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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윤 Jun 10. 2023

틀린 마음도 있다

모든 마음이 이해받아야 하나요!?

  아홉 살이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30분 전, 집안일을 하다가 벌떡 일어섰다. 이구. 짠하기도 하지. 난 이렇게 집에 있는데 아홉 살 아이는 학교 끝나고 학원까지 다녀온다니. 세상의 모든 안쓰러움들이 와락 내게 몰려든다.



  나는 이제 막 퇴근해서 소파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겨우 정리한 후 소파에 몸을 빨래 널듯 걸었다. 그런데 발바닥의 까슬한 먼지가 거슬린다. 결국 거실만 잠깐 청소기를 막 돌리고 겨우 소파에 다시 앉았지만 나는 더 이상 피곤하지 않다. 아니 더 이상 피곤할 수가 없다. 내 아홉 살 아가는 학교 끝나고 학원까지 다녀오지 않는가.



  나는 버퍼링 없는 단호한 움직임으로 부엌으로 간다. 이때 다른 명분과 이유는 없다. 그저 하나다. 내 아이가 짠하다. 나는 토스터기에 식빵 1장을 넣으려다 살짝 고민한다.

  ‘이렇게나 고단할 아이에게 겨우 식빵 1쪽이 충분할까?’

 난 당장 식빵 2쪽을 토스터기에 넣고 레버를 아래로 쭉 당겨 노릇노릇 구워지는 네모를 기다린다. 2장 넣으니 이제 내 마음도 아쉬움이 없다. 내 아가가 힘들 텐데 남으면 내가 먹으면 되지 여기서 식빵 1쪽 아끼는 게 뭐가 대수냐. 이제야 나는 아낌없이 다 베푼 넉넉한 엄마가 된다.



  슬라이스햄, 달걀 스크램블, 상추, 라즈베리잼을 켜켜이 쌓은 따끈한 샌드위치가 완성되었다. 색색의 재료가 쌓여가는 만큼 내 마음도 불러간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해주는 마음은 언제나 결국 나를 위한 것이 맞다.



  띡띡띡띡!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나의 아홉 살이 집에 왔다! 나는 후다닥 현관 모퉁이에 숨는다. 아홉 살이 집에 들어왔을 때 모퉁이에 숨어 “왁!”하고 놀라게 하는 건 우리의 루틴이다. 늘 해왔던 일도 반가움보다 힘이 약하다. 10초 동안 모퉁이에 숨는 일은 매번 신나 죽겠다. “왁!”하고 나타난 내게 아홉 살은 늘 반달눈으로 웃어주니까.




  “주윤! 왁!”

열 손가락을 얼굴 옆에 대고 반겨주고는 아홉 살을 내 품에 꼭 끌어안는다. 이 말랑하고 고운 아홉 살을 오늘 오후도 꼭 품에 넣을 수 있는 오후를 나는 진심으로 사랑한다.



  “엄마,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어요. 화내지 말아요. “

  “그럼 그럼~절대로! 무슨 일? “

  나는 아홉 살 내 아가를 위해 준비한 따끈한 샌드위치의 온기가 여전히 남은 내 마음은 한없이 온화해서 어떤 일도 다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럼 그럼.



  “선생님에게 수업시간에 장난을 했어요. 제가 왜요? 하고 말했을 때 선생님께서 왜요? 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근데 왜요 왜요? 하고 세 번 더 했어요. 장난으로요. 근데 선생님이 무례한 행동이라고 했어요. 원장님께도 말해야겠다고 하셨어요. “



  난 분명히 화내지 않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아이의 문장이 계속될수록 부글부글 화가 났다. 더욱이 있었던 일을 말하는 아이의 생각은 장난을 이해 못 한 선생님에 대한 원망이었다는 판단에 더 화가 났다.



  “장난이라고 하지 마.”

  “네!?”

  “네 장난에 선생님도 즐거웠어? 아니잖아. 그러면 그거 괴롭힘이야.”

  ”그 일이 일어난 게 무슨 시간이었어? “

  ”수업시간이요. “

  “수업시간은 뭐하는 시간이야?”

  “공부하는 시간이요. “

  “수업시간은 선생님과 친구의 발표에 경청하고 네 생각을 마련해서 참여하는 시간이야. 근데 장난을 해? 그것도 선생님께?”

  “...”

  “그리고 선생님께서 그만하라고 하신 말씀은 안 듣고, 원장님께 말한다고 하니 무서웠던 거야? 선생님은 괜찮고 원장님은 무서워? 왜 선생님을 다르게 대해? 그거 진짜 비겁한 거야.”


  “난, 정말 그 태도에 실망이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는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맞큼 목소리를 높여가며 말했다. 눈물을 펑펑 쏟는 아홉 살의 얼굴을 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을 때, 내 분노가 사글어들었던건 아니었다. 실망감이 스며든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 탓이었다.



  물론 펑펑 우는 내 짠한 아홉 살의 눈물에 오은영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육아서적의 말들이 바삐 스쳐갔다.  하나같이 말하는 그 말들.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세요. 수용해 주세요. 이해해 주세요.’



  하지만, 그 순간 그 문장들은 내 아홉 살에게는 틀렸다. 모든 문제에 열린 응답이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에 따라 정답과 오답, 또는 열린 응답의 유형은 다르다. 모든 문제를 열린 응답으로 받아줄 수는 없다. 어떤 문제는 정오답이 확실하다. 문제를 잘못해석해서 틀린 사람이 서운하다고 해서 틀린 마음을 맞았다고 동그라미 쳐줄 수는 없다.

  “아니요. 세상엔 틀린 마음도 있어요.”

  “틀렸다고 알려줄 마음도 있어요.”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아우성치는 세상이다. 내 힘듦을 들어달라고, 들어주지 않으면 매정하다 나쁘다 하는 세상이다. 이해받지 못해서 아이가 비뚤어지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는 세상이다. 제대로 훈육하지 못한 것보다 아이를 수용해주지 못함에 가슴아파하는 세상이다. 그 덕에 내 기분이 이렇게 나쁜데 왜 넌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느냐 큰 소리 치는 세상이다.



  그 마음이 정당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다. 질서와 규정과 상식을 벗어난 말이라도 그저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면 엄마로서, 규칙을 집행하는 업무자로서 능력 없는 사람이 되는 세상이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반 애가 점심시간에 친구랑 놀다가 의견이 안 맞아서 교실 문을 발로 쳐서 고장을 냈어요. 그걸 알고 교감선생님은 아이의 마음을 달래줬어요. 화가 났구나 하고. 처리는 학교에서 할 거라고. 그런데 나는 내가 담임이니까 아이에게 교실 문을 발로 찬 건 잘못한 행동이라고 아이에게 지도했어요. 하지만 이미 아이는 내 말이 안 들어오죠. 난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이니까. 잘못한 건데 잘못했다고 지도하는 나만 나쁜 사람 되는 거예요.”



  슬픔, 분노와 같은 부적감정과 기쁨, 즐거움과 같은 정적 감정은 별개의 감정으로 구분된다. 감정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양상이 달라 구분되는 감정은 다르게 다루어져야 한다.



  마음도 그렇다. 마음이라고 해서 다 이해받고, 이해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이해되어야 할 마음도 있지만(많지만), 틀린 마음이어서 고쳐져야 할 마음도 있다. 누군가에게 피해와 스트레스를 주었거나 누군가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은 마음은 틀린 마음이다. 작은 불이 산을 덮치지 않도록 불씨가 보일 때 여지없이 바로잡아져야 하듯 단호히 바로잡아져야 할 마음도 분명히 있다.



  티브이에 나와 조언을 받는 아이들과 부부들은 보통의 아이와 부부가 아닌 경우가 많다. 티브이에 나오는 드라마와 예능에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나오지 않는다. 화젯거리가 되어 시청률이 나올 것으로 예측되는 일부 사례들이 나올 뿐이다. 그들은 단호한 훈육만큼이나 이해받아야 한다는 특별한 케이스로서의 조언을 받는다.



  그런 특별한 사례를 보통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연예인의 비주얼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의 비주얼이 보통의 우리와 다르듯 티브이에 나오는 몇몇 사례는 보통의 우리와 다르다. 단적으로 말하면 약물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례와 보통의 사례는 다르다.



  내 마음으로 피해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은 이해받기보다는 다시 되돌아봐야 하는 마음이다. 고쳐져야 하는 마음이다.



  아홉살이 테이블 너머로 눈물을 흘린다. 아이는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을 꺼냈으나, 나는 그 마음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그리고 나는 끝내 아홉 살을 위해 준비한 따끈한 샌드위치를 꺼내지 못했다. 식은 샌드위치만큼 오늘 우리의 마음은 납작했다.



  아홉 살은 큰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쏟으며 행동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하고 선생님께 사과하겠다고 했다. 나는 받아주는지 아닌 지는 선생님의 몫이라고 납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일단 밥을 먹으라며 밥에 사골국을 데워주었다.


  무례했던 네 행동은 잘못되었다. 그 마음에 나는 충분히 실망했고 나는 잘못되었다고 여긴다. 네 행동은 이해해 줄 수 없으나 나는 엄마여서, 잘 못 가르친 엄마여서 그 모습을 뺀 나머지는 여전히 네가 짠하다. 하지만 그 행동은 네가 진심으로 수습하길 바란다. 각자의 잘못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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