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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역사쟁이 Oct 11. 2016

경주, 감은사지 탑과 대화하다.

감은사지 석탑에게 던지는 질문





감은사지 석탑에게 던지는 질문


경주지역에서 계속되는 지진을 놓고 말이 많다. 200년 혹은 500년 주기설을 이야기하며 현재가 그 주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감은사지 석탑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676년) 한 직후 건립한 석탑이다. 탑이 건립된 지 천삼백 년 이상 지났으니 200년을 여섯 번, 500년을 두 번 겪은 것이다. 

현대의 기술력으로 지은 건물이 훼손되기도 하고,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었을 핵발전소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다. 1300여 년 전에 지어진 감은사지 탑과 첨성대 등은 어떻게 세월(여섯 번, 두 번)을 버틴 것일까? 

주기설에 따른 큰 지진이 없었던 것일까?




감은사 석탑


멀리 보이는 감은사 석탑. 크기를 가늠할 수 없으나 다가가면 그 위상에 놀란다. 


감은사 석탑


감은사지 앞으로 넓은 논에 벼가 심겨 있다. 감은사 창건 설화에 따르면 이 논은 과거 '대종천'(지금은 물줄기가 작아져 작은 개천이 되었다.) 의 물이 흘렀을 것이다. 

문무왕은 통일을 이룬 후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걱정하며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동해에 장사(무덤을 쓰는 행위) 지낼 것을 명하였다. 문무왕 대에 짓기 시작한 감은사는 아들인 신문왕 대에 완성되었는데 용이된 부왕(아버지)이 드나들게끔 금당 밑에 공간을 마련했다.


감은사지 입구에 소개된 창건설화와 관련된 만화이다.



감은사 3층 석탑이다. 기존의 1금당 1탑에서  1금당(부처를 모시는 집) 2탑 형식으로 변하는 과정을 알 수 있는 배치이다. 

햇빛을 등지고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약간 역광을 받으며 탑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멋스럽지 아니한가?


                                                                                    동탑

감은사지의 동탑으로 서탑과 쌍둥이다. 안정감과 상승감을 지니고 있어 완성도 높은 탑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이 올려다보는 것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2층의 기단 위에 3층을 두었다. 몸돌과 지붕돌이 합쳐져 1층을 이룬다. 탑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 기회에......


                                                                                  서탑

                                                                               서탑 세부


쌍둥이 탑이지만 서탑이 세월의 흔적을 더 갖고 있다. 1층 옥개석(지붕돌)에 잡초가 자라고 있다. 국보인데.....



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탑은 불국사 3층 석탑이다. 하지만 감은사지 탑이나 고선사지 탑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불국사 3층 석탑은 만들어지지 못 했을 것이다. 

목탑 형태에서 석탑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탑이다.
  

                                                                                  금당지

                                                                                 금당지

                                                                                  금당지

  

감은사 창건 설화를 뒷받침하는 금당지이다. 금당이 어떤 구조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금당 마루 밑에 공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설화의 용(사후의 문무왕)이 쉬는 공간으로는 충분할 것 같다. 대학생 때 답사를 와 돌에 걸터앉아 설명을 들었다는 얘기를 해주자 아들도 앉아보고 싶다고 한다. 한 번 들어가 봐 했더니 앉지는 못하고 잠깐 들어갔다 왔다. ㅋㅋ


                                                                              서탑과 동탑

                                                                                     용담

  

연못이 남아 있다. 용담이라고 부르는데 창건설화의 용이 동해에서 대종천을 따라 감은사의 금당 밑으로 들어왔다면 이곳이 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했을 것이다.




                                                                     대왕암(문무대왕릉?)

  

아직도 대다수가 문무대왕릉으로 알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수중릉"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과연 문무왕은 대왕암 속에 묻혔을까? 
이곳이 문무왕의 장사와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무덤이라는 근거는 밝혀진 것이 없다. 추정일 따름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적어도 수중릉은 아니다.
대왕암이 수중릉(문무대왕릉)으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1960년 대 이후다.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난다.

  삼국이 통일되어 민생이 안정되고 백성은 평화롭게 살게 되었다. 그러나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가 걱정이다. 내가 죽은 뒤에 용이 되어 나라의 평화를 지킬 터이니 나의 유해를 동해에 장사 지내라......
내가 숨을 거둔 열흘 뒤에는 불로 태워 장사할 것이요, 초상 치르는 절차는 힘써 검소와 절약을 좇아라.
삼국사기, 문무왕 21년

 

 설화는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설화를 통해 역사적 사실에 다가갈 수 있다. 
  <삼국사기>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장례 풍습으로 '화장'이 행해졌다는 것이다. 불교의 영향이다. 신라는 불교를 숭상했다.
   한걸음 더 들어가면 대왕암은 문무왕의 무덤이 아니라 화장한 납골을 뿌린 장소는 될 수 있는 것이다.
  통일을 이룬 신라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가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왕이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일 만큼 심각했던 것이다. 
  감은사가 세워지고 부처에 의지하며 왜구의 침략을 막아보려 했으나 왜구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하나의 설화가 더 만들어진다.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가 그것이다. 내용을 소개하면.....


  감은사 앞 바다에  작은 산이 떠내러 왔다. 작은 산에는 대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었다. 왕이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나타나 검은 옥대를 왕에게 바쳤다. 
대나무에 대해서 물으니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 하였다.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었다. 이후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질병이 없어지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홍수가 지면 비가 그치고 바람과 물결을 잦게 하는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아빠가 일찍 찍어 실패
높이 뛰었으나 폼이 좀.....
잘 날고, 잘 찍다.

답사 마치고 바다에 들어가고 싶은 아들, 하지만 들어갈 수 없는 아들

물을 좋아하는 아들이 바다를 바라만 봐야 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ㅋㅋ




감은사 탑은 대답!

  

감은사는 금당, 강당, 중문, 회랑, 쌍탑 등을 거느린 절집이었다는 것이 발굴 결과 밝혀졌다. 짜임새는 있으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절집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남아있는 두기의 3층 석탑의 높이가 무려 13미터가 넘는다. 탑을 세우기 위해 돌을 채석하고 운반하는데 많은 백성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요역(노동력 동원)에 징발될 때 임금(인건비)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강제 동원이었을 것이다.
당시 동원된 백성들은 어떤 마음으로 절집과 석탑을 세웠을까? 강제 동원에 대한 불만이 컷을 수도 있겠으나 당시 신라와 백성을 가장 위협하는 왜구의 침략을 막겠다는 목적을 강조하면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여기에 불심과 장인정신이 더해져 1300여 년을 견딜 수 있는 석탑이 세워진 것이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일어난 경주 지역의 지진은 아직도 여진이 진행되고 있다. 경주 인근의 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시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또한 월성 원자력발전소(핵발전소) 1~4호기가 수동 정지되어 안전 점검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원자력발전소의 이상 유무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원전마피아', '원전납품비리' 등을 접한 시민이라면 그 불안이 더 증폭될 것이다.
원전마피아는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정보를 독점하는 세력을 말한다. 원자력 발전은 전기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것이라며 원전을 찬양하기도 한다. 
그 목적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원전의 운영이 투명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불의의 사고 시 그 피해를 가늠할 수 없는 원자력(핵)발전소임에도 불량 부품이 납품 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원전마피아로 불리는 세력은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보를 독점하고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감은사지의 3층 석탑은 말한다. 

"내가 우뚝 솟아 1300여 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존재 목적이 백성의 안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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