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의 역할은 생각 이상이었다

by 박모카

어렸을 때 트라우마가 있던 사람이 첫 상담을 받는 전화였다. 그녀는 처음에 간단히 '5명의 목소리가 들려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타나요'라고 했지만, 상담을 할 수록 그녀의 골은 깊어 보였다. 3살 경 성폭행을 당하고부터 환청과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단순한 목소리가 아니라 5명의 무리가 끊임 없이 '죽어라!'라고 외치는 목소리였다. 자기 전 눈에 보이는 것은 자기를 성폭행하고 있는 낯선 사람의 얼굴들이었고 그녀는 자기의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환청은 8년 전, 미국에 와서 다시 성폭행을 당했을 때부터 더 심해졌다.


이번에 전화를 하게 된 계기는, 복용중이던 약이 잘 듣지 않아서였다. 용량을 2배나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약이 잘 듣지 않는 탓에 약을 바꾸고 싶다는 것이었다. 상담사가 이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환자에게 일단 먹고 있는 약을 먹으라고 그랬다. 환자는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수긍을 했다.


통역을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뭔가 답답했다. 상담사들이 내용 이해를 잘 못하고 계속 핵심을 피해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렇게 심적으로 약한 상태일 경우, 자기 주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조금 더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통역사의 재량으로 '약을 바꿔줄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을 추천해달라고 할까요?' 라고물었다. (여기서는 의사 선생님을 보기 위해서는 추천이 필요하다.) 사실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면 나만 손해지만, 뭔가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녀는 '네 그렇게 부탁드려요!'라고 좀 더 힘있는 어투로 말했다. 사실 그녀가 이 도움을 필요로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이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상담사의 지시대로 계속 먹던 약을 복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통역가의 재량과 책임이 꽤 크구나 느껴졌다. 아무리 통역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라고 해도, 진이 빠지는 긴 전화에 통역이 들어간다면 전화는 더 길어진다. 그래서 발화자는 말을 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가끔씩 통역사가 있다는 것을 까먹고 같은 말을 5분씩 반복하며 하소연을 하는 분이 있기는 하지만, 가끔씩은 말을 아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도 후자의 성격이기에, 이런 사람을 본다면 필요한 부분을 모두 충족하게끔 도와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오늘 전화에 참여할 수 있어서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내가 그녀에게 뭔가를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개인적으로 더 했으면 하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그녀를 오프라인에서 마주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을 수 있었을텐데라며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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