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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May 08. 2024

글쓰기의 고락

브런치와 함께한 6개월

브런치스토리와 함께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여섯 달간 겨우 글 서른개 남짓 써놓고서 글쓰기가 어쩌고를 입에 올리는 것은 심히 민망하지만, 이불킥을 각오하고 끼적여본다.


내 글을 오매불망 기다려주는 독자도, 마감일이라고 재촉하는 담당 에디터도 없다. 그럼에도 매주 수요일 글을 발행하겠다고 자기소개에 홀로 외친 약속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면서 아무도 씌워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휘감은 굴레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머리를 쓰면서

마음을 쓰는 것이며,

손도 쓰면서

시간을 쓰며

애를 쓰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것을 써야 써지는 게 글이란 걸

반강제적 틀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깨달았다.

글쓰기는 괴로움이면서 즐거움이라는 것을.



일상을 살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을 하면서 회사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편과 수다에서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과 느낌들을 잡아서 글 속에 가두려 안간힘을 쓴다. 그게 되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다. 글을 바로 쓸 수 없는 얄궂은 순간 머릿속에서 술술 글이 떠오를 때가 있다. 밥 먹다 말고, 운전하다 말고, 일하다 말고, 글을 쓸 수 없으니 대강 주제나 글감만 기억하거나 기록해 두는데 그걸 다시 풀어내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면 전혀 풀리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쓰긴 쓰는데 아무리 봐도 어색한 흐름과 서투른 문장들. 재능이 없나 자책을 하기도 하고 머릿속을 떠난 그 문장들이 왠지 좋았을 듯한 느낌에 아쉽고 안타깝다. 악상이 떠오를 때 기록하지 못한 작곡가의 괴로움과 슬픔이런 것이려나 막연하게 추측만 해본다.


안 써지는 글이 키보드만 계속 붙들고 고사를 지낸다고 써지지 않는다. 그럴 땐 남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악상, 아니 문상(?)이 떠오를 때까지 몸과 머리를 식혀 주는 게 낫다. 물론 환기를 시킨다고 머릿속에서 달아난 단어와 문장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다시 새로운 말들을 엮어낼 에너지를 조금 충전할 뿐이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책이나 브런치의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어본다. 명히 방금 내려놓은 조급함이 다시 손에 들려있다.


맛깔나게 잘 쓴 글들을 마주하면 부럽고 샘이 나다가 움츠러들기도 한다. 기교나 멋부림도 없이 담백하면서도 글쓴이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표현과 술술 읽히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감탄할 때가 많다. 이 작가님은 어떤 글을 읽어왔기에 이런 어휘, 저런 찰떡콩떡 같은 표현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쓴단 말인가. 나도 비슷한 경험과 추억이 있는데 그런 걸 이렇게도 글로 풀어낼 수 있구나 하고 무릎을 치기도 한다. 또 어떤 글은 나도 막연하고 희미하게 느끼고만 있었지 명확한 언어로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또렷하게 주기도 한다. 공감하면서도 감탄하고 한참 동안 그 생각에서 빠져있기도 한다. 타인을 한참 동안 사색하게 만드는 글을 나는 쓴 적이 있었을까? 그동안 끼적여놓은 글들이 알량해 보여 스스로가 작아진다.


비교는 비난, 비관과 함께 하지 말아야 할 3비에 속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인간에게 비교는 이미 자동화된 것인 듯하다. 의식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비교가 되는 것이라서, 오히려 비교하지 말자는 다짐을 의식으로 끌어올려야 겨우 비교되는 마음을 조금 다독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또 일상의 수다나, 에피소드들이 글로 나쁘지 않게 엮어지면 그간 감탄한 글들에는 비할 바가 아닌 걸 잘 알면서도 배알도 없이 기분이 풀리기도 한다. 머리와 가슴의 온 감각을 깨워 놓고 글감을 찾는 것은 종종 스트레스이지만 때로는 큰 활력이 되기도 한다. 이걸 글로 어떻게 풀어내지? 하는 궁리의 부담이기도 하지만 일상을 온전히 느끼고 그걸 기록하고 있다는 활력.


글쓰기의 가장 큰 순기능은 아픔은 글로 쓰면 치유가 되어 잘 아물어가고, 기쁨은 박제가 되어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기분을 몇 번이고 다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속담처럼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 물론 이 속담이 요즘은 변하여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 하니, 더더욱 익명뒤에 몸을 숨기고 쓰는 글이야 말로 옛 속담을 그대로 지켜주는 친구인지도 모르겠다.


과한 욕심이었지 싶지만, 어릴 적부터 '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아마, 특출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욕심에 미니홈피에 끄적거렸던 말이다. 그런데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인류와 민족에 혁혁한 공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누가 봐도 좋은 글을 언제나 척척 쓸 수 있는 나는 아니지만, 사소하고 시시한 사적인 기록이면 어떤가. 멋진 글이 될만한 삶을 살아오진 못했지만 글을 내 삶에 끌어들인 것은 분명 잘한 일이다. 미래의 내가 6개월 전의 나를 고마워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덧붙여.

서투르고 부족한 글에도 공감과 응원을 보내주시는

가족들과 독자들에게 심으로 깊은 감사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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