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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역사쟁이 Oct 04. 2016

경주, 김유신 장군 묘에 가다.

김유신이 흙수저?

 

금관가야의 왕족, 신라에서도 날다.          

 

김유신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증손자로 전해진다. 신라 법흥왕에 의해 금관가야는 멸망했지만, 할아버지(김무력), 아버지(김서현)가 관직을 얻었고, 김유신이 화랑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아 왕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신라 골품제에 편입된 듯하다. 할아버지 김무력이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치는 데 공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김유신도 화랑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전쟁 능력이 탁월했던 것 같다. 이러한 김유신의 내력은 지략가 김춘추를 만나면서 날개를 단다.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로 한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내부적으로 비담과 염종의 반란을 진압했다.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도 군사적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이고, 삼국통일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통일이 이루어진 후 태대각간에 봉해지고, 사후에 흥무대왕의 칭호를 받는다.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


1966년 세워진 것이고, 비문은 1933년 정인보가 지은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주차비는 공짜다. 입장료는 있다. 매표를 하고 2~3분 걸으면 김유신 묘에 도착한다.                                                  

김유신 장군묘


일반인들은 대부분 김유신 묘로 인정하고 있으나, 역사 학계에서는 무덤의 주인공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신라는 혈연을 바탕으로 하는 폐쇄적인 골품제(신분제) 사회였다. 통일에 큰 공이 있다고 하나 무덤의 규모가 너무 크고 화려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유신 장군묘


봉분이 클뿐만 아니라 봉분 주위를 두른 12지의 조각이 어느 왕릉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고, 난간석 또한 튼튼하게 조성되어 있다. 무덤의 조형물들이 왕으로 봉해진 이후에 조성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12지상(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은 경주 지역의 고분에 나타나는 12지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경주의 유물을 소개하는 안내 책자에는 원성왕릉(괘릉)의 12지가 최고의 조각이라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김유신 묘의 12지 조각에 한 표를 주고 싶다.             

                                     


김유신 묘의 특징은 일상복을 입은 12지라고 한다. 대부분 무덤의 12지상이 갑옷을 입고 있는데 반해 일상복을 입고 있어 신라 시대 의복 연구의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평상복인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평생 갑옷을 입고 전쟁터를 누볐으니 죽어서라도 편한 복장으로 쉬라는 뜻이 아닐까?                                                  


현재 12지의 표면에 검은색이 많은 것은 잘못된 탁본 때문이다. 대학생 때 김유신 묘의 12지상을 탁본해 열두 폭 병풍을 만들면 고액을 받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탁본 동아리 활동한 경험이 있다. 선배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면 실습을 나갔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공부를 겸해서 광주 망월동까지 가서 허락을 받고 난 후에 묘비를 탁본했었다.              

                                     


탁본 실습을 나가기 전에 좁쌀, 광목, 고무줄을 이용해 먹방이를 만들었다. 좋은 먹을 준비하고, 오당지, 솔, 분무기, 마른 수건, 연습 및 농도 조절 종이 등등 많은 것을 준비했다. 제사까지는 아니더라도 탁본 전에 대상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마무리까지.....                                                  



탁본은 유물의 분석이나 내용의 보존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잘 못 배운 탁본이나 금전을 목적으로 하는 탁본 행위는 금지되어야 한다.            

                                       

신라태대각간 김유신묘
                                 개국공 순충장렬 흥무왕 릉(묘)                                  


재미있는 비석이다. 관련된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소개되어 아는 사람도 많다. '개국공 순충장렬 흥무왕' 다음 글자가 두 글자로 읽힌다. 평상시는 릉(陵)으로 보이나 물이 묻으면 묘(墓) 자가 나온다. 
  해설하시는 분이 물병을 들고 있다가 설명을 하면서 물을 뿌린다. 글자가 변하는 모습에 신기해한다. '묘' 자가 먼저 새겨지고 '릉' 으로 고치면서 '묘' 자를 메우고 '릉' 자를 다시 새기면서 생긴 현상으로 추측하고 있다.                                            




 18K에서 24K 금수저가 된 자의 망언


몰락한 왕족에서 신라 최고 관직에 오르고 죽은 후일지언정 왕의 칭호를 얻은 김유신은 흙수저의 성공 신화일까? 개인적인 노력은 인정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김유신 가문은 금관가야의 왕족이었고 신라에서도 왕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화랑을 이끌 수 있는 신분은 신라 골품제 하에서 진골(왕족)만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유신 묘의 12지상 옷이 갑옷이 아닌 평상복인 것을 두고 몰락한 왕족(흙수저)이라서 차별받았다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까?

최근 우리 사회는 공직자(?)의 입놀림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자신이 고위 공직에 오르는 검증 과정(청문회)에서 붉어진 문제를 자신이 지방대를 나온 흙수저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서울 경기도 용인 수지구의 아파트(93평)에 거주하면서 전세금 1억 9000만원을 7년간 유지했다는 점, 농협에서 저리(1%대)의 대출금을 받아 빌라를 싸게 구입 한 점, 당사자의 팔십 노모가 10년간 준 빈곤층으로 분류되어 의료혜택을 받았다는 점 등이다. 이 공직자의 흙수저 발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까? 

성실한 맞벌이 부부가 올라가는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은행의 높은 문턱은 10%의 고율의 이자를 요구하고, 생계형 의료보험 미납자는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진짜 흙수저들의 처지를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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