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 부자구나!
부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들
이제 내가 부자가 되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순간은 정작 큰돈을 쓰는 순간이 아니다. 명품을 산다거나 새 차를 뽑는다거나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는 순간들에는 외려 그런 느낌이 별로 없다. 아마도 예전엔 명품이란 게 있어도 있는 줄도 몰랐을 거고, 어렸으니 차를 산다는 건 내 일이 아니었을 테고, 해외여행은 나도 남도 쉽지 않던 일이었기에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예전엔 할 수 없었거나 하기 힘들어 아쉬웠던 것들을 이제는 큰 고민 없이 할 수 있을 때 소소하지만 행복한 순간이 된다.
사실 얼마 전 '온수가 안 나오는 집의 추억'이라는 글의 시작은 이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지금 누리는 풍요의 순간이 어릴 적과 대조되면서 옛 추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추억놀이를 했다. 아이들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 건, 우리 세대가 부모님들이 한국전쟁 직후에 미군 트럭을 따라다니면서 '기브미초콜렛'을 외치며 초콜릿을 얻어먹었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일까 싶어 아이들에게도 말못했는데, 글로 남겨 나중에라도 엄마는 이런 추억이 있었구나 하면 좋겠다.
돌아보니 지난 30~40년간 (아니 그 이상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의 기간이다.) 우리나라 자체가 매우 부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40대 중후반 아줌마의 부자가 된 느낌을 늘어놓으려니 다분히 라떼로 시작해 라떼로 끝날 것 같은 슬픈 예감이지만 공감하시는 분은 또래 인정, 공감이 안되시는 분은 '젊음'인정이다.
- 나이키운동화를 살 때
스물두 살인 가 세 살까지 나이키 운동화를 신어보지 못했다. 내 기억에 나이키는 내가 어릴 적에는 정말 비싼 물건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명품신발보다도 더 희귀템이었지 싶다. 아니 사실 나이키는커녕 프로월드컵 운동화라도 새 신을 산 날은 그 특유의 새 신 냄새가 좋아 종일 기분이 좋았으니 그게 나이키가 아니라고 슬프지도 않았다.(그 새 신 냄새는 이제 맡을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작년 겨울 딸아이의 겨울 운동화를 인터넷에서 저렴이로 사주었더니 그 향이 나서 정말 오랫동안 옛날 생각을 떨 칠 수 없었다. )
아마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즘부턴 우리 집은 형편이 좀 좋아져서 내가 나이키가 신고 싶다고 하면 사주셨을 수 있었을 테지만, 관성인지 명품을 탐하는 듯한 그런 마음이 싫었는지 고등학생 때도 나이키를 사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도 주로 구두를 신고 다니니 운동화가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옛날 대학생은 그랬다. 외려 직장 다니는 지금 운동화나 스니커즈를 더 많이 신는다.)
그러다 어느 날 운동화를 살 일이 있어 운동화를 고르는데 나이키 운동화가 꽤나 만만한 가격이 되어있었다. 나이키가 싸진 건지 내가 돈이 많아진 건지 헷갈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나이키를 2개나 가지고 있는 부자가 되었다. 딱히 조심하거나 아껴서 신지도 않는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신지만 옛날엔 아무나 신을 수 없었던 나이키, 그 나이키를 살 때 부자가 된 거 같은 기분이다. 어릴 적부터 다이나모프리를 신은 아이들은 이런 기분 힘들겠지? 앗, 나도 뉴발을 살 때는 그 느낌이 없는 거 보면 정말 옛날이 기준인 건가?
- 목욕탕에서 우유를 마실 때
어릴 적 그 온수도 안 나오는 집에 살 때, 목욕탕을 가는 건 우리 집 일요일 루틴이었다.(토요일도 등교와 출근을 하던 때이다. 아, 이미 라떼 돌림노래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가 개운하게 씻고 나오면 탈의실 매점에는 우유나 요구르트 같은 음료수와 과일통조림 같은 걸 팔았다.
돈이 없어도 쓰고, 있으면 더 쓰는 아빠랑 남탕을 가는 남동생은 우유는 물론 가끔은 캔에 든 '깐포도'나 '밀감'까지 먹고 나왔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못쓰고 없으면 더 못쓰는 알뜰한 엄마는 목욕탕 밖 구멍가게만 가도 반값이 되는 우유였으니 당연히 밖에 나와 사주셨다. 솔직히 그 탈의실에서 목욕의 열기와 습기가 전부 가시지 않은 채 마시는 차가운 우유야 말로 목욕탕의 백미 아닌가. 그땐 종종 동생이 부럽기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절약 덕에 난 이제 목욕탕을 갈 때마다 부자가 된 기분을 만끽한다. 작년인가 딸이 목욕탕에서 흰 우유를 먹고 나서도 초코음료 제티가 먹고 싶다고 해서 또 사준 날이 있었는데 그날 난 진정한 부자엄마였다.
- 마트에서의 충동구매
지금도 마트를 갈 때 나는 사야 할 것을 목록으로 만들고 그 목록을 보고 동선을 정해 빠르게 골라서 나온다. 특별히 알뜰해서는 아니다. 내 기억에 의존해서 가면 꼭 빠트리는 것이 생기고, 동선을 정하지 않고 돌면 넓고 사람 많은 마트에서는 심히 기가 빨리는 느낌이라 가능한 짧은 시간 머물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 이동 중에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식품이 눈에 띄면 큰 고민 없이 카트에 담을 때가 있다. 혹은 아이들이 따라와 이것저것 사도 되냐고 물을 때 나의 고민은 그것이 몸에 안 좋은 것이냐가 기준일 뿐이다. 옛날 엄마와 장을 볼 때 과일이든 과자든 몇 번씩 들었다 놨다 고민하시던 엄마덕에 오늘이 있지 싶기도 하다.
- 철 이른 과일을 살 때
딸기나 복숭아는 그 향을 향수로 만들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과일이다. 요즘 아이들은 딸기가 겨울부터 나오고 겨울에 더 맛있어서 겨울과일로 알고 있는 듯 하지만, 봄이 되기 전 딸기는 정말 백화점에서나 팔았던 기억이 있다. 근데 왜 겨울딸기랑 봄 참외가 맛있는 걸까? 제철과일이 몸에 좋은 거라고 머리로 알아도 그 향긋한 냄새를 못 참고 지난주부터 참외 한 봉지 사버렸다. 반팔 옷을 꺼내기 전, 긴팔옷을 입고 맡아보는 참외냄새도 부자냄새다.
- 버거세트의 감자튀김을 어니언링으로 업!
대학 때 과외로 돈을 벌어 친구 두 명에게 와퍼세트를 쏘면서 감자튀김을 어니언링으로 플렉스하던 그 기분이 아직도 어니언링을 보면 느껴진다. 근데 그때만큼 맛이 없는 건 내 입이 변한 건가 어니언링이 변한 건가.
- 에어컨을 켤 때
더위를 견디지 않아도 되게 해준 에어컨. 집에 에어컨이 들어오던 날이 생생하다. 지금은 더위보다 추위가 힘들지만 혈기왕성했던 어린 시절엔 더운 게 참 고역이었다. 가난은 많은 것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살게 한다. 가난한 이들이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많은 의지를 생존에 써야 해서라는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 그런데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고등학생때 집에 에어컨이 생기고부터 에어컨 없는 학교가 더 괴로웠던 거 같다.
- 닭다리로 아무도 서럽지 않게 다리와 윙만 있는 콤보치킨 시켜 먹을 때
닭다리랑 날개만 있는 세트라니 옛날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상이 오긴 했다. 네 식구 나란히 앉아 1인 1닭다리는 AI시대에도 행복이지 않은가.
- 놀이동산 가서 아이들 머리띠나 헬륨풍선, 굿즈를 사줄 때
분명 내가 어릴적 헬륨풍선이나 놀이공원의 머리띠는 과소비였고 사치였다. 놀이공원만도 감지덕지였는데 며칠후 바람빠질 풍선을 사달라고 하긴 쉽지않았다. 그걸 들고 놀이동산을 누비는 아이도 정말 소수였다. 그런데 이제 풍선과 머리띠 사줄 수 있다! 사줄 수 있지만 아깝긴 한 건 어쩔수 없지만.
- 배스킨라빈스를 컵으로 사줄 때
가성비로는 아니지만 아이들 건강과 비만을 생각해 조금만 먹이려고 양이 적은 컵으로 사주는 때가 있다. 가성비보다 건강을 따지는 부자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이 글을 읽고 겨우 이런 걸로 부자라고 느끼다니 하면서 엄마의 스케일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속성장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겐 소소하지만 꽤나 만족감 높은 행복의 순간들이다. 단기간의 고속성장으로 분명 부작용과 그늘도 있긴 하지만, 광복 이후 부지런히 묵묵히 일하셨던 아버지들과 알뜰살뜰 아이들 챙기며 열심히 살아오신 어머니들이 아니었다면 이런 소소한 풍요도 쉽지 않았을 거다.
언젠가 엄마랑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이랑 엄마의 통장 잔고를 3~40년 전 엄마에게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나중에 이렇게 살게 될 테니 힘을 내."라고 누군가 미리 알려주었다면 그 시절 많은 수고가 덜 힘들었을 텐데라고. 그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내 또래의 엄마와 아빠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 다시 돌아가서 그때의 엄마아빠를 꼭 안아주고 싶기도 하다. 이제 20년 후 30년 후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고마워하도록 오늘을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