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병이 있는 것 같다. 심각하게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본인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상황을 왜곡해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이곳에 살면서 살고있는 방을 더블부킹을 당했다. 두 달 동안 언제든지 쫒겨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지냈다.
나와 함께 더블부킹을 당해서 새로 이사 온 사람도 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아주머니는 새로 온 그에게 인터넷에 올렸던 방 값보다 35%나 더 높게 값을 달라고 요구하고, 집에 사람들 동의 없이 CCTV를 설치하고, 계약서 내용에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본인이 피해자라며 새로 온 사람을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풀타임으로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까지 전화해서 이 사람은 나쁜사람이며, 앞으로 내용증명은 직장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중간에 낀 새우 마냥, 여기 저기서 같이 얻어터졌다. 솔직히 이 싸움에 끼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도마위에 오른 생선 같았다. 나에 대한 얘기가 100% 거짓이었기에,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관심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있었지만, 부당하게 얻어터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내 방에서 희끗한 검정 머리를 발견했다. 누가 봐도 흰 부분이 많고 곱슬거리는 것이, 집주인 아주머니꺼라는 것이 명확했다. 이런 머리카락의 주인은 아주머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사람이 없을 때 방에 몰래 들어온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구석진 곳까지 돌아다닐 줄은 몰랐다. 나는 소름돋아 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 모습을 본 옆방에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그만 좀 하라며 빈정거렸다. 내가 수시로 아주머니한테 화가 나있는 상황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냥 화를 자꾸 내는 사람이랑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듯, 내가 소름돋아하며 호들갑을 떠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이해를 했다. 뭔가 오랫동안 참아왔던게 터진 느낌이었다.
평소에 우리는 9살 차이가 나도 허물없이 지내는 편이었다. 동생은 장난으로 '죽을래!!'라며 손을 올리는 제스쳐를 하곤 했다. 나도 낄낄거리며 우리 제법 친해졌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빈정거림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녀가 처음 보는 제 3자가 있는 상황에서, '예~ 예~ 무서워라. 이제 그만.'이라며 혼자 시비를 걸고 혼자 단락하는 상황이 영 못마땅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너 말투가 왜 그러냐며 따지지 않았다. 굳이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나는 내가 인격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대응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한 편으로는, 늙어서 이빨이 빠져버린 아빠 사자마냥 힘없이 터덜거리는 모습을 애써 위로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조금의 생각 끝에, 이렇게 행동하는 동생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난 더 이상 이 친구와 놀지 않으면 된다는 간단한 결론을 냈다. 혼자 산책을 나가고,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더 나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굳이 내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최근에 부모님과도 이슈가 있었다. 아기 양육 문제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주는 무한의 사랑은 엄마에겐 독이 될 때가 있다. 훈육이 필요한 순간에 아이를 망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엄마에게 차근히 잘 얘기해서, 합의점을 구하려고 했지만 그 중요한 순간에 엄마는 자기 멋대로 행동했다. 내 의견은 듣지 않는 듯 했다. 또 그렇게 아기에게 나쁜 버릇을 하나 더 주는 것 같았다. 세월이 쌓이면 고집이 많아지고, 빠른 두뇌 회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야속하기도 했다. 자연의 이치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하긴 하지만, 이렇게 말이 안 통한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싫었다. 이 부분은 평생 해결되지 않을 숙제일까.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야 겠다. 항상 전진만 하던 내가, 잠시 멈춰서 상황을 바라보거나, 져주는 법을 배우는 단계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