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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장한 Feb 05. 2023

마스크를 벗을 용기와 창피지수

교회에서 마스크는 벗어도 될까?

간만에 교회에 왔더니 마스크를 벗은 사람은 설교하는 목사님과 나 둘 뿐이었다

이런 과도기적 상황은 몇 달 지나면 언제 그랬나는듯 사라질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은 상황만 보면 흥미로운 부분을 놓치기 어렵다


얼굴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일은 코로나 전에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몇 년간 얼굴을 가리고 다니면서 얼굴의 눈 밑에 부분은 쉽게 보여줄 수 없는 부위가 되어버렸다


맞는 주장일지라도 혼자서 먼저 행동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정도 차이는 개개인에게 존재하는 법인데 약간의 창피함을 무릎 스는 정도를 나는 창피지수라고 불러 보겠다


예를 들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을 수 있느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덜 느끼냐 같은 성향을 만일 지수화할 수 있다면 창피 지수라고 정의하겠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MBTI의 E나 성향을 말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마스크를 벗고 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이 상황은 마치 나의 창피지수를 시험하는 시험대 같이 느껴진다

마스크를 써야 되는 논리는 대부분 이타적이지만 벗어야 되는 논리는 자기중심적이다

이런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에 요즘 마스크를 벗는 행동은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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