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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데이 Aug 15. 2024

부작용이 아니라 기회였다

인공수정 부작용 물혹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

인공수정 실패로 저는 생각보다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제 환경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그 비교로 인해 점점 더 골방에 들어가게 되었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고, 꿈을 꿔도 꼭 임신 관련된 꿈을 꾸고, SNS 알고리즘도 아이와 출산 관련된 것만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골방에 들어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이럴수록 될 일도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빠져나올 방법이 보이지 않았어요.


실패가 남긴 또 다른 부작용

제 정신은 괜찮지 않았지만 그래도 몸은 괜찮아서 바로 인공수정 2차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급했거든요. 그런데 인공수정 2차를 위한 초음파를 보는데 담당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거예요.

'원래 물혹 없었죠?'

'물혹이요? 네'


인공수정 실패가 남긴 건, 제가 감당해야 할 무게뿐만 아니라 부작용인 물혹이었어요.

'저 물혹 있어요?'

'난포를 여러 개 만들었는데 정상적으로 안 터지거나 하면 물혹이 되기도 해요. 원래 있던 건 아니라 금방 없어질 거예요'

'아, 네 이상 없는 거죠?'

'네네, 이번 2차는 자연주기로 진행할게요'

'자연주기요? 자연주기가 뭐예요?'

'과배란주사 등을 맞지 않고 원래 본인의 주기에 맞춰서 하는 자연주기 인공수정이에요'


자연주기 인공수정이고 뭐고 그냥 물혹이 생겼다는 거 자체에 짜증이 났어요. 하고 싶은 임신은 안되고 임신에 방해되는 무언가를 얻은 느낌. 그리고 그 무언가 때문에 제대로 된 인공수정을 진행하지 못하는 느낌. 진료실에서 눈물이 나올뻔한 걸 겨우 참고 나왔어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찔끔 나왔죠.


왜 그렇게 생각해?

답답한 마음에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니, 뭐 해? 나 이번에 물혹 생겼데 언니는 1차에서 바로 성공했는데 나는 실패에다가 물혹까지 생겼다네'

'물혹? 그거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야, 그리고 내가 1차에서 된 게 기적이야. 1차에서 되는 게 당연한 게 아니야. 괜찮아'

'맞아. 아무튼 그래서 2차는 자연주기로 한데, 주사 안 맞고'

'야, 너무 좋은데? 주사 안 맞으면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너 주사 맞는 것도 너무 힘들어했으면서 주사도 안 맞아서 좋고, 뭐 장점이 많은데? 물혹 덕분에 맥주 한잔 할 수 있고, 주사 안 맞고!'

'아? 그러네?'

'왜 우울한 거지? 이해가 안 되네?'


인생에 고민 없이 늘 긍정적으로 사는 언니는 저와 생각하는 게 달랐어요. 같은 상황을 두고 우울한 측면만 보는 게 아닌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거죠. 안 그래도 실패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짜증이 제 삶을 갉아먹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손쓰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저도 생각을 다르게 해 보기로 했어요.

'나 주사 맞기 그렇게 무서워했잖아. 근데 주사를 안 맞고도 인공수정을 할 수 있다고? 오히려 좋은데? 그리고 몇 달 동안 시원한 맥주 한잔 못 먹은 게 좀 아쉬웠는데, 약도 안 먹고 주사도 안 맞으니 잠시 시원하게 맥주 한잔 즐길 여유가 생기겠는데?' 이렇게 말이죠.


한 번에 마음이 싹 풀린 건 아니었지만,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제 속이 너무 작아져서 작은 상황에도 짜증을 내고, 혼자 열받아하고, 말투도 툴툴대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생각을 조금만 다르게 하니 그 속 좁은 제 마음이 조금씩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난임시술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난임시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성의 자궁 상태도, 남성의 정자 건강도 아닌, 바로 마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담당 선생님을 믿고 협력하는 마음.
작은 상황 하나하나를 조금 더 좋게 바라보는 마음.
그리고 마음이 건강해야 건강한 아이가 찾아온다는 믿음.
이게 가장 중요한 거였어요.

난임시술 실패, 슬프죠. 너무 슬픈데 슬퍼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음을 너무 잘 알잖아요? 우리, 슬픔은 아주 잠깐 맛만 보아요. 우리 마음과 생각이 건강해야 건강한 아이가 찾아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한 발짝 또 나아가요.

아! 참고로 물혹은 바로 다음 초음파 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답니다. 그저 지나가는 것에 크게 마음 쓴 게 민망할 정도로 그냥 없어져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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