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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Apr 12. 2022

1학년 두근두근 첫 소풍엔 김밥


  가벼운 연둣빛 나뭇잎이 한껏 들떠서  햇살에 딸랑딸랑 거리는 4월의 봄날. 오늘은 우리 가족의 마음도 4월의 들뜬 봄날을 닮은 날이다.      



  “신난다~ 신난다! 엄마! 너무 신이 나요!”

  아이는 행여라도 소풍에 늦을세라 눈 비비고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오늘은 그냥 식탁이 아니다. 참기름의 꼬순내가 온 집에 가득한 소풍 가는 아이가 있는 집의 식탁이다.



  소풍날 아침의 식탁은 경쾌한 빛깔들이 꼬순내에 울려 퍼지는 신나는 소풍의 감칠맛 나는 인트로이다.


  오색창연한 색의 재료들이 한껏 들떠있는 소풍날 식탁에는 주황 당근, 초록 시금치, 노란 단무지, 빨갛고 하얀 맛살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게다가 그 옆엔 단정한 베이지색 햄, 그리고 햇살만큼 똥그란 달걀지단과 참기름에 깨소금을 듬뿍 뿌린 고슬고슬한 하얀 밥까지 놓여있다. 그저, 봄의 보물섬이 여기인 듯 하다.      


  나는 우리 집의 김밥 말기 담당이다. 이른 새벽에 일어난 남편이 재료를 준비하면 이제 내 차례이다.


  잘 재단된 김에 고소한 밥을 살뜰히 깔아 둔다. 이때 나는 밥은 밥알 하나의 두께로만 얇게 펴는 것에 아주 열중한다. 남편이 밥 물을 잘 맞춘 덕에 오늘 밥이 뭉개지지도 않고 밥알이 살아있으면서 부드럽다. 이미 기분이 좋다.


  그 위에 김과 비슷한 크기의 밝고 노오란 달걀지단을 깔고 재료를 차례차례 올린다. 노란 단무지 옆에는 베이지색 햄을 놓았고, 그 옆에는 초록초록 시금치를 하나하나 펼쳐서 가지런히 놓는다. 그 옆은 주황 당근의 자리이다. 채를 썰어놓은 주황 당근을 한 움큼 가득 집어서 시금치 옆에 나란히 줄지어 놓았다. 채소를 좋아하는 나는 시금치도, 당근도 단무지만큼의 두께로 넣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맛살도 하나를 통째로 넣는다.


  마지막 단계! 노란 달걀지단을 먼저 돌돌 말고, 밥을 깔아 둔 김밥을 김말이로 돌돌 꾹꾹 눌러가며 싼다.

‘맛있어져라!’

‘재료들이 잘 붙어라!’



김말이를 꾹 꾹 손으로 누르는 압력마다 맛있는 주문을 외운다. 김밥을 좋아해서 자주 만들어 먹지만, 만들 때는 언제나 첫 마음이다.       



  길쭉한 김밥에 참기름을 바르니 윤기가 더하다. 칼로 쓱쓱 썰어서 단면을 보니, 재료들의 빛나는 색깔들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동글동글 썰어진 김밥 알을 하나씩 도시락에 넣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빨간색 도시락에 하나하나 가지런히 놓는 손길마다 행복한 점심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디테일 마무리는 김밥 한 알 한 알에 참깨를 뿌리는 일! 솔솔 뿌리는 참깨가 오늘따라 더 윤기는 땡글함을 보여준다. 아이가 소풍에서 도시락을 여는 순간 아이의 마음에 고소한 향을 입혀주겠지 하는 기대에 내 마음에서도 꼬소한 미소가 번진다.     



  “주윤아! 늦으면 안되니까 어서 세수하고 이 닦자!”

새벽부터 일어났지만 김밥을 싸는 아침은 너무나 분주하다. 남편은 아이의 옷을 입히고, 나는 서둘러 가방에 도시락, 돗자리, 물, 간식을 넣고는 학교로 출발한다. 사실 난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다. 이럴 때 발휘되는 아줌마의 패기로 일단 머리를 질끈 묶고야 만다. 김밥 싼 날이니까. 그리고 난 이미 마음이 즐거우니까 다 괜찮다.     



  “엄마! 너무 신나요! 신나고 신나고 신나요!!”

  “1교시부터 5교시까지 다~~~ 체험학습이에요! 대단하지 않아요?”

학교에 가는 길 내내 아이도 신이 났다. 오늘 우리 아이는 걷는 법을 모르는 것 같다. 아차! 집에서 나오는 길에도 요즘 신지 않던 운동화를 고르고는

“엄마! 이 운동화가 더 가볍잖아요!”

하던 아이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 2년간 유치원에서 소풍이 없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 맞이하는 첫 소풍은 아이에게 그저 설렘이고 즐거움이고 기대이고 신남인 것이 확실하다. 또 그걸 이렇게 말로, 온몸으로 보여주는 아이가 참 고맙다. 이렇게 싱그러운 아이라니! 신남을 신나게 표현하는 아이의 얼굴이 오늘 봄 햇살만큼 환해서 또 고맙다.     



  아이 덕분에 나도 김밥을 싸서 친구와 근처 공원에 갔다. 봄이 내린 공원에 앉아 김밥을 나눠 먹는 그 오후의 행복은 덤이었다. 불어오는 봄바람도, 환한 노란 전구를 켜놓은 듯 잔잔하게 빛나는 유채의 노랑노랑도 모두 아름다운 봄이었다. 이런 오늘을 마련해준 아이의 소풍에 또 고맙다.      



  아이는 체험학습이라고 했던, 나에게는 소풍이라는 단어가 더 좋은 오늘. 나를 들뜨게 했던 봄날의 소풍 아침은 참 행복했다. 남편과 나의 손길이 닿은 꼬소한 향과 황홀한 빛깔의 김밥에도, 아이의 천진난만한 맑은 신남에도 봄이 닿아있었다. 봄의 찬란함과 맑음과 들뜬 연두의 빛깔이 참 환하고 따듯했다.      

  


역시, 김밥은 그리고 봄 소풍은 개별로 아름답고 함께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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