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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별아star a Mar 01. 2019

예술의 도시 피렌체의 사랑 이야기 <냉정과 열정사이>

13개국 26개 도시  유럽 여행기

처음 걸려온 너의 전화, 처음 한 데이트 약속, 만나기로 했던 찻집. 처음 같이 본 영화. 맘에 드는 음악이나 책을 찾으면 나는 누구보다도 네게 먼저 전했어.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었지. 너 어렸을 적의 이야기. 줄곧 고독했다는 것. 넌 네가 머물 곳을 찾고 있다고 했었지.


연인들의 성지 베키오 다리(사진 옥별아)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Between Calm and Passion, 2001)에 나오는 대사이다. 열아홉 풋풋한 첫사랑의 아름다움을 담은 장면들과 사랑의 시련을 나타낸 장면들.


헤어짐과 아픔, 실연과 상처의 극복. 사랑의 과정들 모두를 음악과 미술에 담은 영화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이탈리아의 피렌체의 멋진 모습들을 담고 있다.


영화 속 베키오 다리

피렌체의 르네상스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두우모 성당과 피렌체의 가장 오래된 다리로 14세기에 지어진 베키오 다리 등, 거리 곳곳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피렌체를 멋스럽게 표현하였다. 


두우모 성당


남자 주인공은 미술 작품을 복원하는 그림 복원가가 되기 위해 피렌체 공방에서 복원 일을 배우고 있는 준세이이다. 홍콩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가 일본인인 아오이는 자신의 모국을 알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 온다.



열아홉, 둘은 대학교에서 만나 깊이 사랑한다. 그러나 아오이가 준세이에게 말도 없이 아이가 생긴 것을 알리지 않고 홀로 지운 뒤 준세이에게 통보를 한 것을 계기로 둘은 이별하게 된다. 이후 준세이는 아버지가 아오이가 집안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였다는 누명을 씌워 아오이를 압박하여 떠나게 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아오이를 더욱 그리워한다. 그리고 아기는 자연 유산된 것이었다는 사실도.


이후 아오이도 이탈리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준세이가 아오이를 찾아가지만, 아오이는 지난날의 상처를 모두 지운 듯 연인과 행복한 모습이다. 그 모습에 준세이는 일본으로 도망치듯 이탈리아를 완전히 떠나버린다. 준세이가 떠난 이탈리아, 연인과 행복해할 아오이지만 그녀는 왜인지 공허해 보이는 모습이다.


피렌체 도시의 모습


영화에는 대표적인 두 작품이 눈에 띈다. 이탈리아 화가 루도비고 치골리(1559~1613)의 작품으로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 1590>,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 Ecce Homo, 1607>이다.
르네상스가 저물어 가는 시기 사실주의적 감성을 담은 바로크 미술 주의의 예시이기도 한 그의 작품들이다.

 

1.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린 여성이다. 예수를 만나 귀신을 쫓아내고 그의 후원자가 되어 그의 길에서 제자들과 함께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모두 지켜본 증인이다. 참회와 진정한 회개로 믿음을 얻은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 치골리의 작품이다.


영화의 준세이는 사랑하는 연인과 아이를 잃은 슬픔과 죄책감으로부터 구조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를 용서하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죽음과 부활, 소실과 복원, 상실과 회복. 영화에서 그림이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복원되고 싶었던 그의 감정과 사랑, 관계의 소망을 담은 미술작품의 의미. 그러나 영화 초반부에서 <회개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결국 복원되지 못한다. 이는 아오이와의 관계 회복, 그리고 그가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 성모 승천


후반부의 <성모 승천>은 준세이가 복원을 완성한 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다. 이는 아오이와의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는 복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현재를 살아내고 있는 준세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잘못과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 나약함을 마주함으로써 자신과의 화해를 이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상처를 잊기보다는 그것을 십자가 지고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온전한 나의 몫으로. 준세이에게 아오이는, 그리고 태어나지 못한 자신의 아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복원은 곧 나 자신의 재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너져갈 듯한 감정을 몇 번이고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준세이.
아오이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후로, 과거에서 머물고 있던 준케이. 무너져버린 감정을 이겨내고 현재를 마주해야지만 오히려 아오이와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아오이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준세이는 오래전, 둘이 연인 사이일 때 아오이가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에 피렌체 두우모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


르네상스의 꽃, 두우모 성당(사진 옥별아)



"Duomo in Florence is dome for the lovers. A place to pledge their eternal love".


"피렌체의 두우모는 연인을 위한 곳이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곳이지. 언제쯤 같이 올라가 줄 거지?"
"피렌체의 두우모에?"
"응"
"언제?"
"먼 훗날"
"먼 훗날이라니?"
"이를테면 십 년 후"
 "십 년 후라. 우리는 서른이 되어 있을 거야".
"21세기. 우리는 변해 있을 거야 둘 다".
"그렇지 않을 거야. 무엇이든".
"정말?"
"우리는 변함없이 같이 있을 거야".
"준세, 약속해 줄래? 나의 서른 살 생일은 피렌체의 두우모에서".
"그래, 약속해".



그는 스승의 장례를 계기로 피렌체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흘러 아오이의 서른 번째 생일이 다가온다.
준세이는 그날의 약속을 마음에 품으며 두우모에서 아오이를 기다린다.



아오이는 지금의 연인과의 인생을 지킬 것인가, 과거의 첫사랑에게 돌아갈 것인가? 아오이는 놀랍게도 준세이 앞에 나타난다. 아오이가 여전히 연인과 함께인 줄 아는 준세이, 그리고 피렌체 친구 집에 때마침 놀라웠다는 아오이는 여전히 엇갈린다.

"자신의 머물 곳은 누군가의 가슴 속 밖에 없어".
머물 곳은 '장소'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이라는 아오이 친구의 조언.


그녀는 정말 연인과 함께일까? 그런데도 준세이를 만나러 나왔을까?

피렌체 공원에는 그들이 첫 키스를 나눈 아름다운 음률로 연주했던 거리의 첼로 악사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 냉정과 열정사이 OST - Between Calm and Passion
환영과 같은 순간이었다. 신의 선물인 듯 그들은 첫사랑의 환희와 설렘을 다시 느낀다.


마치 완벽히 흠집 없이 복원된 미술품처럼 감정이 회복되고, 그들은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사실 아오이는 그 연주자에게 미리 부탁을 했었다. 피렌체에서 꼭 연주해달라고. 아오이는 연인과 헤어진 지 오래였고, 홀로 이태리에 머물며 준세이와 약속한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10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생을 걸었던 아오이. '준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라는 고백과 함께 연인과 끝낸 뒤 그녀는 진정 자유를 느낀다.



준세이는 깨닫는다.
'우리의 기적은 단지 너의 기다림이었을 뿐이라고'.
아오이는 왜 그리 냉정해야 했을까, 솔직하지 못했을까.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현재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너를 지금 잡을게'.
떠난 아오이를 준세이는 먼저 가서 기다리고, 그 둘은 비로소 웃는다.


냉정하기만 한 아오이, 그녀는 열정적으로 준세이를 기다리고 사랑했었다. 스스로도 모를 만큼 열정과 냉정을 오고 가며 첫사랑을 지킨 아오이. 그리고 그런 그녀를 마침내 알아준 준세이. 


냉정은 아오이가, 열정은 준세이라고 해석되곤 하나, 나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오이의 냉정은 과거를 차분하게 한다. 그리고 열정은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내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냉정과 열정 그 공간을 가득 메워주고 있는 정직함과 순수함을 가진 준세이. 준세이가 있기에 아오이의 사랑은 완성된다.  



어쩌면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순간순간을 살았던 둘, 비로소 둘이 하나가 되어 완성되는 사랑이야기 <냉정과 열정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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