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던 몇가지 이유들
모발이식 수술을 하니까 주변에서 왜 갑자기 말도 없다가 어떻게 수술을 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무슨 계기가 있냐고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답을 하려니 뚜렷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한두 가지 이유가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은 아직도 다 정리가 안돼서 글로 써보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시점은 삼십 대 중반부터였다
병원에 가니 약을 처방해 줬고 나는 프로페시아란 약을 10년을 넘게 먹어 왔다
하지만 결국 약이 잘 듣지 않는 시점이 와서 두 번째 옵션인 두타를 먹었으나 몸에 받지를 않아 그냥 먹는 것을 중단했다
그리고 바쁜 회사생활을 보내면서 점점 날아가는 머리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방치하게 되었다
아마 주변에서 나와 비슷한 단계를 거쳐 자포자기 단계까지 가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가 심각하게 빠진 후 나는 마침 집에 있는 애견미용도구를 이용해서 삭발 스타일로 직접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주변에 삭발 스타일로 다니는 친구도 있어서 결심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주변 시선을 두려워하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데로 깎고 다니기 시작했고 이제 간간히 듣던 잘생겼다는 칭찬은 아주 먼 과거의 리즈시절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여기까지는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마침 흉선암 수술까지 받는 바람에 그냥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지경을 넘겼다
그래서 결국 앞과 윗머리가 없는 상태로 마치 옛날 일본 영화에 나오는 사무라이 스타일로 지금까지 살았다
머리가 빠진 탈모인의 삶을 살아 보니 정상인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모발이식 수술을 결심한 이유가 되었다
1. 어머니가 너무 안타까워하셨다. 어떻게 생겼든 제자식이 제일 잘생겨 보이는 법인데 머리가 이모양이니 너무 안타까우셨던 것이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그렇게 가발 타령을 하셨다
2. 와이프가 스킨십을 하는 것을 소스라치게 싫어하게 되었다 솔직한 이야기로 내가 만지면 지하철에서 머리 벗어진 중년 변태 아저씨가 추행하는 것 같다고 해서 우리는 완전히 같은 집에 사는 동거인으로 변했다
(솔직한 소감은 키도 작은 나를 내 얼굴 하나 보고 결혼했는데 속은 기분이다 였다)
3. 회사에서도 내 옛날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지금의 모습을 보고 엄청 안타깝다는 듯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이분들은 솔직한 피드백을 한 것인데 방법이 없으니 나는 그냥 예예 하는 수밖에
4.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우산을 쓰고 다니고 싶은 정도가 된다. 모자를 쓰면 머리가 더 빠질 것 같고 안 쓰면 머리가 익을 거 같다
머리카락이 장식으로 달려 있는게 아니였던 것이다
5. 자전거를 같이 타고 밥을 먹거나 쉬는 시간에 헬멧을 벗으면 모르는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나는 마치 머리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인데 이런 난처한 반응은 아무리 자주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암수술을 통해서 나와 같은 병이 걸린 사람이 아니면 내 처지를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환우 카페 회원이 내 심정을 더 잘 안다) 탈모에 있어서도 비 탈모인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지금은 수술 후 2주가 지나서 다행히 수술한 머리카락이 아직 붙어 있고 주변 사람들은 과거의 모습과 가까워진 나를 놀라워하거나 환영해 준다
탈모를 겪는 것은 나의 노년을 미리 경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머리가 빠지면 완전히 남성성을 상실한 중성의 노인이 되는 것이며 10년 20년 뒤를 지금 바로 경험하는 것과 같다
1년 후 나는 부족한 밀도를 채우기 위해 재수술을 할 것이다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달았는데 이번에 나는 잃어버린 것을 아주 철저히 되찾고 말 것이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누군가 인정해 줬기 때문에 생겼던 것이지 결코 내 스스로 만들 수 없다
그게 가능한 사람들은 초인이라 나는 단언한다
이제 나는 탈모인의 심정을 이해하는 비 탈모인처럼 살아갈 것이다
탈모상태로 산 몇년간의 이런 경험은 다시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불쾌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계신 분이 있다면 고민할 시간에 그냥 빨리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인생 그리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