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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Dec 27. 2023

한글, 천천히 배워도 괜찮아.

문자보다 그림세상에 좀 더 오래 머무르길.

첫째인 강이가 아직 속싸개에 쌓여있던 시절, 친하게 지내는 언니랑 고등 때의 베프에게 전화를 받았다. 둘째를 임신 중인 언니와 나보다 한 달 전에 둘째를 낳은 친구, 서로 만나기는 힘드니 전화로 안부를 전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상반된 이야기를 들었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언니는 당시 네 돌이 지난 첫째 딸을 세돌즘부터 '*** 한글나라'를 시켰다고 한다. 학습지를 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한글을 못 읽는다면서 진짜 '신기하지 않냐?'라고 했다. 그런데 맞벌이 중인 친구는 첫째를 봐주시는 친정엄마가 몸이 안 좋으셔서 어머님을 잠시나마 쉬게 하려고 어린이집 하원 후에 한글과 방문미술 등 선생님을 불렀다고 한다. 한글과 미술이 목적이 아니라 잠깐의 틈새 보육으로 어머님의 휴식을 위했던 건데 같은 방문학습지로 두 돌 갓 지난 아기가 세 달도 안되어 한글을 읽는다면서 정말 '신기하지 않냐'라고 했다. 언니에게도 친구에게도 이름은 기똥차게 지은 학습지가 되었다. (참고로 그 한글학습지를 광고할 의도도 비방할 의도도 전혀 없음을 밝혀둡니다.)


밤잠 설치며 모유수유가 최대 과제였던 당시에는 나도 '신기하다'하고 웃고 넘겼던 한글.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 유치원을 가고 나니 조기교육 열풍의 시작은 한글임을 알 수 있었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니 4세반(만2세반. 그 해 생일에 3돌이 되는 아이들 반) 친구 중에도 한글을 읽는 아이가 있고, 그러다 보니 그 아이를 부러워하는 엄마들이 있었다. 누가 먼저 한글을 '떼는가'는 각 가정마다 올림픽 신기록을 달성하듯 의미 있어 보였다. 큰 애는 몇 살에 떼었는데 둘째는 다르다거나, 심지어 엄마아빠가 그 옛날 몇 살에 떼었는데 아이는 아직이라거나. 그러나 세종대왕님이 만드실 때부터 똑똑하면 반나절이면 익히고 어리석어도 일주일이면 배울 수 있다는 한글 아닌가? 그 덕인지 우리나라 문맹률은 세계 최저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는 한글을 모르고 살게 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울 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문자보다 그림세상에 좀 더 오래 머무르길 바랐다. 글을 읽지 못하면 그림으로 세상을 인식해 나가기 마련이다. 그림책을 읽어 주다 보면 알게 된다. 글을 모르면 글을 읽는 자는 보지 못하는 디테일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글은 몰라도 그림은 보이는 아이들에겐 그림책에는 숨은 그림 찾기 같은 보물들이 곳곳에 있다. 글자를 알고 나면 세상을 보는 집중력도 낮아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경험상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외국에서는 길을 표지판만 보며 찾아가지만, 그 나라 문자를 모르는 곳에 가서는 더 많은 감각을 써서 길을 기억하게 된다. 아이들도 그렇지는 않을까? 문자습득이란 건 한번 하고 나면 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애를 낳고 나면 애가 없는 때로 돌아갈 수 없듯이. 물론 문자를 읽고 쓸 줄 알게 되어 또 열리는 세계가 분명히 있지만 유아 시기에 굳이 그 세계로 일찍, 빨리, 먼저 들어갈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독일, 핀란드, 이스라엘등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조기문자교육을 지양하고 있다. 독일은 취학 통지표에 입학 전 문자교육을 하지 말라는 경고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문자를 조금 더 빨리 배우는 것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확실한 근거라도 가지고 있는 듯 강력하게 반대한다. 어떤 연구결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학령기(school age) 시작을 만 6세 전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큰 힌트가 아닐까 싶다. 유치원 1년이나 2년이 의무교육인 나라도 만 5세 이하의 아이들은 학교(school)가 아닌 유치원(kinder)의 커리큘럼으로 가르치는 이유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만 6세즘은 되어야 문자습득이 가능하고 문자습득이 되어야 비로소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일 거다.


가끔 주변을 보면 맨 처음 언급한 친구의 딸처럼 세 돌도 되기 전에 한글을 잘 읽는 아이들도 있고, 다른 면에서 보면 똘똘한데도 학교 가기 전까지 한글이 잘 안 배워지는 아이들도 있다. 가수 이적이 5살에 한글을 줄줄 읽고 썼던 반면에 형은 그때 초등1학년이었는데 한글을 다 떼지 못해서 이적이 받아쓰기를 불러주며 연습을 도와줬다는 이야기가 박혜란작가님 책에 보면 나온다. 이적님도 서울대 출신이지만 형님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후 MIT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시라고 한다. 문자를 습득하는 것이 능력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타이밍의 영역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아닐까.


뒤집기를 먼저 했다고 걷기도 먼저 시작하는 건 아니다.

말이 빠르다고 기저귀를 빨리 떼는 것도 아니다.

한글을 빨리 뗀다고 독해력이나 문장력이 더 빨리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거 알면서도 조바심 낼 필요가 있을까. 아이들마다 분야별로 다 다른 성장 속도를 낸다. 아이가 천천히 가면 주변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테고, 뛰어가면 다리에 힘이 생길 테다. 옆집아이가 지금 뛴다고 너도 같이 뛰라고 하면 준비가 안된 아이는 넘어지거나 엄마랑 같이 가는 게 힘겹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많은 아이들이 조금 자라서 엄마손을 놓아도 될 거 같은 때가 오면 다시는 엄마 손을 잡지 않으려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교육열로 1,2위를 차지하는 민족으로 한국인과 유태인이 언급된다. 교육열은 비슷한데 그 성과는 많이 다른 이유가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를 끌고 가고, 유태인 부모들은 아이를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태인에게 배움이란 죽을 때까지 평생토록 해야 하는 것인 반면, 우리에게 교육은 스무 살에 끝나는 레이스에 누가 앞서 들어가느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짧은 기간에 레이스가 끝난다고 생각하니 무엇이든 조조익선(早早益善)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멀리 보지 않으면 필히 가까운 곳에 근심이 있다고 하신 2500년 전 공자님 말씀에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된다.


조기교육이나 부모의 채근 없이도 얼굴이 벌게지도록 안간힘을 다해 뒤집고, 수십 번씩 넘어져도 서려하고 걸으려 했던 아이들의 어릴 적을 떠올려보며 아이를 믿기로 한다. 나의 교육열이 아이들의 학구열이 되지 않기에.


*사진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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