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모카 May 04. 2024

풍족한 삶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돈이 많다면'

'내가 갑부의 자식이었다면'

'하루에 천만원을 써야한다면'


이런 상상을 가끔씩 하곤하지 않는가?


당장 먹고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고 나면, 그 다음은?


우리의 비루한 몸뚱아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내가 입을 수 있는 옷도 한 번에 한 한 벌 밖에 못입고,

먹는 것도 하루에 2kg 이상의 음식을 먹지는 못 할 테다. (반박시 당신 말이 맞음!)

얼굴에 바를 수 있는 화장품도 일 년에 몇 통 못 쓴다.


나에게 쓸 물건을 아무리 많이 산다고 해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있다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간도 유한하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단련할 수 있는 시간 역시 한정되어 있다.

우리에게 아무리 돈을 많이 투자하고 싶어도, 오로지 나에게만 들어갈 있는 돈은 어느 정도 이상을 쓰기 어렵다.


부동산을 산다면?

이 역시, 우리의 몸은 하나이기 때문에,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은 유한하다.


그렇다. 한 사람에게 차고 넘치는 양 이상의 돈을 필요로 하는 곳은 기업이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 기업을 운영하면서 투자로 몸을 불려나가는 이유는 뭘까? 계속해서 돈을 버는 활동을 한다는 것은, 세상과 인터렉션을 한다는 뜻이며, 이는 야기치 못한 사건 사고를 야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을 잃게 할 부스럼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시도한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자가 먹고 살기에 충분한 양의 돈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는 뭘까?


도파민 때문이다. 뭔가를 성취하면서,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소통하면서 나오는 도파민을 잊지 못한다. 세상에 내가 존재한다는 발자취를 남기며 삶에 이유와 원동력을 찾는다.


무엇보다, 가난에 허덕이며 사는 것보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이 더 괴로울 때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삶에 이유를 매일 찾아 나선다.


종교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불교에서는 사원을 빗자루로 쓸어 깨끗히 하는 일과, 간호사에게 좋은 말씀을 전도하는 행위가 동등하게 여겨진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 일에 무겁고 가벼움을 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내가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면, 오늘은 아무 의미 없는 하루였다며 허탈해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르게 생각해서, 매일 행복한 나날을 사는 것 보다, 불만족을 느끼며 살다가 행복감을 느끼며 오르락 내리락 사는 삶이 더 풍요로운 것일까?


진지해진 집중력 흐트러트리기


이전 23화 월 천을 벌 수 있겠다! (2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