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변화: 내적 괴로움

병가 이틀 째

by 박모카

병가 이틀째. 아직 쉬는 날이 많아서 여유롭다.

회사일도 나중에 복귀해서 차근차근 하면 되는 것들이라, 이번주는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집안일도 남편이 다 하고 있다.


어제 낮잠을 두번이나 짔는데도 불구하고

밤에 잘 자고 낮에일어났다.

일어나니 꼬리뼈가 살짝 아파왔다.

하루종일 뻐근하다!

요가를 아주 살짝 해줬더니 아주 괜찮아지는 느낌이다. 요가효과일까?

그리고 어제쯤부터 밑이 간지럽더니 결국 질염이 생긴 것 같다. 로션바른 손으로 처방받았던 질정을 이틀간 넣었는데, 그것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며칠 전 부터 입덧처럼 속이 계속 안좋았다. 뱃속에서 아기가 하도 움직여서 그런건가 싶다.


어제 산부인과에서 괜찮다고, 점점 나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셨는데

오늘은 빨간피가 나왔다.

상태가 괜찮은줄 알고 오전에 쿠킹클래스 수강하러 갔는데, 서있는지 1시간쯤 되니 힘들어져서 집에왔다. 집에 와서 쉬하니 빨간피가 나와서 바로 산부인과에 갔다.

거의 누워 살다시피했는데 왜 자꾸 피가 나오는건지. 속상하다.

그리고 임산부 피 나오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아! 나도 임신했을 때 피났어!'라고 한다. 이어지는 말은 '별거 아니었어' '이상 없었어' '내 주위에 그런 사람 엄청 많아’라고 한다.

임신 초기에 피비침이 있는 경우는 착상혈이 나올 수 있지만, 안정기인 중기때 피가 나온다?

산부인과 선생님들도 다들 긴장하는 부분이다.

오늘은 산부인과 가니까 선생님께서 이러다가 양수파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대학병원으로 보내셨다.

거기 응급실가서 피검사하고 초음파 이것저것 하고 육안으로는 이상 없대서 집에 왔다.

엄마한테 말하니까 '그런 사람들 많대~'라며 앞으로 병가 내는건 이번 주말 지난 다음에 경과 보고 하라고 했다.

월요일날 피 안나면 무리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우리 일벌레 산부인과 선생님도 '그럼 쉬어야지요'하면서 2주 진단서 자동으로 끊어주시는데

(이분은 정말 자는 시간 빼고 일만하는 것 같다. 의사쌤 두 분인 곳에서 거의 90%의 손님을 자기가 다 받는 것 같다.)

엄마는 임신 초기 중기도 모르는 카더라 사람들의 말만 듣고 (임신 후기에는 아가 나오기 전에 이슬이라고 피비침이 또 있다. 임신 중기에 폴립이라는 혹이 질 내에 있는 경우 피가 날 수 있는데, 나는 태반에서 피가 나온거.. 물론 임신 초기 출혈도 심각하다.) ‘그냥 괜찮대’ 라고 하니.. 너무 짜증난다.

내 임신 처음부터 봐왔던 의사 선생님이랑,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 모두 다른 치료제는 없고 침대생활만이 답이라고 하는데, 이런 휴식이 얼마나 큰건지 간과하고 그냥 '괜찮대~'로 말을 마무리하는게 참 어이가 없다. 휴식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을, 괜히 성급하게 움직여서 큰 일 만들게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회사에서 만나면 이제 힘들어지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있으면 밥먹고, 또 바로 눕고, 잠이 안오면 강아지랑 누워있으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잠도 꽤 많이 잤는데도 불구하고 자주 졸리기도 하다.

어제는 결국 대학 병원 응급실로 갔다.

거기도 딱히 해줄 수 있는게 없었다. 다행히 집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다.

입원을 하면 처방이 달라진다기 보다는 24시간 나를 지켜주는 시스템을 위해 가는거라고 남편이 알려줬다.

입원하면 내가 지금 처방받은 알약에, 항생제가 추가된다고 인터넷에 나와있었다.

오늘 응급실에 갔을 때, 전해질을 나에게 주기 위해 굵은 바늘이 팔 속으로 들어왔다.

금속의 느낌이 소름끼쳤고 꽤 뻐근했다.

어렸을 때,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주사를 하도 맞아서, 바늘이 무덤덤하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또다시 바늘이 너무 무섭다.

아기가 잘 못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임신 초기에는 찾아보지 않았던 태아보험을 다시 알아보게 되었다. 상담사분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대충 알아보고 보험을 드는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험을 간략하게 비교하려고 마음먹은지 12시간 만에 드디어 의자에 앉았다.

내 상황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엄마는 박사과정을 하며 나를 가졌는데, 그 때 공부하느라 바빠서 힘든 것도 몰랐다며, 나도 일을 열심히 하면 안 아플 수 있다고 말해왔다. 엄마도 참 대단한게, 한 살 터울인 오빠를 돌보며 나를 지켜냈다는 거다. 나는 엄마처럼 강하지 않은가보다.

어제는 눈물이 많이 났다.

응급실에서 아가 초음파를 보는데 눈물이 주룩 흘렀다.

의사선생님이 나가시니 흐엥하고 목소리가 터졌다. 최대한 조용히 울고 싶었는데 간호사께서 '어렵게 가진 아이인가봐요'라고 말해주셨다.

왜 눈물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눈물이 났다.

남편은 그게 안도의 눈물이었던건 아닐까 추측했다.

하지만 초음파를 보는 나는, 여태 활발히 움직이던 아이가 심장만 콩닥거리는 채로 자고 있는듯이 가만히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사실 이건 걱정할 것도 아니지만 그냥 걱정이 되었다.

빨간 피를 보기 전에는 아이가 너무 활발해서 탯줄이 엉켜서 질식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태동이 너무 자주 있어서 아기가 너무 잠을 안자는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사람들은 활발히 움직이는 아이가 건강하다고 말했다.

인터넷의 누구는 태동을 느끼지 못해서 불안하다고 했다.

엄마가 되려니 걱정스러운게 너무 많았다.

이번에 아이를 잃게 된다면, 나는 아이를 또 가질 수 있을지 두려웠다.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것이 두려웠다.

응급실에서 본 아이들이 내 아이의 경험이 되는 것을 상상하니 소름끼쳤다.

아직 얼굴을 보지도 못했는데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아가랑 기억을 쌓게 된다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둘을 낳아야지~! 라고 했던 내가, 처음으로 아기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을 품었다.

임신을 하면서, 나에게 자잘하게 불편했던 일상은 아주 크게 다가왔다.

나는 눈화장을 하거나 나와 잘 안맞는 선크림을 바르면 스 선크림이 눈까지 내려와, 하루종일 눈이 시리고, 따갑고, 부셨다. 화장을 시작하던 대학생 때부터 그래서 꽤 익숙했던 일상이고, 화장을 하지 않는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던 부분이다.

나는 항상 따뜻한 5월의 정오를 바라보는 것을 힘들어했던 것 같다. 눈이 많이 부셨는데, 눈을 뜨고 있으면 햇빛 알러지가 돌아서 기침을 하곤 했다.

이 부분도 예전부터 있었던 증상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핸드폰을 조금만 해도, 티비를 조금만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화면을 보며 나타나는 초기 증상은 눈 뒤쪽이 뻐근하고 참으면 안되는 고통이 생긴다. 그걸 참고 계속 화면을 보면 두통이 시작되는데, 한 번 머리가 아파오면 꽤 오랜 시간 아파해야한다. 가끔은 치아도 아프다.

화면을 보면 속이 울렁거려서 구역질이 났다.

음질이 좋지 않은 소리가 매우 거슬렸고, 아무래도 좋지 않은 속을 더 안좋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수 있었던 부분이, 지금은 큰 장애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고, 회사에서 업무를 하기 힘들어했다. 근무 시간을 줄여주었어도, 화면을 보는 시간 자체가 아주 힘든 시간으로 다가왔다.

뱃속의 내 아가도 모든 자극이 너무 크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부터는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특히 무거운 금속 뚜껑이 떨어지는 소리가 거슬렸고, 배를 쿡쿡 자극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제 새벽 이후,

아침에 또 빨간 피를 봤다.

어차피 병원에 가도 받을 수 있는 응급처치가 없기에

병원에 갈지 말지 하다가,

어느 사람의 일기를 보고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양수가 새면 큰일이니, 이것에 대한 확인을 받기 위한 절차였다.

병원 선생님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초음파도 봐주셨다. (사실 선생님은 필요없다고 생각했으나, 아기가 잘 있다고 나를 안심시켜주기 위한 용도였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복귀.

다음부터는 이번 피를 기준으로, 더 양이 많아지면 오고,

안그러면 집에 있어도 된다고 (오느라 쉬지를 못하니)하셨다.

집에 와서 또 코 하고..

어느덧 이 생활이 패턴이 되었다.

오히려 잠을 자느라 무리하는 느낌이었다.

누워있으면 할게 없어서 (눈아파서 핸드폰도 못한다) 잠을 자는데,

이제는 더 이상 잘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아파서 디클렉신을 먹고 (나는 입덧약을 먹으면 두통도 완화된다. 비록 바로 처치가 되지는 않지만..) 뒹굴다가 또 잠이 들어버렸다.

또 자버린 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두통은 사라진 느낌이었다.

귀여운 롤로도 오늘따라 나를 더 챙겨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프다고 느끼는지,

옆에 와서 붙어있어달라는 내 말을 잘 들어줬다.

지금은 자다가 깬 새벽.

컴퓨터 앞에 앉으니, 빼꼼 내가 보이는 곳으로 와서 나를 보며 자고있다.

글쓰고 화장실다녀왔는데 또 피가 났다.

얼른 침실 가서 잤다..

자고 일어나니 정오..!

잠을 이렇게 오래, 자주 자는것도 참 대단하다

왜냐면 자다가 깨서 바로 컴퓨터 앞으로 가서

이 글 쓰고 피 보고 바로 자러 가고..

아가가 잘못되면 안된다는 생각에 미친듯이 잠을 잘 수 있는게 참 신기하다.


피를 본 이후, 의사 선생님께서 유트로게스탄 질정을 처방해주셔서 꼬박꼬박 넣고 있다.

아침에 보면 두부같은 찌꺼기랑 물같은게 나오기도 하는데, 그 물을 보면 혹시 양수일까 무서운 느낌이 든다.

인터넷 검색해본 결과로는

두뷰같은 찌꺼기는 질정 캡슐이 덜 녹은거고,

투명한 물같이 나온거는 약이라고 한다.

양수는 리트머스지 색이 다르게 변한다고 해서,

예전에 사놨던 리트머스지를 찾아다녔다.

지난 금요일은 미리 신청했던 병가가 끝나는 날이었다.

오늘은 월요일. 새로 2주 병가를 신청해야해는 날이기도 하다.

지금은 새벽이고, 이따 출근 시간을 기다려서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려야 한다.

진단서를 받았던 지난 금요일에 미리 병가 신청을 했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괜히 눈치보느라 (마지막까지 경과를 지켜보다가 연락을 했다는 최후의 반론) 최후의 시간까지 끌다가 연락을 하는게 참 힘들다.

주말 내내 월요일날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무슨 말을 할지 시나리오를 떠올리는게 참 편히 쉴 수 없는 환경을 내가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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