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화가 많아졌다.
매일 오후, 뉴스와 수다의 중간쯤인 TV 시사쇼에서 새로이 들리는 흉흉한 소식들.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으며 확실한 대상이 없는 분노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일 년 반 동안 확진자 숫자에 가슴 조리고 입을 틀어막고 집에만 있다 보니 누구든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개인의 인격을 보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이겨내고 있다. 그러나 간혹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분노를 엉뚱한 곳에서 폭발시킨다.
음식 배달 라이더들에게 갑질 해대는 고급 아파트 입주민들이나, 마스크를 써달라는 버스기사에게 욕설과 주먹을 날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얕은 속내를 드러낸다. 이런 사람들이 이야기가 요즘 너무 많이 들려온다.
그런 일들이 뉴스로 들려올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분노하지 말자. 그것은 아무런 이득이 없다.
그러다가 나에게도 스멀스멀 걱정으로 시작한 화가 올라올 때쯤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고 티베트 속담을 되뇌며 스스로를 각성한다.
지난겨울과 초봄, 눈이 많이 쏟아졌다. 2월에도, 3월에도 눈이 왔다. 지난 몇 년간의 겨울을 합쳐서 기억해 낸 눈 오는 풍경보다 지난겨울 하얀 풍경이 훨씬 많다. 외출할 일도 거의 없는 나는 눈이 온다고 해서 차 걱정, 교통 걱정 하기보단 SNS에 너도나도 올리는 눈 오리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에 여기저기 쇼핑 앱을 찾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에휴. 이 나이에 무슨, 하며 생각을 접었다가 결국 그냥 눈을 밟으러 나가기로 했었다.
나의 반려견에게도 눈 구경을 시켜주고 싶어서 겨울이 오기도 전에 일찍이 장만한 패딩을 입혀 데리고 나갔다. 옷을 잔뜩 껴입은 탓인지 춥지는 않았지만 새하얀 아파트 단지의 땅이 맑은 햇살에 비쳐 눈이 부셨다. 아이들이 곳곳에 눈썰매를 들고 나왔다. 언덕진 곳마다 설매 타려는 아이들이 서너 명씩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의 강아지도 신이 났는지 눈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곳곳에 뿌려진 염화칼슘을 밟을까 봐 눈이 두껍게 쌓인 곳만 다녔다. 줄을 제일 길에 늘여주고 잠시 길가에 서있었다. 멀리서 다섯, 여섯 살쯤 되는 남매가 나의 강아지를 보고 반갑게 뛰어왔다.
"아! 강아지다! 너는 좋겠다. 마스크 안 쓰고 다녀서..."
"그래, 진짜 좋겠다..."
아이들은 잠시 멈춰 강아지를 바라보더니 금방 가던 길로 뛰어갔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아이들이 한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지더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일 년 동안 봐서 너무나 익숙했던 하얀 마스크의 얼굴들. 온통 눈으로 뒤덮여 사람들 얼굴이 살색인지 흰색인지 구분이 안되었던 것일까.
커다란 눈만 꿈뻑대던 두 아이들의 목소리가 계속 머리에 울렸다.
그래 모두들 쓰고 있었지. 물론 나도 이렇게 쓰고 있구나, 마치 이게 내 얼굴인 것처럼. 그래서 한겨울에도 얼굴이 시리지 않았지.
눈 내린 하얀 추운 날, 눈썰매를 끌고 언덕을 올라갈 때도 마스크로 답답한 숨을 헉헉 몰아쉬며 놀고 있는 아이들,
그 옆에 네발로 껑충대며 눈을 밟고 다니는 개는
귀엽고 작은 코에 아무런 가림막 없이 거친 숨을 공기로 신나게 내뿜었다.
그것은 눈으로도 보이는 자유로운 숨소리였다.
아이들의 진심 어린 부러움이 돌아올 겨울엔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