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변화: 주위로부터 듣는 말

by 박모카

반짝이의 예정일은 할로윈 근처다. 이제는 할로윈 관련 굿즈를 보면 자동적으로 반짝이가 생각난다. 특히 호박꿈을 태몽으로 꿨던 터라, 호박을 보면 특히 더 생각난다.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생긴 것이 설레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더 크다. 무조건 반사적으로 아가가 떠오르는데, 이 소중한 존재가 없었던 시간이 또 다시 오지는 않을까 막연한 두려움이 생긴다.

나에게 이렇게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아예 무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할 수 없기에) 자유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에게 이렇게 큰 행복을 주는 존재는 그만큼 깊은 슬픔을 줄 수도 있는 존재이기에 두려움이 공존한다.

한 편, 아가를 품고 있는 내 몸은 나에게 분배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적으로 바뀌었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만 알고,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던 내가 이제는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전의 나는 열정과 젊음을 불사지르며 하고자 했던 것을 많이 할 수 있었고, 그에 따른 체력과 정신력이 있었다.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선택을 해야하고 집중을 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욕심이 많았던 만큼 에너지도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한 번에 하나의 일에 밖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생각의 흐름이 느려지고, 금새 피곤함을 느낀다. 내 머릿속에서의 시간은 다른사람보다 빨리 지나간다. 별 것 아닌 것 처럼 보이던 일도 시간을 어마무지하게 잡아먹는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나에게 에너지란 이제 한정된 자원이기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 집중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벌써 일주일에 한 번씩, 두 달 정도 뵌 분이 있다.

60대의 싱글 여성인데, 아가를 낳는 것이 무서워서 아기를 안 낳았다고 한다. 심지어 결혼에 대한 두려움도 커서 결혼도 안했다니, 그녀의 두려움은 상상을 넘는 것 같다.

그 분은 나를 볼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어휴~ 아프겠다~~'

나를 보면 저절로 아픔이 떠오르나 보다.

같은 말을 일주일에 한 번씩 보고, 볼 때마다 3번 정도씩, 아픔을 리마인드 받으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임신 초기 때는 아픔을 상상하느라 괴롭다가, 이제 막달이 된 지금은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게 되어 (아기는 이미 내 배 안에서 엄청 컸고, 어떻게든 나오게 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랄까) 아픔에 대해 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두렵지 않으세요?'같은 당연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마주 하곤 하는데 제발 이런 말은 안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가 엄청나게 나온 사람이 되면서 이 말은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이고, 들을 때마다 '아 맞아 아가가 나오는 상황은 아프겠자', 혹은 '출산 과정이 두렵기는 하지'를 상상하고 인정해야 한다.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두려움을 만드는게 꽤 달갑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억지로 떠올리게 만드는 느낌이다.


몸이 점점 힘들어진다.

오늘은 자꾸 위액이 올라와서 (20분에 한번꼴로) 힘들었다.

보통 아기 낳기 2-3주 전부터 힘들다던데, 나도 이제 그 시기가 온 것 같다.


브라질에 사는 네이마르라는 축구 선수가 혼전임신으로 아들을 데리고 왔을 때의 이야기라고 한다. 네이마르의 아버지는 뜻밖의 아기를 보고 살짝 당황했지만, 곧이어 '아기를 기르는 것은 쉽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세대만 생각해도, 형제가 4-8명 씩 있는 것이 흔했다. 나도 이런 것을 보고 아기를 낳는 것은 쉽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나를 포함한 요즘 사람들은 임신, 그리고 육아가 엄청나게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힘들고 몸이 괴로운데 노동은 어떻게 했는지 상상이 안갔다.

이에 대해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았는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요즘 세상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더 예민해진 것 같다고.

나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심한 입덧 썰을 들으면 나는 안 그럴 것 같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살짝 몸이 안좋아지면 '나도..?'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여태 들었던 힘들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입덧에 집중하다보면 지금 이 상황이 너무 힘들고 감당이 되지 않을 것 처럼 느껴진다. 일터에 나가서 일을 하다가 토하면 어쩌지? 큰일이 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도 생겨서, 최대한 방어적인 태도를 갖추게 된다.

육아는 더 심하다. 말을 조금 늦게 트는 아이가 있으면 곧바로 주위에서 '언제까지는 말을 해야한다던데~', '옆집의 누구는 신동이라서 언제부터 말을 했다던데' 등 지금 알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정보만 쏙쏙 골라 말해준다. 하지만 이들은 육아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정작 아기가 친구 아기를 만날 곳은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엄마에게 '이 때 쯤이면 이런걸 해야한다더라'는 정보는 잘 들려와도, 막상 아기 친구들을 만들어주려면 그에 상응하는 장이 없다. 2-30년 전 쯤만해도, 동네에 나가면 우리는 친구가 있었고 풀이나 밭에서 놀 수 있었다. 도시에 사는 현재의 아가들은 그런 것을 체험할 틈이 없다. 엄마랑 꼭 붙어있거나, 누군가에게 맡겨지거나가 최대의 옵션이다. 또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줄어들었다.

친구를 만난다고 해도 이제는 차별이 생기기도 했다. 비싼 아파트 동네의 놀이터에는 다른 지역의 아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꽤 평범한 모습이 되었다. 아기들도 '우리 아빠가 할머니한테 벤츠 사주셨다. 너희집은 어떤 차 타?' '우리집은 40평인데 너네집은 몇 평이야?'와 같은, 어른이 할 만한 질문을 던진다. 또래 친구를 만나도, 가족의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진짜 의미의 친구가 되지 못할 경우의 수가 많아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의 우리는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을 이전 세대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솔직히 이런 상황은 책에서나 읽는 것, 혹은 나랑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정말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항상 손가락 마디가 아프다. 평상시에도 아프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으로 자다가 무릎 인대가 아파서 깼다.

생각해보니 그 전날에 평소 걷는 것보다 더 많이 걸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깨달아서 그런가, 걷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예전에 여행다닐 때는 남편이 다리아파서 못 걷겠다고 징징거릴때에도 나는 더 걷고 싶어하던 사람이었다.) 이제 다리가 아프다고 생각이 들었다. 발바닥도 아픈 것 같고, 잘 못걸어다니겠다는 생각이었다.

갑자기 몸무게가 늘어나서 그런지, 안 걷다가 갑자기 많이 걸어서인지. 어떤 이유에서든 인대가 아픈 것은 반갑지 않았다.

80대 외할머니한테 손가락 마디 아픈 것 나도 이제 겪고 있다고 말하니 할머니는 아프긴 하지만 마디마디가 아프진 않다고 했다.


지금은 친정에 대부분의 시간을 내려와 있는데, 가족들이 나를 살뜰히 챙겨줘서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80대인 우리 고집불통 할머니도 이젠 '이거 더 먹어라'라는 말도 안하신다. (먹으래서 이거 먹고 있으면 다른거 먹어라 하며 무한정으로 먹이던 전형적인 우리 할머니. 내가 그 말이 스트레스가 된다고 하니까, 거진 90년간 쌓아온 고집불통을 무너뜨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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