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한독의약박물관
2년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대유행. 전 세계는 지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바이러스. 그런데 과학과 의학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던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바이러스와 싸웠을까?
# 1년에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호열랄’
1821년 한 해에만 10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괴질이 조선 땅을 침략했습니다.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고통’을 준다는 이 병은 바로 ‘호열랄’, 지금의 ‘콜레라’입니다. 콜레라는 급성 설사가 주요 증상인 전염성 감염질환입니다. 중증의 탈수가 빠르게 진행되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콜레라는 주로 분변, 구토물로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감염됩니다. 오염된 손으로 음식을 조리하거나 식사할 때 또는 날것이나 덜 익은 해산물에 의해 감염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콜레라는 원래 인도의 풍토병이었는데, 19세기 이동수단의 발달과 제국주의의 확산으로 전 세계에 퍼져 수백만 명의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호열랄이라 불렸지만 콜레라는 사실 호랑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콜레라의 중국어 표기는 ‘虎列拉[hǔlièlā 훠리에라]’, 일본어 표기는 ‘コレラ[cholera 코레라]’인데, 이들 용어를 음차해 ‘호열랄’로 명명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한국의 콜레라는 1821년 7월 평안도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1822년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전라도와 제주도, 함경도 지역까지 2년에 걸쳐 전국에 유행했죠. 이후에도 1894년(고종 32), 1941(고종 41), 1908년(순종 1)에도 전국적으로 콜레라 대유행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역병은 왕이 부덕한 탓?
과거에는 역병이 돌면 병을 피하기 위해 각종 의식이 시행됐습니다. 왕실에서는 역병 귀신이 물러나길 바라며 하늘에 제사를 올렸습니다. 또, 왕의 부덕을 탓하며 조세를 감면하거나 죄수를 풀어주고 수라상 반찬 수를 줄였습니다. 또, 역병의 치료법 및 예방법을 담은 각종 『벽온방(辟瘟方)』(전염병 치료를 위한 의서)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은 쥐 귀신이 몸 안에 스며들어 콜레라(서역:鼠疫/ 쥐통)에 걸린다고 믿었죠. 쥐 귀신을 잡기 위해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이거나 동짓날 팥죽을 끓어 먹기도 했습니다.
19세기부터는 근대 서양의학을 도입해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을 극복하려 했습니다. 고종황제는 1885년 조선 최초의 해양 검역을 위해 부산, 원산, 인천에 검역소를 설치했습니다.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에서는 콜레라 방역활동을 실시했고 1895년에는 콜레라 환자를 위한 피병원(避病院)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1902년, 관립의학교에서 <호열랄병예방주의서>를 발행했습니다.
# 서양의학을 이용한 최초의 전염병 예방서
<호열랄병예방주의서>는 서양의학을 이용한 최초의 전염병 예방서입니다. 콜레라 예방법 및 환자 관리법 등 총 9장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콜레라 예방법은 총 7장으로 서론, 콜레라균, 콜레라균의 침입경로, 인체의 자연방위(면역력), 콜레라의 유행, 일반예방법, 개인 예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또, 2장으로 환자 관리와 소독법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제1장 서론>
호열랄병은 두려운 전염병이지만 예방의 방법을 알맞게 사용하면 박멸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므로 예방에 전력하여 개인으로는 병에 걸리지 않고 단체 유행을 막아야 한다. 이에 호열랄병예방주의서에는 이 병의 원인을 먼저 설명하고 그 예방법을 독자들에게 알려 그 원리를 여러 가지에 응용하여 예방법의 효과를 완전하게 하고자 하는 바이다.
# 조선시대 K방역, 호열랄병예방주의서
<호열랄병예방주의서>는 100년도 더 된 의학서적이지만 지금 시행되고 있는 코로나 방역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을 만큼 과학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6장의 일반예방법에는 토지 위생상태 개선을 통해 발병 원인을 차단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지금의 출입국 검역 및 입국자 자가 격리 조치와 같이 발병 원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활동과 비슷합니다. 또 코로나의 지역 전파 차단을 위해 시행한 코호트 조치와 같은 조치가 호열랄병예방주의서에도 있는데, 호열랄병 유행지에 대한 통제를 통해 확산을 방지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선제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하는 K방역과 같이 호열랄병 의심환자에 대해서는 빠른 확진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제7장 개인 예방법이 있습니다. 손가락을 입에 넣지 말고 깨끗한 물에 손을 문질러 씻기,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않기 등의 내용이 있는데,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개인 위생과 사회적 거리두기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