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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역사쟁이 Oct 18. 2016

경주, 천마총에 가다.

경주, 야경을 즐기다.




경주, 야경을 즐기다.


우리집 실세와 함께 하는 여행은 저녁시간이 꽤 바쁘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계획된 내일 일정의 세부사항을 점검한다. 답사 코스를 바꿀까? 점심은 어디서? 등등.... 하지만 이번 여행은 아들과 둘이서 온 관계로 저녁시간이 한가로웠다.
무더위 속 강행군(?)을 했기에 저녁시간은 숙소에서 쉴 만도 했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 야경을 즐기기로 했다.
대릉원은 한산하여 매표 후 바로 들어갈 수 있고, 첨성대는 그냥 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월지(안압지)이다. 저녁 8시가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낮에 미리 매표를 해야 한다.




천마총 가는 길
천마총 가는 길


저녁을 먹고 야경을 즐기기 위해 첫 번째로 찾은 곳은 대릉원 안에 있는 천마총이다. 해가 넘어가기 직전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매표소를 통과해 여러 무덤 사이로 난 길을 10여 분 걸었다. 
역사유적지가 아니라면? 이곳은 공동묘지 정도 되는 곳이나 그 누구도 공동묘지를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편안한 차림으로 조용조용 대화를 나누며 걷는 사람들, 석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인다.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원효의 해골물 이야기(논란이 있지만)가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일상에서 원효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천마총 입구
안내문


경주국립박물관에 오세요.~~~로 읽힌다. 박물관에 갔으나 천마도는 만날 수 없었다. 일정상......


천마총 안 목곽 내부
천마총 안 단면


재미없는 교과서 이야기를 좀 해야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많은 무덤이 등장한다.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고인돌이 있듯이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이 존재한다.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은 크게 굴식돌방무덤과 돌무지덧널무덤이다. 굴식돌방무덤은 고구려와 백제에서 유행한 양식이다. 
굴식돌방무덤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돌방' 이다. 돌로 만든 방이 있었다는 것은 문도 있었다는 것이다. 들어가는 문이 있었기 때문에 도굴꾼들의 쉬운 표적이 되었고, 대부분이 도굴된 상태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에서 유행한 무덤 양식이다. 천마총은 대표적인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목곽을 만들고, 그 안에 관을 넣고, 축구공 크기만 한 돌을 목곽 위에 쌓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든다.
무덤의 문이 없고, 도굴꾼이 무덤을 파헤치면 위에 쌓여있던 돌이 무너져 내리면서 도굴을 어렵게 만든다. 때문에 신라의 많은 무덤들이 온전하게 보전되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백제에서 유행한 벽돌무덤(무령왕릉)도 있다.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일시적으로 유행한 듯하다.


장니(말다래)에 그려진 천마도


당연히 복제품이다. 천마총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돌무지덧널무덤은 무덤의 구조상 벽화를 그릴 수 없다. 천마총의 천마도는 벽화일까?를 묻는 시험문제가 자주 출제되었다. 
천마도는 장니(말다래)라고 하는 것에 그려진 그림이다. 장니는 말안장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려 흙이 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장비이다.

천마도가 그려진 장니는 자작나무 껍질을 겹쳐 만들었다고 한다. 천마도는 벽화가 아니에요......

말안장
말 안장과 기마 도구


천마도가 그려진 장니가 위의 말안장에 걸쳐져 아래로 내려졌을 것이다.


무기를 포함한 다양한 껴묻거리(부장품)


무덤은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다. 고대로 갈수록 사후세계를 더 믿었기 때문에 많은 껴묻거리(부장품)를 함께 묻었다. 죽은 자의 사후세계를 위한 행위였으나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허리장식


신라인의 옷에는 주머니가 없었다고 한다. 필요한 소지품을 허리에 매달고 다녔다고 하는데 그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금제 장신구
금제 모자와 새 날개 모양 관장식


천마총에서 발굴된 대부분의 금제 도구는 순금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신라인들의 금속 공예 기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은 신라의 다른 금관에 비해 크기가 크고 정면의 '출(出)' 자 모양이 4단(다른 것은 3단)인 것이 특징이다. 금관의 뒤편에는 사슴뿔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천마총 발굴의 뒷담화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 캐스팅에 대한 뒷담화를 하곤 한다. 예를 들면 "드라마 '구르미 00'에 박보검이 아닌 유해진을 캐스팅하려 했다. 드라마는 성공하고 배우는 큰 인기를 얻는다." 이런 식이다.
천마총도 위와 같은 일화를 갖고 있다. 1970년대 당시 외형상 규모가 가장 큰 황남대총을 발굴하고 현재 천마총과 같이 개방하는 계획이 수립된다. 발굴팀은 연습 삼아 천마총을 발굴하기로 한다. 그러나 발굴 결과는 놀라웠다. 금관, 천마도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황남대총 개방 계획을 접고 천마총을 개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천마총은 대릉원의 수많은 능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연습 삼아 이루어진 발굴이 없었다면 천마총은 아직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 했을 것이다. 무덤 주인의 의지를 뒤로한다면 뜻하지 않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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