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기를 위한 장난감 악어 솜인형을 그린 적이 있다.
나한테 의미가 있는 물건이니 그릴 대상으로 정했다.
다만 미술행위를 할 때에는 별 생각 없이,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스케치를 그려나갔다.
미술실에 가지고 가려고 악어 인형을 가방에 넣었는데, 거꾸로 뒤집힌 모습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아.. 뒤집어서 그릴껄.'
그 외로도 악어 위에 사탕을 올려 놓는다는 등 다른 조합을 생각해보며 혼자만의 재미있는 상상을 펼쳤다.
미술 시간이 다가오고, 내 그림을 본 선생님은 인형의 특징을 나에게 알려주셨다.
인형은 솜뭉치가 있어서 둥글둥글한 느낌이 든다. 폭신폭신한 느낌이 있으니 실제로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고 더 과장해서 동글동글하게 그려도 괜찮다고 하셨다.
또, 동물의 특징도 알려주셨다. 바로 오목조목한 작은 부분이 귀엽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강아지의 꼭 다문 늘어진 입을 좋아하는데, 선생님은 작은 발톱을 귀여워하셨다. 악어의 입을 늘어지게 그리는 것도 재미있겠으나, 일반적으로 귀여워보이는 발톱을 강조하여 그렸다.
이렇게 자기 미술의 특징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뒤집어진 사물만 그리는 사람이 된다던지,
계속해서 똑같은 귀여운 발톱을 강조해서 다양한 동물을 그리는 사람이 된다던지.
이제는 사물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특징을 뽑아본 후,
그 특징을 최대화하여 '내 그림의 특징'으로 그리는 것을 배운 날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보는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내가 미술을 좋아했던 이유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