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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 사소한 일을 위대하게

평범과 비범, 미소와 눈물 그 사이 어딘가

by 언제라도봄

[사소한 일을 위대하게]

어느 공간을 가든 화장실을 살피는 편이다.

화장실이 깨끗하면 그 외 모든 것에 너그러워 지는 편이랄까. 어린이였던 80년대 중후반, 공중화장실이 너무 더러워서 여행을 다니는 게 고역스러웠던 기억이 뚜렸하다. 지난 30년 간 우리 나라 발전 중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 1번으로 깨끗해진 화장실을 꼽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집에서도 가장 신경쓰는 곳이 화장실이다.

그런데 공중화장실을 자기집처럼 아니 그 이상 장인처럼 청소하는 주인공 히라야마.

젊은 후배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주인공 히라야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인정이 필요한 나의 일이다' 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을.

주인공은 '화장실 청소'라는 사회적으로는 '사소하다 못해 하찮다고 여기질 수도 있는' 일을 매우 프로페셔널하게 한다. 주차 후 열쇠 꾸러미를 차고, 장비를 챙기는 것부터 쓰레기를 주워담고 걸레질을 하고, 부분마다 다른 도구를 골라 쓰며 하는 청소.

프로페셔널을 넘어 매우 리드미컬 하다. 찰랑거리는 묵직한 열쇠꾸러미 소리도, 걸레질에도 리듬이 느껴진다.


위대한 일을 위대하게 해낸 위대한 사람은 역사에 남는 위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소한 일도 위대하게 해내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 일상의 충만함을 주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그렇게 '꾸준히'는 할 수 없으니깐.

평범함도 꾸준히하면 비범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본인은 본인의 성에 차도록 하지만 그걸 동료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더러워질 거라며 정말 성의없이 하는 어린 친구에게 눈빛으로도 핀잔주지 않는다. 옛날 사람이지만 꼰대는 아닌 모습이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지 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그런 직업과 관련해 주인공 히라야마는 매우 단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취객이 청소중이란 작은 입간판을 발로 차서 쓰러트리고(일부러는 아니지만), 엄마를 잃은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를 달래며 엄마를 찾으러 다니다가 아이 엄마를 만났는데 그 엄마는 청소부의 손을 잡았던 아이를 낚아채고는 고맙단 인사는 커녕 신경질스럽게 물티슈로 아이손부터 닦는다.


어찌보면 짜증나고 모멸감까지도 느껴질 순간에도 그의 감정은 휘둘리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외려 엄마를 찾은 아이가 엄마손을 잡고 몇발자욱 가다가 뒤돌아보며 손을 흔드니 큰 미소로 손을 함께 흔들어 준다.



[정갈한 루틴]


영화 초반 반복해서 주인공인 히라야마의 루틴이 나온다.

어스름한 새벽 동네 할머니의 빗질 소리가 주인공 히라야마의 알람이 되고, 그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이불을 개고 요를 개켜서 정돈하고 잠들기 전 읽던 책을 정리하고 계단을 내려와 양치하고 면도하고 세수하고 스프레이로 키우는 식물들에 물을 주고 옷을 갈아입고 매일 챙겨나가는 차키, 지갑, 카메라와 동전. 집앞의 자판기에서 캔커피 (BOSS 카페오레 : 나에겐 추억의 캔커피. 25년전 일본서 교환학생 지낼때 캔커피중에 가장 좋아했던 커피. ^^)를 뽑아 차에 올라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을 한다.


거의 의식처럼 반복되는 아침 루틴.

누군가에게는 강박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늘 생각이 많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착착착 할수 있는 이런 루틴이 꿈꾸는 이상적인 일상이다. 모닝루틴뿐 아니라 맥주를 마시는 식당이나 작은 술집, 빨래방, 목욕탕등 데일리, 위클리 루틴도 매우 정갈하다.


백수가 힘든 이유는 소속이 없어서가 아니고 루틴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허름해도 정갈한 공간,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정갈한 루틴이 일상에 큰 안정감을 준다.


[일상에 생기를 주는 - 독서, 올드팝, 식물과 사진]


주인공의 집에는 모든 것이 미니멀 하지만 작은 식물들, 책, 올드팝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사진은 미니멀하지 않다. 누군가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채운 것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공간은 매우 미니멀하다.

모든 것이 각잡고 있는 공간에 책 읽을때 쓰는 스탠드만 다다미바닥에 놓여 있다. 따스한 불빛의 그 스탠드가 뭔가 온기를 주는 느낌이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더 미니멀 해질 수는 있었겠지만, 인간미는 훨씬 없지 않았을까. 정말 모든게 강박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바닥에 턱 놓인 스탠드가 뭔가 편안함을 주는 장치라고까지 느껴졌다.


*코모레비 : 내가 좋아하는 일본어 중에 하나이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의미하는데 (영화끝에는 '흔들리는 나뭇잎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이라고 좀더 시적으로 표현했다.) 우리 말에 '윤슬'이 있다면 일본어에는 '코모레비'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언어가 없다고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를 지칭하는 말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그것을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인식하게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주인공은 필름 카메라로 햇살, 특히 나무사이로 비치는 이 코모레비를 자주 찍어 소장한다. 벽장을 열면 연도와 월별로 정리된 사진박스들. 그의 미소도 그만큼 쌓여온 듯하다.


[엷은 미소]


주인공이 조연보다 대사가 적은 영화가 이 영화 말고 또 있을까?

주인공의 여러 모습을 닮고 싶지만, 비가오다 개인 하늘을 보면서도, 운전을 하다가도, 간단한 요기를 하며 나무사이 비친 햇살을 보면서도 미소지으면서 그 순간 순간을 충만히 사는 모습은 영화 내내 함께 미소 짓게 한다. 주인공이 말이 없으니 그만큼 관객의 상상의 몫도 늘어난다.


그의 엷은 미소는 코모레비와도 닮아있지 싶다. 강렬한 햇살이 함박웃음이나 박장대소라면 나뭇잎 사이로 흔들리며 내려오는 햇살.



[그러나 결국 평범한 사람]

스치는 사람들의 무례함이나 변수에는 흔들리지 않는데 중간 이후 그를 흔드는 몇몇 사건에는 매우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보인다.


기사를 동반해 고급차로 나타난 여동생 (뭔가 사연이 있어보이는 가정사를 암시한다)을 안고 우는 모습이나

젊은 동료의 애인이 불쑥 찾아와 볼에 뽀뽀를 하자 평소의 평온을 찾기 힘든 듯한 모습.

은근히 마음을 두었던 작은 술집 마담(마마)이 다른 남자를 안고 있는 걸 보고 치밀어오르는 분을 참지 못해 자전거로 강변까지 달려 담배와 술을 사고 괴로워한다.

그 남자가 나타나 그 마담의 전남편이었으며, 현재 암투병중으로 얼마남지 않아

찾아간 것 뿐이라는 말에 지극히 안도하는 표정.


영화 초반에 보았던 단단하고 동요하지 않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범인(凡人)의 모습이다.

지극히 감정적이고 평범한 인간적인 모습들이 그 주인공을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한다.


평범함이 담겨진 비범함

비범함에 숨겨진 평범함

미소 속에 감춰진 눈물

눈물 속에 보이는 미소


구체적으로는 아는 게 없지만, 왜인지 알 것도 같은 주인공의 삶.

관객에게 많은 상상의 여지도 남겨놓은, 개인적으로는 인생영화 5개에 꼽을 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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