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이 되기 전에 아기를 낳았다

by 박모카

30살이 되기 전, 아기를 낳고 싶다는 생각은 우리 엄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엄마는 박사과정을 하며 연년생 우리 형제를 낳아 길렀다.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우리 엄마가 했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치즈덕 짤


그냥 그렇게 생각하며 금전적으로나 태도나, 지식이 완벽하지 않은 채로 아이를 낳게 되었다. 나는 여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누리며 살았다. 아가도 딱 내 30번째 생일 한 달 전에 태어났다. 30세 이전에 아기를 낳고 싶다는 바람이 이루어져서, 그렇게 쉽게 삶이 살아지는 줄 알았다.




아기를 낳고 나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기는 너무 자주 깼고, 보호자를 시도 때도 없이 찾았다.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써야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회사가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웃기지 말라고했지만 회사는 정말 육아휴직을 반려했다.


나는 계약직이 끝난 시점이었다. 남편이 일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남편이 회사를 그만둬도 될 것 같았다. 상장을 앞두고 있던 회사라, 마음이 싱숭생숭했지만 결국 남편은 회사를 그만뒀다. 아기가 태어난지 몇 개월이 되지 않은 시점이다.


이렇게 해피엔딩이었으면 좋았으련만. 남편은 회사를 나오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노라 했다. 그것은 자기의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은 배워 본 적이 없는 남편이었다. 기술을 배우는 시기가 필요했고,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는데, 오히려 주말부부가 되었다니 글로 적으면서도 이상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이 도약을 할 준비를 하는 시기라고 믿고 있기에 오늘을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주중에 혼자 돌이 되지 않은 아기를 보며 우울감이 찾아왔다. 매 달 들어오는 돈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나는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차라리 내가 복지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남편이 집에서 아기를 돌보자는 생각이었다. 나는 회사에 취직하면, 바로 육아휴직을 쓸 생각이다. 그러면 둘이서 아기를 같이 볼 수 있으니 안정적이지 않을까 싶다.


일자리를 알아본지 몇 달 째. 재택근무를 하는 곳이나, 월급을 많이 주는 곳으로 알아보아서 그런지 취직이 바로 되지 않았다. 내가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보이스피싱같은 곳에서 돈을 많이 주겠다며 연락이 오기도 했다.


취업이 되지 않자, 나는 기초생활수급자신청을 했다. 정부에서라도 보조금을 최대한 받아서 생활을 이어나가보자는 생각이었다. 3개월을 기다리니, 우리는 주거급여 수급자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부모님집에 무상으로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매달 받는 돈은 없었다.


이렇게 포기할 순 없다며 매일 정부지원금을 알아보다가,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건가. 나에게 주어진 아주 잠깐의 숨돌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의 가치를 돌멩이처럼 쓰는 느낌이었다. 이 시간에 좀 더 발전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걸 깨닫기 전의 나는 당장 노역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정부지원금으로 숨쉬는 방법 두 가지를 몇 달 동안 찾아보았지만 소득이 없었던 터였다. 생각의 전환 이후, 나는 내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오히려 잘 되었다며 나를 다독였다. 명상을 하고, 이모티콘을 만들어보고, 글을 썼다. 사실 이런 활동은 몇 년째 꾸준히 해오고 있었지만 작은 불씨는 곧 꺼졌다. 이를 아예 그만둘 수는 없기에 다시 작은 땔감을 하나씩 모으는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태생이 비관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 혹은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거나. 신기하게도 글로 상황을 쭉 적어 내려가보니, 이 상황에서 계속 뭔가를 시도하는 내가 긍정적인 사람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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