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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Aug 16. 2021

02. 힘 빼기의 기술

  ‘힘 빼기의 미학’, ‘힘은 어떻게 뺄까’, ‘요가와 삶에서의 힘 빼기’ 등 제목을 생각해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힘 빼기의 기술’보다 적절한 말은 없었다. ‘힘 빼기의 기술’은 카피라이터이자 내가 동경하는 작가 김하나님의 책 제목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이미 내 뇌에 착 감겨버려 다른 단어와 함께하는 ‘힘 빼기’는 상상할 수 없다. 힘 빼기에는 기술과 요령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이 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만 힘 빼는 방법까지 배워야 하는 사람인가 자책하곤 했는데, 알고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이 궁금했고 책까지 나온 것이다. 한숨을 처언처언히이 들이마시고 다시 후우우우. 힘 빼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김에 다시 한 번 있는 힘껏 힘을 빼며 시작하자. 


  ‘힘 빼기’의 개념은 요가를 통해 나와 다시 만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힘 빼기’를 몰랐던 것은 아니고, 단지 까먹었던 것이다. 힘을 주지 않았던 먼 과거 속의 수영장으로 가보자. 덩치 큰 수영 선생님이 나를 물에 던져 코와 귀가 먹먹해져도, 나는 다시 씩씩하게 물 속에서 노는 어린이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물에서의 나는 한 마리의 오징어 마냥 추욱 늘어져 있었다. 만약에 내가 힘을 잔뜩 주고 있었으면, 물 속에서 헐떡이며 발버둥 치고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이완에 자신 있던 내가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것도 잔뜩. 우리의 몸과 마음은 모두 말랑말랑했지만, 점점 땅땅하게 굳어가며 불필요한 힘을 준 어른이 되어간다. 학교에서 조금씩, 회사에서 서서히 힘을 바짝 주며 하루 하루를 견뎌낸다. 왜 나는 힘을 줄 필요가 없던 어린이에서 힘을 주어야만 했던 사회 초년생이 되어버린 것일까? 나의 경우에는 그저 사회적 인간으로 이상한 사람, 못된 사람, 친절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며 일종의 방어막으로 힘 주는 법을 배운 것이다. 저 세 사람 중에 친절한 사람들이 유독 마음 아픈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럴지도 모른다. 특히나 회사는 친절한 사람들에게 더가혹한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힘 주는 법을 배웠는데,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제 다시 힘 빼는 법을 배울 차례이다.



  숨을 쉬는 소리, 마우스를 움직이는 소리, 심지어 화장실에 가러 일어나는 나의 움직임까지 모두 팀원들에게 포착될 정도로 정적인 사무실이었다. 나는 늘 자리에 앉으며 판옵티콘 죄수들은 이런 기분일까 상상했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사무실의 통로 자리가 막내인 나의 자리였는데, 늘 지나가는 팀장님이, 다른 팀 차장님이, 혹은 내 옆자리 사수가 나의 모니터를 보고 평가하고 있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을 받았다. 피가 말리는 듯 했다. 나쁜 예감은 어쩐지 다 맞을 것만 같았다. 


“후우….” 


  사무실의 정적을 뚫고 나오는 소리는 늘 사수의 것이었다. 단단한 정적에 균열을 만드는 것은 그의 목소리, 몸짓, 때로는 욕설이었다. 과장님은 ‘김씨 오늘 기분이 별로네, 또 누가 귀찮게 구나봐~’ 하고 가볍게 대응한다. 하지만 나에게 사수의 감정 변화는 내 하루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나의 하루의 주도권을 빼기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원통하고 억울하다 싶지만 당시 인턴에게 회사의 중심은 사수였다. 저기 저 부장님도, 저쪽에 사장님도, 나와는 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아마 내 이름도 모르고, 내가 인턴1인지 인턴2인지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사수는 다르다. 사수한테 뿜어져 나오는 어두컴컴한 에너지는 스멀스멀 나에게 존재감을 과시하더니 거대한 태풍처럼 몰려왔다. 과장님에게는 잔잔한 미풍이지만, 나한테는 강강강풍이다! 일이 꼬이면 사수의 타자 치는 소리는 점점 커졌고, 한숨 소리는 더 깊어졌다. 점점 과격해지는 사수의 타자 치는 소리를 들으며 내 심장은 더 요동쳤고 몸은 바짝 긴장했다. 이런 날에 나는 퇴근 직전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사수의 기분을 살피곤 했다. 업무 보고를 하며 혹여 곧 터질 시한폭탄이 나를 향하지는 않을지 조심했다. 나는 늘 사수의 눈치를 살피며 그를 건드릴 모든 요소가 사라지길 바랄 뿐이었다. 그게 거래처든, 사람이든, 사수를 배고프게 하던 다이어트였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누구라도 제발 사수의 신경 좀 건들이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바랄 뿐이었다. 화가 많은 사람의 예민함을 피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하루 종일 사수의 뾰족함을 요리조리 피하느라 승모근이 귀와 가까워진 나는 몸뚱어리를 힘겹게 이끌고 요가원으로 향했다. “어깨에 힘 빼세요.” “턱에 힘 빼세요.” 나는 요가원에 발을 들인 첫 날부터 이 말들과 함께했다. 나는 내 몸에 그렇게나 힘이 많이 들어갔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이완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사수는 내 오른쪽에 앉았었는데, 유독 나는 오른쪽 어깨가 단단하게 뭉치곤 했다. 하루에 약 10시간 정도 오른쪽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악마의 기운을 감당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또, 또 힘 들어갔네. 힘 푸세요!.” 나는 이미 뺐다고 뺀 상태인데, 힘을 빼라는 선생님의 말을 한 수업에도 몇 번씩 들었다. 약 오르게도 힘은 빼려고 의식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몸에 힘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점프백, 점프스루 우당탕탕 정신 없이 흘러가는 아쉬탕가 수련을 마친 날의 사바아사나(송장 자세)에서 만큼은 힘이 풀렸다. “자 이제 사바아사나. 머리를 대고 누우세요.” 선생님께 아주 약간 죄송한 마음이지만, 요가를 하는 60분의 시간 동안 이 말을 듣는 순간이 가장 달콤하다! 열심히 움직인 몸을 뉘이면 마음은 평온해졌다. 사수를 중심으로 돌던 내 행성이 다시 나를 중심으로 도는 것만 같았다. 회사에서는 온 신경이 사수를 향했는데, 이제 그 신경들이 나를 향한다. 나의 마음 상태는 어떠한지, 오늘 몸은 어떠한지. 머리카락은 흐트러졌고, 옷은 땀으로 젖었고, 내가 간신히 쥐고 있던 정신줄은 놓은지 오래였다.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였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인지. 나를 단단하게 옥죄이고 있던 역할들로부터 벗어난 기분이다.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육체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꽤나 효과적이구나! 



  요가를 만나고 나는 잃어버린 나의 중심을 자각하게 되었다. 매트 위에서 만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며, 사수를 향한 못난 마음들을 조심스럽게 따라갈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점점 사수를 역할로서의 ‘사수’가 아닌 또 다른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 요가를 하면서 나의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어가는 것을 감각했는데, 나와 다름없이 사수도 본인만의 삶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악당도 나름의 비하인드스토리가 다 있을 테니까. 내가 괴로워하는 사수의 냉혈한 같은 모습 말고도,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사수 때문에 힘들다는 이유로 그를 미워하는 마음을 덜어내고, 한 발자국 멀리서 바라보고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를 괴롭히는 협력사들, 그를 만만하게 보고 귀찮은 일을 떠맡기는 다른 팀 사원들, 그리고 애매한 책임을 그에게 떠맡기려는 부장님까지 말이다. 


  요가를 삶 속에 집어 넣은 나는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휘청거리며 나의 중심을 되찾아 갔다. 그러고 나니 내가 그렇게 미워하던 사수도 그저 학교를 졸업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새내기 직장인이었다. 아직 부모님의 품 속에서 사는 소중한 딸이었고, 모른다는 말을 할 용기를 잃어버린 어른이었다. 본인의 가녀린 영혼을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가시 박힌 말들이었고, 무궁무진한 회사에서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려는 마음이었다. 나는 힘을 빼고 나서야, 힘을 잔뜩 쥔 사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제 그의 안녕과 평화를 빈다. 사수도 이제 힘 빼기의 기술을 터득했으면 좋겠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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