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젊은이에서 요가하는 젊은이로.
24세, 대학생.
평범하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고, 때로는 친구들을 만나고 가끔은 애인과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대학교 4학년이 되어버렸다. 나는 여느 친구들과 다름없이 토익 공부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한다. 경쟁은 일상이라 줄 세우기에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학교 앞 노가리집에서 알코올의 힘을 빌려 고민을 털어버리고,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든 건설해내겠다고 발버둥친다. 내가 만난 30대는 나의 젊음을 그리워했고, 40대는 나의 체력을 부러워했지만, 그 누구도 다시 20대를 살아내고 싶지 않아 했다. 아마도 모두에게나 똑같이 불완전하고 어리숙한 시기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시간은 많지만 경험은 부족하다. 시간을 무기 삼아 잠을 줄이는 것쯤이야. 나라는 사람을 ‘갈아 넣어’ 때로는 학업에, 때로는 연애에, 자주는 어떤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그 결과, 나는 늘 준비된 사람으로 평가받았고, 남들의 적지 않은 부러움을 사며 사회적인 안전망에 속해 있었다. 가족의 품을 떠나 학교의 품으로, 학교를 떠나 드디어 회사의 품으로 이동하며, 꽤나 안정적인 길만을 선택했다. 하품이 나온다. 누구나 알 법한 회사에, 그것도 원하는 직무로 입사했다. 사무실에 내 자리 하나쯤이 과연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 자리가 드디어 드디어 생겼다. 1차 서류를 통과하고 2차 전화 면접을 거쳐 3차 대면 면접. 나는 불안정한 취준생의 마음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잠시 취해 정작 공허해지는 나의 마음을 보지 못했다. 회사 생활은 어떠냐는 주위 사람들의 물음에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입사 후 나는 실은 괜찮지 않았다.
신입사원의 열정을 뽐내며 패기 있게 인사하던 첫 출근 날. 무실수의 유능한 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오산이었다. 멋진 사수를 잘 따르리라는 다짐과 다르게 덩그러니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에 내던져졌다. 상상했던 유능한 신입사원인 나의 모습은 사라졌고, 실수를 거듭하며 눈치를 살피는 어리숙한 신입만이 남았다.
모두가 짜장면을 시켰지만 혼자 짬뽕을 주문한 기분이랄까. 사원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했고, 암묵적인 룰을 모두가 따랐다. 그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들이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맡은 업무의 히스토리를 알지 못했고, 정 대리가 누구인지 몰랐으며, 그 누구도 나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회사가 처음이고, 그렇다 할 멘토도 없었고, 결과적으로 혼자 맨땅에 헤딩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신입이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실수들을 하나하나 나의 역사로 들며 회사에서의 첫 한 달을 버텼다. 자잘한 이메일 전송 오류부터 시작해 타 부서의 차장님을 부장님이라고 부르기까지. 실수를 한 게 정말로 내가 맞는지, 아니면 이 또한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음모는 아닐지 의심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실수라는 게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바로 눈에 띄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일주일 전에 내가 한 실수를 지금에서야 상사가 발견하면 더 큰 문제로 번진다. 그 결과, 나는 현재 진행형인 실수와 과거에 완료된 실수를 사무실 안과 밖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시공간을 넘어 실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수습하고 있었다.
이미 저지른 실수를 다시 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이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실수는 또 어찌나 버라이어티 하게 한지. 출근과 동시에 몸에 잔뜩 힘을 준 상태로 퇴근까지 한시라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거듭되는 실수는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고, 조급함은 또 다른 실수를 불러일으켰으며,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위축되고 있었다. 새로운 실수를 맞이하고 이미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긴장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나의 행동을 조심하고, 또 다른 실수가 발생할까 끊임없이 나를 검열했다. 이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 게 맞을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틀리진 않은지 긴 여행을 떠나기 전 빠진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게다가 사수라는 사람의 언제나 화가 나 있는 듯한 그 눈빛과 표정은 다른 사람들의 따스한 눈빛을 다 무색하게 만들 만큼 강렬했다. 내가 유일하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늘 뾰족하게 각이 져 있다는 것은 안 그래도 위축된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위치시켰고, 몸은 잔뜩 움츠린 채 회사의 억압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더 이상 회사에 다니는 ‘나’는 없었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타고 무사히 회사에 도착했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없었다. 영혼은 빠진 채 기계처럼 출퇴근을 진행했다. 생기발랄하고 삶에 최선을 다하던 20대 대학생은 없어지고, 그저 회사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먹이사슬 최하위에서 바짝 엎드리는 ‘인턴 1’의 껍데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처음이라 그렇다고, 저들도 처음부터 다 잘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여전히 괜찮지 않았다. 실수가 없는 날은 다행이라 여기며 퇴근 후에나 몸의 긴장을 풀었고, 실수로 가득한 날은 내일 출근에 대한 걱정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마냥 정신은 집에 육체만을 버스에 태우며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도 괜찮겠다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가득한 어느 주말, 어떤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요가명상고요
그래 이거다! 번쩍번쩍 광을 내는 입시학원과 PC방 간판 사이에서 내 눈에는 오로지 침착하게 옅은 빛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요가원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요가는 해본 적이 없었고, 명상은 어려워 보였지만, 나에겐 고요가 필요했다. 입사 후 나는 너무 많은 말을 듣고,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의 빈 공기를 채우기 위해 내뱉은 공허한 말들로 내 마음은 점점 텅 비어지며 허기만 가득했다. 나에겐 고요가 필요했고, 명상은 해야만 했고, 요가가 딱 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요가원이 나의 손을 잡아주기를 기대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매일 퇴근 후 빨간색 9003번 버스를 낑겨 타서 요가원으로 도피했다. 도착한 그 순간부터가 내 하루의 진짜 시작이었다. ‘회사에서의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주문을 걸며 요가원의 문을 열면 지인한 인센스의 향기와 선생님의 미소가 나를 반겨주었다.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도피한 나의 안식처. 요가원은 공간 그 자체의 힘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나는 ‘인턴1’도 ‘학생1’도 아닌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고, 역할이라는 베일에 가려졌던 자아를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매트 위에서만큼은 내가 나의 몸과 마음의 주인이었다. 처음엔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몸을 움직였고, 고통스러웠던 동작이 편안해지면서 점점 나의 흐름을 찾기 시작했다. 요가를 안내해주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슴슴한 위로를 받기도 했다.
“회원님, 어깨에 힘 빼세요.” 나는 요가를 시작했던 그 날부터 이 말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나는 힘을 준 적이 없는데, 힘을 뺀다는 것은 내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의 일이었다. 내가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나의 무의식이 준 힘을 어떻게 의식적으로 빼라는 것일까. 타인 또는 상황에 의해 육체나 정신이 지쳐 힘이 빠진 적은 많지만, 내가 의식적으로 힘을 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경쟁이 일상이고, 내가 앞서 나가지 않으면 뒤로 밀려나는 삶을 살다 보니, 긴장을 풀고 이완하는 것이 힘을 주는 것보다 생경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무지와 실수의 구렁텅이에서 뒹굴던 사회 초년생이 아닌가. 학교에서는 고학번, 사회에서는 새내기라는 모호한 경계에서 승모근은 힘을 꽉 주고 있었다. 그래도 요가를 통해 나는 드디어 이완의 세계를 만났다. 그렇게 나는 육체와 정신의 고요를 만났고, 고요 속에서 요가하는 젊은이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