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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데이 Aug 22. 2024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각박해지는 마음

꿈에서도 난임은 진행 중이다

인공수정 2차 진행 중인 어느 날. 며칠간 계속 꿈에 산부인과가 나왔습니다. 보통 아침에 눈뜨고 10초쯤 지나면 꿈은 언제 꿨냐는 듯 연기처럼 사라지는데, 이상하게 꿈이 계속 기억에 남았어요. 병원 진료 가는 날인데 일하다가 깜빡해서 병원을 못 가기도 하고, 갑자기 자궁에 혹이 보름달만큼 커지기도 하는 꿈이었어요. 안 되겠다 싶어 인공수정 2차 시술일에는 회사를 쉬어야겠다 생각했죠. 회사에 당당하게 휴가를 내기 위해 무언가 이 사실을 증명해 줄 서류가 필요했어요.


담당자가 누구지?

인공수정 직전 마지막 초음파를 보고 담당 간호사에게 시술확인서를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죠. 분명 1차 때는 원무과가 아닌 담당 간호사가 서류를 줬거든요. 그런데 원무과에서 받으라고 하셔서 '아, 그래요?' 하고 원무과로 갔죠. 그런데 원무과에서는 담당 간호사한테 받으라는 거예요.

'네? 저 담당 간호사가 원무과에서 받으라고 해서 왔는데요. 그냥 제가 인공수정하고 있다는 서류 아무거나 주시면 됩니다.'

'지금 인공수정 2차가 안 끝나고 진행 중이시잖아요.'

'네'

'그러면 시술확인서 발급 자체가 안됩니다.'

'그래요? 지난번에는 시술 끝나서 받았던 거군요. 그러면 그냥 제가 인공수정 받고 있다는 서류 아무거나면 되는데요'

'그러면 진료확인서를 받으셔야 하고, 담당 간호사에게 발급받으셔야 해요'


그저 회사에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쓰기 위해 내가 인공수정을 받고 있다는 증빙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뭔가 소통이 안 되는 느낌에 답답했습니다. 저에겐 시술확인서든 진료확인서든 증빙만 하면 되고, 누가 서류를 주냐도 상관없는데 말이죠. 어찌어찌해서 담당 간호사가 진료확인서를 작성해 주고, 원무과에서 진료확인서를 수령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죠.


진료확인서를 떼는데 2천 원이요?

그런데 진료확인서 발급 비용 2천 원이 발생하는 거예요. 시술이 끝나면 시술확인서는 무료로 주는데, 그 중간에 서류를 뗀다고 해서 2천 원을 내라니. 갑자기 답답한 마음이 확 올라왔습니다.

'아, 내가 언제부터 2천 원에 이렇게 예민했었나? 아니지, 내가 지금 2천 원에 예민한 게 아니라 나라에서 난임비 지원 다 해주는 것처럼 하더니 오늘 지원비 제외하고 결제한 금액만 10만 원이 발생해서 그랬나? 아니지, 병원 한 번 오면 맨날 1시간 넘게 기다리는 그 시간에 화가 났나? 아니지, 그저 인공수정 당일에 회사 한번 쉬려는데 복잡한 절차에 짜증이 났나?'


2천 원을 결제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4,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었습니다. 서류발급비의 2배가 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냥 지금 내 눈이 세상을 곱게 보지 못하는구나

'돈? 병원비 내야지, 서류 비용 내야지. 필요한 사람이 내는 거지 뭐 누구를 탓하겠어? 진료 대기? 해야지. 아이 갖고 싶은데 어쩔 수 없지. 서류? 내가 시술 중간에 받을 수 없는 서류를 달라고 한 게 문제였네. 서류 목적을 정확하게 얘기했어야지. 회사? 서류 못 내면 회사 가는 거지 뭐.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네'


오늘 하루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임신이 조금 늦어져도 제 마음은 분명 평온한 줄 알았는데, 꿈속에서의 저는 결코 평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요? 이제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늘 좋은 측면을 바라보기로 다짐했는데, 그렇게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진짜 속마음은 그렇지 못했나 봐요.

오늘 전 답답함의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다른 것을 탓하는 하루를 살았어요.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는데 말이죠.


인공수정 한번 비임신으로 종결했다고, 제 삶이 종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조금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조금 더 여유있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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