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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Dec 13. 2023

부모의 세계

불편한 불안

부모들은 불안하다. 우선은 그 부모세대 자체가 불안하다. 지금 미성년의 부모는 대부분이 20대에서 50대 사이일듯하다. 40,50대 부모들은 자신의 부모 세대와 달리 정년은 보장되지 않고 수명은 너무도 길어졌다. 자식이 나를 부양할 거란 기대는 감히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정년 없는 전문직에, 그것도 미래가 꽤 확실한 의대에 목숨을 거는지도 모른다. 20,30대는 아이는커녕 내 미래도 불안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유복하게 자랐지만, 최초로  부모세대보다 못 살 수도 있다는 공포를 가진 세대라 하니 그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할까. 어쩌면 그런 그들이 출산을 꺼리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진 젊은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대 자체가 느끼는 불안은 부모가 되면 몇 배 증폭된다. 아이를 낳고 나면 어느 부모나 그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건 욕심도 아니고 욕망도 아니다. 자연 속의 동물들도 먹이가 풍부한 곳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는다. 유전자를 지키기 위한 본능에 가까운 선택인 것이다. 그러나 그 본능과 욕심과 욕망에는 경계선이 없다. 그래서 처음엔 부모로서 당연한 마음이었던 것이 욕심이 되고 욕망이 되는 것은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그라데이션은 빨강을 순식간에 초록이나 파란색으로도 변하게 하는 것이기에.


아이를 낳으면 배냇저고리도 담요도 유모차도 최고급으로 해주라고 사방에서 유혹한다.

그게 사랑이라고.

죽을힘을 다해서라도 모유수유를 하라고도 한다.

그게 모성애라고.

돌도 안된 아기가 똑똑하게 자라길 바란다면 빚을 내서라도 전집을 들이고 때에 맞춰 갈아주어야 한다. 

그게 부모의 의무가 되었다고.


혹자는 밤을 새워서라도 성대결절을 무릅쓰고서라도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책을 읽어주라고 하고

가베는 고등수학의 기초를 닦는 필수코스이고 영유를 보내는 것이 부모의 능력이라고 한다.

능력이 되는 데 아이를 영유를 안 보내는 것은 특별한 신념이라도 있는지 물어본다.

영유 중에는 지능검사를 해서 상위 3~5%인 아이들을 선발하고 다시 영어테스트를 거쳐 아이들을 선발하는 곳도 있다기에 설마 했는데 집 앞 영유가 그런 곳이었다.

결정적 시기라는 말을 모르면 안 된다. 언어는 빠를수록 좋고 그 결정적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거란다.

영유가 끝나면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3년간 힘들게 배운 영어를 초등입학 후에는 초3까지 쓸 일이 없으므로 다 까먹을 수 있으니 바로 초등영어학원으로 바통터치를 해주어야 한다. 몇 점대의 SR점수로 소위 빅 3, 빅 5라 불리는 영어학원으로 연계시키지 못하면 7살에도 루저가 된다.(실제로 어느 영유가 빅 3에 몇 명을 보냈는가가 어느 고등학교가 서울대를 몇 명 보냈는가 하는 입결처럼 엄마들에게 정보로 돈다.) 점수가 안나오는 아이를 겨울방학 두 달 속성으로 빅 3에 합격시켜 주는 과외는 영유를 보내보지 않은 나도 안다. 영어를 잘해도 우리말이 서툴면? 안되지! 요즘 수능은 국어가 제일 어려우니 영유를 다녀온 후 방과 후는 국어와 논술로 채워야 한단다. 수학은 또 어떠한가, 구체적 조작기인 아이들을 위해 놀이수학이라도 시켜야 수감이 발달한다고 한다. 논리적 허점을 찾기 힘든 말들이 부모를 흔들고 그들의 지갑을 흔든다.

그 모든 것이 부모의 능력이자 사랑이자 책임감이라고 포장해 부모의 본능과 욕심사이를 파고든다.


그래도 여기까지, 즉 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자신의 소신과 철학으로 휘둘리지 않는 부모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아이가 '학'생이 되어, 부모가 '학'부모가 되는 순간 그간 유예해 왔던 불안은 한 번에 휘몰아치기도 한다. 이제 공부할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해 주변을 둘러보면 그제야 옆집아이와 우리 아이의 어마한 갭이 보인다. 아직도 글밥적은 그림책을 읽고 있는 순진한 우리 집 강아지와 다르게 옆집아이는 Magic Tree House를 영어로 읽고 있고 내년엔 해리포터를 읽을 예정이란다. 그 집 둘째도 이미 구구단을 왼다는데 우리 강아지는 3 더하기 4도 손가락이 필요해 보인다. 특급열차에 올라타 따라가도 이미 몇 년 전부터 특급열차를 타고 가고 있는 저 아이를 따라잡을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학원들은 아무리 늦어도 초등 1학년에 영어를 시작하지 않으면 2학년부터는 들어갈 반조차도 없다고 한다. 또 초등에 수능영어는 끝내놔야 하고, 언어로서의 영어도 초등이 아니면 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수학은 선행이 힘든 아이들도 있지만 외국어는 모국어만큼 끌어올리는 게 가능하다는 건 정설일 지도 모른다. 힘들어도 수학도 달려야 한다. 영어학원의 입학 마지노선이 1학년 2학기라면 수학학원은 늦어도 3, 4학년에는 시작해야 다닐 학원이 있거나 학원을 고를 수 있는 범위가 넓다. 위계성이 높은 과목인 수학은 한번 놓치면 낙오되어 따라잡기 힘들다 하고, 수능의 킬러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사고력 수학이 필수이며, 연산은 초등 때 잡아두지 않으면 고등 가서 킬러문제 다 풀고도 연산실수로 틀리게 된다고 한다. 대치동에선 초5에 고등수학을 시작하는 게 평균이라는 소문은 이미 땅끝마을까지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자녀가 수학감이 없다고? 그럴수록 선행을 해야 한단다.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미리미리 해서 시간을 벌어놔야 수학감 좋은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한다. 2년 이상 대기해야 하는 논술학원은 못 보내더라도 동네 논술학원이라도 보내야 책도 읽고 글도 써본다는데. 또 중등 가서 사춘기가 힘들게 오면 공부를 놓아버리는데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따라가려면 선행을 달려 미리 진도를 뽑아놔야 방황을 해도 되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중학교교사인 친구 혹은 동네엄마도 자기 학교에 공부를 1년째 놓은 아이가 영어 수학은 아직도 100점을 받는다고 한다. 명제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실존 근거는 각학교마다 있는 듯하다. 뒤늦게 학원을 가서 왜 아이를 방치했냐는 말을 들으면 뻔한 말인 줄 알아도 맞서기엔 내 아이의 상대적 진도나 위치가 초라하다. 이 정도면 이런 말들을 다 걷어내는 것이 더 독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 키우면서 지금까지 꽤 많이 들었던 말들이라 내성이 꽤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들을 다 나열하고 나니 가슴이 묵직하게 답답해진다.)


이미 교육이 비즈니스의 영역이 된 지 오래고, 부모의 불안이 지갑과 계좌를 연다는 것은 부모가 되기 전부터 알고 있다. 그러나 아는 것과 당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의 일이면 그렇게 속절없이 당하지 않을텐데 나의 분신 같은 아이의 일이니 저런 말들을 듣고도 흔들리지 않고 휩쓸리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공포마케팅과 불안을 자극하는 상술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세에 끼지 못하는 두려움이 더 큰 것이다. 독야청청은 생각보다 어렵고 상상보다 외롭다.


"자기 발로 서고 자기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데
 오늘 우리 인생은 그렇지를 못해요.
 그냥 세상의 흐름에 따라 굴러다니고 있어요.
 마치 홍수가 나면 쓰레기가 물에 휩쓸려가듯이."
-법륜스님 '엄마수업'중에서

깊이 공감하고 마음에 새긴 말이지만 홍수도 홍수나름이란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미리 밝혀두자면 이 연재는 사교육이나 선행, 그리고 교육열을 비난하는 것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달리지 않고 있지만 동네에서 나와 가장 친한 이웃의 아이는 최정상의 학원 탑반에서 달리는 아이다. 그런 교육을 하는 것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많은 부모들이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생각을 풀어보고 싶다. 공부를 시키면 불쌍하고, 놀고 있으면 초조해지는 얄팍한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 불편한 마음을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으로 중심을 잡고 아이들과 행복한 육아와 교육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

답이 없는 교육, 질문을 해보며 길을 찾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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