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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n 21. 2022

1학년 학부모 공개수업의 날

  6월의 어느 금요일 아침, 옷장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스캔한다. 오늘은 어제의 아침과 질적으로 다른 날이다. 엄마 마음이 두근두근 긴장되고 기대가 되는 중요한 날이다. 바로 아이의 학급 공개수업의 날! 드디어 학급에서 20번째쯤 바른 자세를 할 수 있다는 아이의 수업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다.              



  무얼입지? 온갖 금은보화를 다 하고 가야 하나? 새 옷? 노! 요즘 구입한 새 옷은 간편복 스타일로 너무 다들 캐주얼하다. 공식적인 자리에 학부모로서 첫 참석인데 이렇게 가벼워 보일 수는 없다. 하의는 무릎을 가려야 하고 상의는 좀 핏 되는 것으로 마음먹는다. 그렇다면, 나의 예식 전용 원피스? 코발트블루 롱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를 하면? 음. 그래도 그나마 이 원피스가 단정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데, 너무 세상과 동떨어져 보인다. 2안으로는 니트 상의에 스커트. 너무 꾸미지 않은 느낌에 무난한 조합이지만, 단 치명적인 고려사항이 있다. 이 조합은 니트 상의를 스커트에 넣어 입어야 하기에 나의 호르몬 주기 상 몸이 슬림해야 입을 수 있다. 과연 오늘, 가능할까? 일단 서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배를 쏘옥 넣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다. 트라이! 그리고 여자의 자신감! 블랙 7cm 굽의 하이힐에 올라탔다. 아마도 이 하이힐은 배를 넣는 자세와 자신감에 도움을 줄 것이다. 너를 믿는다.             



  아이에게 교실이 몇 층인지는 물어보았지만, 낯선 학교 건물에서 교실 위치를 알기가 어려웠다. 일단 다른 부모님들이 많이 움직이는 쪽으로 따라나섰다. 2층이라고 아이에게 들었지만, 따라가다 보니 3층. 복도에 계신 선생님께 “1학년 교실은 어디인가요?”했더니 친절하게 2층이니 한 층 내려가라고 말씀해주신다. 다시 내려가서 살펴보니 부모님들이 모이는 복도가 보인다. 아, 저기구나! 1학년 교실!            



  28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책상과 의자에 앉아있다. 너무 관용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병아리들 같다. 재잘재잘 앉아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한 명씩 한 명씩 들어오는 엄마, 아빠들을 보고 개구지고 반가운 미소를 보낸다. 손을 흔들기도 하고 싱긋 웃기도 한다. 그 맑은 경쾌함으로 가득한 1학년 교실의 쉬는 시간이 참 예뻤다. 나도 아이에게 가까이 가서 “엄마 왔어!”하고는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아이가 앉아있는 모습을 찍었다. 꽤 의젓하면서도, 엄마가 자신의 교실에 온 것에 마음이 간질간질한 표정이다. “엄마 뒤에 있을게.”하고는 교실 뒤로 가서 아이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렇게 재잘거리는 귀여운 소란이 잠잠해지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1학년 여름 교과서  가족이 주제인 수업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엄마를 골랐어라는 그림책을 통해 수업해주셨다. 그림책  엄마의 모습에 웃기도 하고, 아이의 예쁜 마음과 엄마의 서툴지만 사랑이 담긴 마음이 교실에 퍼지며 마음은 이내 따뜻한 흐뭇함으로 번졌다.



  선생님께서는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읽은 ,  내용에 대한 퀴즈를 진행하였다. 무작위로 공에 뽑힌 아이가 일어서서 대답하는 방식이었는데, 학급의 다른 친구들이 힌트를   있게  주셨다.  방법은 교실 뒤에 잔뜩  계시는 많은 부모님  앞에서 지명되어 말했다가 틀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아이의 긴장도를 낮춰주는 효과가 보였다. 그리고 앉아있는 아이들도 도움을 준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답을 크게 외칠  있도록 해준 덕에 아이들은 신나게 참여할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는 자연스러웠다. 덕분에 교실은 부모도, 아이들도 모두  마음으로 크게 외치며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마음을 들인 매끄러운 배려는 누구를 소홀하게 대하지 않는다. 너그러운 마음을 잔잔하게 내어준다.



  마지막 활동으로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카드 쓰기 활동이 시작되었다. 상자 그림의 카드에는 너비가 넓은 줄 몇 개가 그어져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색칠을 해서 접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당연히 그림으로 그려도 된다고 하셨다. 아이들은 각자 활동지를 들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담기 시작했다.             



  나는 강한 자성에 이끌려 내 아이에게 눈을 고정시켰다. 아마도 아이 앞에 볼록거울이 있었다면, 아이 책상이 타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활동지는 집중해서 해내는지, 글은 반듯하게 쓰는지, 색칠은 꼼꼼하게 하는지 정말 매의 눈으로 주시했다. 그리고 사실 절반 이상은

‘과연 아이는 어떤 예쁜 마음을 쓸까?’하는 기대감이 컸다.           


  

  그런데, 그림으로 그려도 됩니다! 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는 그 줄이 그어진 학습지 가~득 차게 빨간 하트를 그렸다. 아이의 간결한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언제나 내가 나에게 바라는 행동의 간결함을 여기서, 굳이 여기서 보다니. 하... 분명 선생님께서는 아직 글이 서툰 아이를 위한 말씀이었거나 시간이 남는 아이들에게 하신 말씀이셨을 텐데. 아이는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A4 종이가 가득 찬 빨강 하트를 그리고 열심히 색칠에 돌입했다. 그 순간, 나는

  '크! 역시 우리 아들이 맞네.!' 싶었다.        


     

  ‘역시 우리 아들, 쉽게 가네.’

  ‘그래, 크게 사랑하면 되지.’

  활동지를 해결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데, 그 모습이 너무 내가 아는 아들이 맞았다. 여전히 집에서처럼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쉽게 말하면 눈치 없이) 자신의 생각을 편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잘해야지. 부모님이 오셨으니 더 잘해야지.’ 그런 의식이나 인정 욕구 없이 평소 집에서 보이던 모습을 학교에서도 그대로 하고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의식은 했겠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성향을 가리기엔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반듯한 글씨로, 사랑스러운 한 문장을 예쁘게 담아 카드를 주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아마

‘역시 우리 애가 바르게 앉아서, 학습력도 좋고, 주의력도 좋아.’

하며 뿌듯한 착각에 휩싸여 돌아갔을 것이다. 그리곤 짐짓 대수롭지 않은 척 지인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문장을 써서 주는데, 좋더라구. 그리고 학교 가니까 확실히 글씨가 반듯해지던데.'

하고 자연스럽게 자랑도 했을지 모른다. 이렇게 아이에게 내색은 안 하지만 마음속 내 어깨가 으쓱으쓱했겠지. 하지만 아이는 내 예상, 아니 내 착각이 가득한 기대를 여지없이 깨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세요. 난 이런 김주윤입니다.’      



  하트를 크게 그린 후, 카드를 접을 때도 아이는 서툴렀다. 위쪽은 바깥쪽으로 접고, 아래쪽은 안쪽으로 접어서 겹치게 완성하는 카드였는데, 아이는 계속 방향이 틀려서 완성된 모양이 잘 나오지 않았다. 주위에 한 번에 카드 접기를 성공한 아이도 있었지만, 아이는 여러 번 시행착오 끝에 결국 스스로 올바른 방법을 찾아 성공했다. 그리곤 뒤를 돌아 친구에게 자기가 만든 것을 보여주었고, 그 친구도 자기가 만든 것을 보여주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서툰 과정을 거친 완성작이 서로 마음에 들었나 보다.        


     

  드디어 수업의 마지막엔 아이가 뒤에 서 있는 부모님에게 카드를 전달하러 왔다. 아이가 다가오자 나도 드디어 한 발짝 움직였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꼬옥 안아주었다. 고마워. 하고 나의 마음도 전했다. 아이는 살짝 쑥스러운 듯 웃었다. 아이는 다시 자기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나는 “엄마 갈게.”하고 원래의 내 자리인 교실 밖으로 나왔다.             



  교내에 들어가느라 신발을 쌌던 푸른색 부직포 덧신을 벗고 주차장으로 황급히 걸어 내려오는 데 종아리 근육이 풀렸다. 아마도 수업 내내 볼록 나온 배를 넣고자 힘쓰고, 아이의 활동과 태도를 응시하느라 미처 알아차리진 못했지만 오랜만에 신은 힐이 제 역할을 해내는 통에 다리가 부담이 되었나 보다.             



  이렇게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학교에 간 엄마에게 아이는 본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꾸밈이 없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한껏 꾸민 사람을 두고 훅 들어오는 한 인간의 담백한 본질을 경험했을 때, 너무나 본질이어서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 오롯한 본질에 대하여 좋음도 싫음도 판단할 수 없었다. 오늘 아이는 그 자체가 평가나 판단이 무용한 유일무이한 원석이었다.



  "주윤아. 엄마 학교 가서 주윤이 보니까 너무 좋더라. 또 가고 싶다."

  "음, 가을쯤 또 올 수 있지 않을까요?"

  "정말? 그러면 좋겠다. 엄마 또 초대해!"

  "네!"  


  과연 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갈까. 이것이 참 궁금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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