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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건강 Sep 14. 2020

도심에서 한 발짝 달아나기 그리고 뜻밖의 힐링

by Stay Cool

포장마차 잔치국수에 이끌려 귀곡산장까지

한 때 야간 드라이브를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회사에서 드디어 밥값을 제대로 하기 시작하던 시절, 잦은 야근으로 친구들과 약속 잡기가 쉽지 않았다. 친구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결국은 금요일 밤 야간 모임이 종종 성사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탈을 꿈꾸며 그렇게 금요일 밤 야간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그날도 이유없이 기분이 들뜨는 한 여름 금요일 밤이었으니, 차를 몰고 교외로 향했다. 팔당대교 근처 담백한 국수와 맛있게 익은 열무김치 반찬으로 유명하다는 포장마차가 드라이브의 목적지였지만 그 곳에 들른 적은 없었다. 대신 서종리의 낯선 밤길을 여기저기 쏘다녔다. 아직 서종리에 전원주택 단지들이 들어서기 전이라해 떨어진 시골길에는 정적과 어둠만 가득했다. 

내비게이션도 그다지 똑똑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특히 인적 드문 시골길에서는 갑작스레 GPS수신을 멈춰 버리기 일쑤였다. 그날 밤 마침 그런 순간, 충동적으로 처음 가보는 길로 핸들을 틀었다. 산길은 점점 좁아졌고 인적은 커녕 가로등도 하나 없는 산길에서 불쑥 ‘귀곡산장’ 안내표지판이 나타났다. 간이 쪼그라 들었다. 당시 한창 인기있던 코미디 프로그램의 코너명을 재빠르게 가져다 쓴 펜션이겠거니 하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직진. 귀곡산장 앞에서 유턴이나 시도해 봐야겠다 생각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산속으로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더듬더듬 산길을 다 빠져 나올 때까지 표지판에서 3km 거리에 있다고 알려준 귀곡산장은 보지 못했다. 참았던 소름이 훅 돋아났다. 혹시 어둠 속에 표지판을 놓치고 지나친 건 아닐까 싶어(그런 거면 좋겠다 싶어...) 그 여름에 다시 한번 같은 길을 찾았다하지만 산길로 접어들게 했던 그 갈림길도귀곡산장 표지판도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일은 두고두고 우려먹는 여름밤 리얼 공포스토리가 되었다.


도시, 너는 그곳에 머물러라 

그렇게 도시에서 달아나 교외를 쏘다니던 여름의 한중간, 광복절을 하루 앞둔 일요일이었다. 휴일이 월요일까지 이어지는 터라 에어콘이 흘려주는 옅은 찬바람에 몸을 맡기고 널부러져 있었다. 수영장에 첨벙첨벙 뛰어 들고 싶은 그런 날이었지만 습도 90%에 가까운 바깥 공기에 피부가 닿는 상상만으로도 지치는 기분이었다. 


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서핑에 빠져있던 또다른 친구의 초대로, 한강에 서핑을 하러 가자고 했다. 한강에서 서핑이라... 한강공원 야외수영장이 아니라, 그냥 한강. 그 구정물 같은 한강에 들어가 서핑을 한다고...?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적당히 채비를 해서 집을 나섰다. 뚝섬 윈드 서핑장으로. 


서핑...윈드서핑이라...그걸 하러 가는 건가?

그날 우리가 도전한 건, Stand up paddle board. 


내 키보다 큰 보드 위에 올라가, 균형을 잘 잡고 일어서서 노를 저어 한강 위를 유영하는 SUP (Stand up paddle board). 강사님께 보드 다루는 방법, 리쉬를 발목에 거는 법, 보드를 물 위에 띄우고 올라앉은 후 균형을 잡고 일어서기까지 배우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보드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균형이 잡히면 한 다리씩 무릎을 펴고 가슴을 활짝 펴고 일어선다. 시선은 저기 멀리 수평선...아니 저만치 간격이 벌어진 도시의 빌딩 숲을 향한다. 패들링을 한다. (노를 젓는다)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내가 가는 방향과 속도를 내 의지대로 조정할 수 있고, 언제든 잠시 멈추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나만의 작은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았다. 가끔 등 뒤에서 바람이라도 살짝 불어주면 그것 또한 어찌나 기분 좋은 보너스인지. 


서울 한가운데서 이렇게 놀 수도 있구나그러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와 이렇게 거리감을 가질 수가 있구나.’ 한 치 떨어져서 바라보니 도시가 주는 복닥거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작 패들링 몇 번 했을 뿐이고, 거리로 본다면, 1km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아주 다른 곳으로, 제 3의 공간으로 옮겨간 듯한 신기한 경험이었다. 


SUP Yoga도 있다고 하신 강사님의 말씀이 이해가 됐다.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히고 패들링이 익숙해지니, 처음 봤을 때는 내 한 몸 얌전히 걸쳐두기에도 비좁아 보였던 보드가 요가 매트 1장 보다 훨씬 넉넉한 크기라는 것이 인지되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오후에 시작했던 터라, 곧 저녁 어스름이 시작될 것 같았다. 금새 어두워질까 살짝 겁이 났지만,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패들을 보드 위에 걸쳐 올려놓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멍하니 강 건너편을 바라봤다. 아무런 소음 없이 큰 윤곽으로만 그려진 해질 녘 도심의 모습이 여유롭게 보였다. 몇 시간 전에 뚫고 지나온 번잡스럽던 도시의 모습이 아니었다더불어 그 도시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여유로운 마음이 생기는 듯 했다.

무엇이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아야 오래도록 아름답게 볼 수 있는가 보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다 보이고 다 들리고, 그렇지만 다 이해할 수는 없으니 힘들 수도 있겠다…라는 도 터지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 이번 여름 휴가, 정말 오랜만에 다시 SUP 하고 싶다. 이번에는 보드 위에서 느긋하게 요가 동작도 몇 가지 곁들여 가면서, 뭔가 새로운 득도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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