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보원사지에 가다.

보원사지터

by 대장역사쟁이




보원사지가 알려주는 것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4세기 후반이다.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수용된 불교는 삼국시대, 남북국시대를 거치면서 발전을 거듭하였고, 고려시대에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불교의 나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발전하였다.
현재 교회가 있는 자리에 절집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될 듯싶다. 절집은 민가의 담장과 어깨를 나라히 하며 백성들 속에서 성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건국 세력이 성리학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불교는 쇠퇴했고, 오늘날과 같은 산중 불교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좋은 뒷배경을 가진 절집은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했지만,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절집이 사리지고, 그 터만이 남게 된다. 이런 곳을 000터 또는 000지(址)라고 부른다. 훼손된 정도에 따라 말 그대로 터만 남아있는 곳도 있고, 조원사터처럼 나름의 사연과 역사적 흔적을 보여주는 곳도 있다.
보원사지는 삼국시대 백제부터 고려에 이르는 역사적 흔적과 변화 과정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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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석재와 기와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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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석재


발굴된 것들 중 많은 것들이 5층석탑과 금당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출토되었다. 생김새에 따라 그 기능을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추정할 뿐이다. 멀리 당간지주가 보인다. 당간지주를 통해 절집의 방향을 알 수 있다.
본래 당간지주 쪽에서 5층석탑으로 접근했으나 주차장이 별도로 마련된 이후부터 측면의 입구를 이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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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 출토 유물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이나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부여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 보관되고 있다. 백제의 금동불, 통일신라 후기의 철불, 고려 초기의 철불 등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IMG_1037.JPG?type=w580 측면 입구에서 바라본 보원사지


상당히 오랜 기간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금당지와 5층석탑 주변은 마무리가 된 듯하다. 발굴된 석재를 한 곳에 모으고 발굴 현장은 잔디를 깔았다.


image_522028541471394109643.jpg?type=w580 보원사지 중간으로 지나는 물줄기


보원사지를 지나면 용현자연휴양림이 자리 잡은 용현 계곡이 나온다. 그 계곡 물줄기가 보운사지를 가로질러 흐른다. 여름철 용현 계곡은 피서객들로 넘쳐난다.
계곡을 끼고 들어서 있는 펜션과 식당에서 나오는 오염물질과 계곡을 찾은 많은 사람들로 인해 계곡물이 탁해질 법도 하지만 이곳을 찾을 때마다 맑은 물을 볼 수 있다. 계곡물이 흐르는 중간중간 갈대 등 많은 수초들이 자연정화 기능을 해주는 듯하다.
이곳은 보원사지를 둘러보는 이들에게 주는 선물을 품고 있는 곳이다. 1급수에 사는 토종 물고기 동자개나 모래무지도 볼 수 있고, 다슬기도 넘쳐난다. 비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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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원사지 5층석탑

IMG_1044.JPG?type=w580 보원사지 5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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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석탑으로 전해진다. 양식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의 양식이라고 하는 데 탑을 천천히 살피다 보면 이 지역이 옛 백제의 영역이었고, 탑이 조성될 당시에도 백제의 정서가 살아있었구나를 느낄 수 있다. 부여 정림사지 5층탑을 닮았다.
1960년대 말 해체 복원하면서 사리와 관련된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부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기단부의 하단에 12마리의 사자가 조각되어 있고, 상단부에는 팔부신중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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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석탑과 금당 추정지 그리고 부도와 부도비

IMG_1062.JPG?type=w580 등산로 입구에 놓인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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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국사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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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국사 부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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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국사 부도비

IMG_1080.JPG?type=w580 법인국사 부도비와 부도


보원사지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백제시대부터 보원사지에 절집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백제시대에 현재의 보원사지와 같은 규모의 절집이었는가는 정확하지 않다. 보원사지가 통일신라를 거치고 고려 초기 대규모 절집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한 인물이 부도와 부도비의 주인공인 법인국사이다.
법인국사의 법호는 탄문이고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 활동했던 스님으로 고려 광종의 왕사 역할을 했다. 고려 태조 왕건의 부인이 임신한 후 아이의 순산을 위한 기도에 참여했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고려의 4대 왕인 광종이다. 왕권 강화을 추구했던 광종의 탄생과 관련되어 소개될 만큼 왕실과 밀접한 관계였던 것이다. 왕사 역할을 그만두고 은퇴하는 탄문을 국사에 임명했다. 탄문은 보원사에 머물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법인국사 부도와 부도비가 외형적으로 크고 화려하며 정교한 것은 이런한 연관성 때문인 듯하다.


IMG_1083.JPG?type=w580 위쪽에서 바라본 보원사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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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바라본 보원사지 전경


금당지와 5층석탑 주변은 발굴이 마무리되어 있으나 개울 건너 당간지주 오른쪽은 아직도 발굴이 한창이다. 또 다른 역사적 흔적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탁본에 대하여

5층석탑 상단부에 있는 팔부신중 중 아수라상 이외는 세월의 흔적을 비켜가지 못해 선명하지 않다. 이렇 때 탁본을 하면 보다 선명하게 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생일 때 이곳에 와 팔부신중을 탁본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평평한 비석을 탁본하는 것보다 몇 곱절은 어려웠다.
비석의 글씨가 선명하지 않거나 조형물의 형태가 뚜렷하지 않을 경우 탁본을 하면 조금 더 선명하고 뚜렷한 글씨와 형태를 만날 수 있다. 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탁본을 하면 소중한 문화재를 훼손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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