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각을 벗어던져라.
사방에 유물 유적이 분포해 있는 경주는 답사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꼭 봐야 할 것 혹은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일정 중 변수가 생겨 다른 것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보고 싶은 것을 못 본다면, 그것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경주라면 아쉬움이 클 것이다.
이번 경주행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아들이 꼭 보고 싶은 것이 작년 여행에서 빠졌던 석굴암이었다. 아빠의 마음에서 멀어진 석굴암이지만 기꺼이 일정에 넣었다.
구불구불 돌고 도는 토암산을 오르고, 비싼 입장료를 지불 한 후 또 20분 정도를 걸어야 도착하는 곳(매표 후 석굴암에 이르는 길은 참 좋다. 무더위 속에도 시원했다.)이 석굴암이다. 하지만 석굴암을 만나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석굴암을 향해 걷는 동안 먼저 석굴암을 만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투덜거림(?)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사진도 못 찍게 하고 오래 머물지도 못하는 데 입장료는 왜 받는 거야 가 주 내용이다. 그렇다. 석굴암은 문화재 보호라는 명분하에 석굴을 전각으로 둘러쌓고, 그것도 모자라 내부에 유리벽을 만들었다. 사진도 못 찍게 한다.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지만 여간 못 마땅한 것이 아니다.
답사를 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관심 있는 유물 유적을 직접 보고 가능하면 만져보기도 하기 위함이다. 서산마애삼존불이 전각을 벗어던진 이후 더욱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나의 눈에만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석굴암 주차장 좌우에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아도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내려앉은 구름이 멋스럽다.
불국사종각이라고 현판이 걸려 있다. 물론 종도 있다. 일정 금액을 내면 종을 칠 수 있다. 아들에게 권했으나 단칼에 잘렸다. ㅋㅋㅋ
사각형을 동그라미가 감싸고 있는 도안은 세계문화유산을 뜻하는 것이다. 사각형은 인간이 만든 형상을 의미하고 둥근 원은 자연을 의미한다.
사각형과 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인간과 자연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둥근 것은 전 세계를 나타내며 문화유산의 보호를 의미한다. '문화유산의 보호' 는 어떤 걸까?
석굴 앞에 전각이 지어져 있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석굴을 떠올리겠는가? 하지만 저 속에 아픈 사연을 안고 석굴이 있기는 있다.
석굴암의 아픈 사연은 일제강점기에서 시작된다. 1910년 이전부터 석굴암의 수난은 시작되어 석굴의 구성품 일부가 도굴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1910년 이후에 시작된다. 일본제국주의가 석굴암을 완전 해체 복원을 결정하면서 석굴 위에 시멘트를 발라버린다. 일제강점기 내내 이끼가 끼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해방된 이후에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독재 정권은 문화재 관리에도 독재의 모습을 보인다. 오랜 기간 석굴암을 연구한 연구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제가 발라버린 시멘트 위에 한 겹의 시멘트를 더 바르고 현재 논란이 진행 중인 목조 전각을 지어 입구를 막아버린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 후에도 이끼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석굴 정면을 유리로 막고 기계의 힘으로 이끼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진동과 소음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석굴암의 예술적, 문화적 가치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극찬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으며, 양심(?)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도 인정한 바 있다.
신라 시대의 과학(수학)적 수준을 알 수 있는 석굴암 석물 배치와 관련된 원칙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측량가에 의해 밝혀졌다.
일제강점기 석굴이 해체될 때 본존불 밑으로 샘이 두개 솟았다고 한다. 이끼가 생기는 원인으로 생각해서 파이프를 박아 물길을 외부로 돌렸다.
1960년대 해체될 때 한 과학자가 샘물을 석굴 안으로 흐르게 하면 이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묵살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끼 문제는 기계의 힘을 빌려 해결했지만, 아직도 많은 학자들은 샘물을 원래대로 돌리면 이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석불암의 감로수는 그 두 샘에서 솟아나는 물을 외부로 돌린 물줄기다.
안내문에는 교체된 옛날 석물과 기타 주변 석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석물을 다르게 보는 이도 있다. 석굴 전면의 광창(빛이 들어오는 곳)에 사용되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석굴사는 김대성이 전생과 현세의 부모를 위해 지은 것이라는 이야기와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짓고,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몇 개의 능선을 넘어 펼쳐진 것이 동해다. 신라인들이 석굴을 만들었을 당시에 석굴 앞 전각은 없었다. 일제강점기 복원 당시에도 개방된 형태의 석굴이었다.
신라인들은 이곳에 석굴을 만들고 부처를 모시며 많은 것을 기원했을 것이다. 왜의 침략 방어, 신라와 왕실의 안위 등을 부처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개방된 형태일 때 석굴의 본존불이 문무대왕릉(대왕암)을 바라보고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서산마애삼존불과 같은 형태로 동짓날 해 뜨는 방향을 향해있다고 한다.
누가 보아도 멋진 풍경이다. 여러 개의 능선 뒤로 바다를 볼 수 있다. 석굴 안의 본존불은 현재 이 모습을 볼 수 없다. 멋진 경치를 앞에 두고 안대(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석굴암 석굴을 떠나 감은사지로 가는 길에 풍력발전소를 보고 차를 멈췄다. 처음 보고 신기해서가 아니다.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힘차게 돌아가는 것을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경주 인근의 월성과 신월성 원자력발전소(핵발전소)다.
'아이러니' 라는 단어에 딱 맞는 상황이다. 친환경적(반론이 있을 수 있음)이라는 풍력발전이 가능하고 현재 풍력발전이 이루어지는 경주 인근이 대 재앙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농후 한 핵발전소 최대 밀집 지역이라니.....
전각 안에 갇힌(?) 본존불이 떠오른다. 전각을 지어 부처의 눈을 가린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닌지......
정말 친분이 두터운(배드민턴 실력 빼고 모두 한 수 위고 배울 것이 많은) 지인이 반핵운동을 한다. <한국탈핵>을 추천해 주어 읽었다. 핵문제에 대한 기본 이상을 알 수 있다. 아직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책 내용을 조금 소개하면
"우리나라의 남부는 핵발전소 최대 밀집 지역이다. 전 세계 핵발전소 관련 사고의 공통점은 노후(오래된) 한 원전에서 발생했다. 만약 하나의 발전소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대한민국 어느 곳도 안전지대일 수 없다."
현재 우리 정부는 여러 개의 새로운 핵발전소 건립을 결정하거나 계획 중이고, 노후 발전소의 수명연장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