고 깜박 쟁이인 내가 기억하지 못할까 봐.    


      

  “저와 친구들이 함께 놀이 활동을 할 때 누구보다 신나 하고 밝게 웃는 편이에요.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는 것은 아직 부끄러워하는데 대신 말을 걸어준 친구와 쉬는 시간에 친하게 놀고요. 잘 맞는 친구도 있어서 함께 잘 지내고 있어요. 몸으로 하는 활동도 좋아하지만 머리를 쓰는 활동을 더 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 정리는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입니다. 수업 시간에 다른 물건들이 올라와 있는 경우가 있어요. 아직 학습지를 정리하는 것도 익숙지 않고요. 그래도 그런 점을 주윤이에게 말해주었더니 지금은 제법 좋아졌습니다. 행동이 느려서 문제가 되진 않아요. 규칙을 잘 지킵니다. 그래서 규칙을 잘 지키는 친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말씀엔 집에서도 보아온 주윤이가 있었다. 주윤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정리를 하곤 했던 내 손이 주윤이에게 남긴 미흡한 정리라는 그림자가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제법인데! 하고 아주 약간 늠름해 보이는 구석도 들을 수 있었다. 주윤이는 학교에서 주윤이의 속도라는 씨줄과 흐름이라는 날줄로 한 칸씩 조금씩 엮어가고 있었나 보다.           



  어쩌면 나는 주윤이의 속도와 흐름보다는 내가 설정한 유니콘 같은 1학년, 또는 초등학생의 모습을 마음속에 이미 그려놓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유니콘에 주윤이를 끼워 넣고자 지금의 주윤이를 내 기준으로 판단해왔는지도 모른다. 주변 환경을 잘 살펴서 적절히 행동하고 규칙을 지키면서도 융통성 있는 모습.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유머로 배려하고 신나게 놀다가 수업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집중하면서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학생.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에서 열성적으로 공을 차다가 구르면서도 무릎의 모래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그런 유니콘 같은 남자아이. 생각해보면, 나도 그렇게 못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질문을 하는 사람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혹여 할 이야기가 없을까 미리 질문을 준비했는데, 그 질문 속에는 내가 바라는 주윤이의 모습을 담아놓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면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 아이. 어쩌면 주윤이는 점심시간에 공을 차는 것보다 자리에 앉아 루빅스 큐브를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일 수 있다. 여러 친구들과 잘 지내기보다는 마음에 맞는 친구와 더 오래 놀고 싶어 하는 아이일 수도 있다. 주변을 살피는 눈치가 없다 여겼지만, 생각보다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는 아이였을 수 있다.          



  엄마가 되며 기억력의 메모리를 잃은 부분에서 겸손해진데 더해서  가지  확신할  없는 분야가 있다. 바로 ‘ 아이가 어떻다.’라는 확신이다. 내가 정해놓은  확신 대신 ‘~ 수도 있다.’라는 불확실함을 수용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자신감이 있을 때만   있는 어려운 마음이 맞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에 대해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해지고, 마음이 내려 앉아도 용기를  필요는 명확하다. 사실  모든 면은  아이가 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게 익숙한 아이의 모습뿐만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 보이는 아이의 모습마저도 수용할 때, 그래서 아이도 부모가 자신의 어떤 면이라도 수용하고 있음을 느낄 때 어쩌면 내 아이는 더 빛이날지도 모르겠다. 다이아몬드가 수천 개의 작은 커팅이 여러 방향으로 정교하게 나있어 사방의 빛을 모두 반사하며 빛을 내듯 나의 여덟 살도 세상을 향한 여러 방향과 자신만의 각으로 스스로를 깎아가며 세상의 빛을 만나 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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