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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Dec 21. 2023

소신이라는 걸 가져보자!

정신승리와 소신, 그 사이 어딘가

동네 정보를 얻으러 들어간 맘카페의 조언으로 국민육아템을 들여 육아가 편해지기도 했지만, 때론 마음이 불편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 발단은 유아독서를 강조하는 '책육아'와 '전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2010년대 중후반에는 돌도 안된 아이들 집에도 전집을 몇백대로 들이게 하는 영업사원들이 꽤 많이 돌아다녔다. 전집이 있으면 아이가 여러 영역 치우침 없이 고루 발달한다는 엄마의 본능과 욕심사이를 파고드는 말과, 없으면 아이교육을 방치하는 엄마로 몰며 죄의식을 자극해 전집을 들이게 하는 방식이다. 뻔한 수법이라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그 순간 욕망과 책임감이 발동하니 넘어가는 엄마들이 많았다. 당시 회사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2015년에 아이를 낳고 돌아온 후배는 조리원 동기가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전집 2천만 원어치를 결제했다는 믿기 힘든 말을 전했다. 돈이 많은 친구인가 보다 했는데 전셋집에 대출이 2억이 있다는 핑계로 영업사원을 밀어내자 대출이 2억 있으나 2억 2천이 있으나 엄마에게 달라지는 건 별로 없지만, 전집으로 아이는 크게 달라진다는 영업사원의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에 넘어갔단다. 전세대출 2억 위에 전집대출 2천이 얹어진거다. 물론 그 한마디에 넘어간 건 아니었을 거다. 초보엄마들을 자극하는 멘트는 단행본이 아니라 잘 구성된 전집 같은 것이었겠지. 불편한 것은 최대한 피해 가는 나는 한 번도 영업사원을 만나본 적 없지만(만나고 나서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없다기보다, 기분 나빠지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회피를 택했다.) 욕심죄의식을 건드리는 영업방식 때문에 그땐 전집에 대한 거부감까지 들었다. 전집이 무슨 죄가 있을까. 그 즘 결심했다. 그래. 나도 소신이란 걸 가져보자.


돌이켜보면 나의 부모님도 꽤나 세상에 휘둘리지 않으며 편하게 키우셨기에 나도 그렇게 대범하게 키우자 생각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생기면서 옆집 아이와 윗집 아이가 뭘 먹고 뭘 입고 뭘 읽고 뭘 하고 노는 지까지 다 아는 세상이 되어 그 생각을 지키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럼 무얼 해야 휘둘리지 않고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되는대로 사는 것이 답이 아니듯, 정답이 없는 육아지만 나만의 답안지 작성 가이드라인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답이 없을 때는 질문을 해본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인가?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아이가 잘 컸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렇게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을 바란다면 행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그런 고민을 하는 나는 과연 언제 행복한가? 꼬리를 무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이어갔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한다. 인생도 육아도 교육도 정답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그 모든 문제가 행복이라는 어려운 단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행복은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박웅현 작가의 말대로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널려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니까. 나 또한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나야 행복한 것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감사할 줄 알아야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러나 아무 조건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을 만큼 도를 닦지 못한 중생인 나는 몸이 아프거나 배우자와 싸웠을 때도 감사하고 행복하다 생각하기는 힘드니깐, 내가 언제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한 지를 생각하며 그 우선순위를 정해보았다. 첫 번째는 '건강'이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 이 둘은 선순환을 일으키지만 한쪽만 무너져도 악순환도 일으키기에 서로에게 좋은 영향만 끼치도록 잘 살펴야 하겠다. 두 번째는 관계, 특히 가족등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남편과, 그리고 아이들과 이런저런 일상을 나누고,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낄낄거릴 수 있을 때, 부모님과 덕담을 주고받을 때, 친한 친구들과 마음을 주고받는 수다에 행복하다. 어릴 적에도 부모님이 사이좋고 가족전체가 화목할 때 느꼈던 행복이 가장 컸던 듯하다. 그리고 세 번째 즘이 돈과 관련된 경제적 독립과 자아실현을 위한 배움과 성장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가 그렇게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주변의 가족,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지내면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자립해서 자아실현하며 성장해 나간다면 부모로서 잘 키웠다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나니 한글을 몇 세에 떼고 구구단을 몇 세에 외우고 영어를 읽을 줄 알고 모르고 등이 굉장히 작은 문제로 느껴져 마음이 가벼워졌다. 물론 그 편안한 마음이 24시간 365일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싶다가도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선생님이 칭찬하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아이였음 싶은 욕심이 올라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기로 했던 세월호 참사 때 스스로 했던 다짐을 떠올린다. "오늘도 건강히 무탈히 잘 지내줘서 고마워. 엄마 아들로, 딸로 태어나줘서, 건강히 태어나서, 건강히 자라줘서 고마워."를 매일밤 되뇌며 온 가족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낸 것만으로도 감사를 전하면 나도 아이들도 행복해진다. 이 감사인사는 그렇게 10년 가까이 매일 쌓아왔다. 그런 말을 하고 그런 마음을 낼 때마다 조금씩 불안이 멀어진다.


20살 입시에만 목표를 두고 역산을 하면 중3엔 뭐가 완성되어 있어야 하고, 초6에는 무엇을 끝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남들처럼, 남보기에 좋게'를 따라가다 보면 그 길에 그 길을 걷는 아이와 그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나는 없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나만 남을 거 같았다. 아이를 믿고 멀리 보고 가기로 해본다. 더구나 아이는 알파고 같은 기계가 아니다. 아이가 기계라면 입력하여 저장되는 시간을 고려해 때에 맞추어 입력값을 정확히 넣어주는 것이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오기 전에 '빡세게' 많은 정보를 입력시켜 놓고, 수학은 저장이 느린 편이라면 좀 더 일찍부터 입력값의 양을 늘려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마음과 기분'이 있는 사람이다. 오늘 회사를 안 가도 되면 4시간자고 일어나도 피곤하지 않은 반면, 회사출근 하는 날은 8시간을 자도 피곤한 우리처럼 정서와 마음이 몸을 움직이기도 하는 사람이란 점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조급함'이 되어 아이의 건강과 아이와의 관계를 그르치지 않도록 오늘도 소신과 정신승리사이 어딘가에서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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