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한독의약박물관
한독의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알록달록한 색상과 화려한 문양의 주전자. 부유한 귀족들만 사용하던 향유나 술을 담았을 듯한 이 도자기는 사실, 18세기 스페인 약국에서 약을 보관하던 용기입니다. 당시 중세 유럽의 약사들은 이처럼 화려한 유색 도기를 약국 선반에 장식하는 것이 로망이었다고 합니다.
중세 유럽은 약제학이 발달한 시기입니다. 이 때문에 약을 담을 수 있는 용기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 13~14세기 유럽은 서아시아에서 많은 양의 용기를 수입합니다. 하지만 수입만으로는 필요한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유럽에서 용기를 자체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유럽에서 제작된 약 용기 중에서도 ‘주석유도기(朱錫釉陶器)’가 특히 발달합니다. 주석유도기란 도기 표면에 물이 투과하지 않게 하기 위해 유약이란 방수층을 입히는데, 이 방수층의 주 성분이 주석인 도기를 말합니다. 주석유도기는 형태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폭이 좁은 원통형은 알바렐로(albarello), 손잡이가 달린 물병형은 보칼레(boccaie), 손잡이가 있는 대형 항아리는 브로카(brocca), 플라스크형인 피아스카(fiasca) 등이 있습니다.
한독의약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유색도기약주전자는 브로카에 해당합니다. 초기 약 항아리의 문양은 아랍 계통의 전통적인 문양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점차 종교 또는 세속적인 정경을 묘사하거나 과학자 또는 성인의 모습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약항아리를 주문하는 병원이나 수도원의 요구에 따라 그 기관의 문장이나 상징물 등이 장식되기도 했습니다.
유색도기약주전자의 몸통에는 라벨 장식이 있습니다. 이 같은 라벨 장식은 약 항아리의 문양 장식 중 보편적으로 사용됐습니다. 도기 표면에 리본 모양의 띠 장식을 가로로 그리고, 그 안에 약 이름을 써넣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15세기 중반경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 도기를 장식하기 위해 다양한 광물성 안료를 사용했습니다. 푸른색은 산화코발트, 녹색은 동, 보라색이나 검정색은 망간, 붉은색은 철, 노란색은 안티몬이 사용됐습니다.
이 도기에는 흰색 바탕 위에 꽃, 잎, 나비 문양 등을 넣었으며 파란색, 초록색, 주황색, 밤색을 사용해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병 입구 아래쪽에는 초록색 끈을 꼬아 주둥이에 묶듯이 입체적으로 제작했습니다. 몸통 앞면에는 브레토니카(SYD-BRETONICA)라는 약 이름이 쓰여 있어 이 약을 (bretonica) 담은 약주전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브레토니카는 당시 광범위하게 사용했던 허브 일종의 약초입니다.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이 원산지이며, 약국이나 병원에서 직접 재배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5월은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 가기 좋은 달이죠. 오랜만에 거리두기도 해제되면서 여행 계획을 세우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충북 음성에 있는 한독의약박물관을 방문해보세요. 한독의약박물관 1층 국제 전시실에는 더욱 다양하고 화려한 약 항아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