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일상건강 매거진
소화제 광고로 보는 한국의 근현대사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의식주라 합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저는 ‘식’을 뽑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인 음식! 식생활 문화의 변화를 살펴보면 당시 시대상과 생활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식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화제 광고도 마찬가지라 합니다.
<1950년대> 전쟁 직후 힘들기만 했던 그때 그 시절, 수입품은 곧 품질 보증
지금이야 Made in KOREA가 품질을 보증하는 표식으로 여겨지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피폐한 삶을 살아야 했던 1950년대.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앞세워 선진국 반열에 오른 서양 국가들을 동경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선진국에서 만든 제품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50년대 훼*탈 광고는 독일제 소화제임을 내세우며 품질의 우수성을 강조했습니다. (참고로 훼*탈은 현재 국내 제품이지만 당시에는 독일 훽스트사로부터 수입해 판매했다고 합니다.)
<1960년대> 힘겨운 보릿고개, 배 터질 때까지 많이 먹는 것은 부의 상징
60년대까지만 해도 5~6월은 힘든 시기였습니다. 지난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시기. 그래서 이 시기를 보릿고개라 불렀습니다. 1960년대 정부에서는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우리 모두 잘 살아보자며 1962년부터 1981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합니다. 드디어 대한민국 산업화의 태동이 울려 퍼진 것이죠. 1960년대는 가난에서 벗어나 돈을 벌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배가 터질 때까지 많이 먹는 것이 부와 행복의 상징이었죠. 그래서 소화제 광고에는 ‘소화제가 있으니 마음 놓고 잡수세요’라고 합니다. 과식을 조장하는 광고라니!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라며 건강을 위해 소식을 강조하는 요즘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땐 그랬죠.
<1970년대>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제품의 신뢰가 중요해지는 시기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나온 1970년대. 눈부시게 빠른 경제성장으로 한국은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합니다. 1970년대는 수입 자유화를 비롯해 외국 자본의 도입으로 다양한 국적의 제품들이 국내에 소개됩니다. 제품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광고를 통해 제품의 특장점을 강조하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제품의 신뢰를 높이려 했습니다. 지금도 많이 쓰는 광고 전략으로 유명인을 광고에 등장시키는 방법이죠. 그런데 지금과 차이가 있다면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아닌 사회 저명인사들이 등장합니다. 1970년대 광고를 보면 한글학자 양주동, 여류 산악인 김정심, 요리 연구가 왕준연, 바둑기사 조남철, 독일상사 대표 힐데브란트 등이 출연했습니다. 요즘과는 많이 다르죠?
<1980년대>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고기에서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고기로
1980년은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큰 획을 긋는 시기입니다. 전쟁 이후 가난에 허덕이던 한국은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며 전 세계에 눈부신 경제 성장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식단이 육식 중심으로 변합니다. 정부의 돼지고기 수급정책의 영향도 있었는데, 쇠고기보다 값싼 돼지고기가 유통된 영향입니다. 아무나 먹을 수 없던 고기가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고기가 된 것이죠. 식생활 문화가 변화하면서 소화제의 성분도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는데, 1986년 훼*탈은 이담 및 지방소화촉진작용을 강화한 훼*탈 포르테를 출시하며 ‘강력 소화제’를 강조했습니다.
<1990년대> IMF 외환위기 그리고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
성장가도를 달리며 선진국 대열에 곧 진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한국. 하지만 1997년 한국경제는 큰 위기를 맞이합니다. 당시 한국의 기업들은 무분별한 차입과 과잉투자를 벌였습니다.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외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자 국내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고, 결국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합니다. 이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파산과 부도를 하고 대량 실직이 발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이때, 하지만 밥을 굶는 건 50~60년대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외환 위기 이후 학교 운동장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정부는 물론 기업과 시민들은 결식아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1999년 소화제 광고에는 ‘강력한 소화제’와 같이 제품의 특장점을 강조하는 문구가 없이 결식아동 지원 캠페인에 대한 내용만 있습니다.
<2000년대> 위기를 극복한 한국, 소득 수준 향상으로 성장하는 외식 산업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던 한국은 2001년 8월 23일, 3년 8개월 만에 IMF 외환위기를 극복합니다. IMF 극복을 위한 전 국민 금 모으기 운동은 해외 언론이 앞다퉈 보도할 정도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죠. IMF 이후 한국은 IT산업을 중심으로 다시 경제 성장의 시동을 걸기 시작합니다. 개방과 경쟁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며 국제교류가 활발해지는데 식생활 문화도 자연스럽게 변합니다. 2000년대는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외식 산업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가속화됩니다. 음식 종류도 다양해지며 소화불량의 증상도 식사 후 가스가 차서 더부룩한 답답함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에 2000년에는 가스제거 성분을 강화한 훼*탈 플러스로 업그레이드합니다. 훼*탈은 ‘강한 소화제가 더 강해졌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당시 인기 있었던 난타 퍼포먼스를 광고에 도입해 세간에서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2010년대> 웰빙 문화의 확산, 과식은 더 이상 부의 상징이 아니야
2000년대 초반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웰빙(Well-being)’ 트렌드는 2010년대에 이르러 문화로 정착합니다.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지향하는 식생활 문화로 사람들은 무농약, 친환경 등 건강한 식재료를 찾는 것은 물론 패스트푸드에서 슬로우푸드로, 배터지게 많이 먹자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건강하게 먹자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웰빙 문화에서 과식은 더 이상 부의 상징이 아닌 게 됐고, 소화제가 있으니 마음껏 먹으라던 말은 더 이상 시대에 맞는 광고 카피가 아니었죠.
오랜 기간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하던 소화제 광고는 이때부터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당시 정형화되어 있던 의약품 광고의 틀을 깬 광고로 평가 받으며 각종 광고 대화에서 수상한 소화제 광고가 있었습니다. ‘내 마음의 소화제’란 광고로 심야식당을 홀로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입맛까지 아버지를 닮았다고 읊조리는 남성, 비를 맞으며 헤어진 사랑에 대한 원망으로 밥을 억지로 먹는 여성이 나옵니다. 이후에도 일주일 내내 서로 다른 직장 선배들과 점심 순댓국을 먹어야 했던 신입사원의 이야기, 열정적인 코믹댄스로 오디션에 참가했지만 심사위원들이 단박에 탈락시킨 취준생의 이야기 등 ‘힐링’을 주제로 한 감성적 소구의 광고들도 나옵니다.
<현재> 바야흐로 유투브 시대, 식생활을 넘어 생활상을 반영하는 소화제 광고
최근 MZ세대가 소비문화의 주체가 되며 MZ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광고들이 주를 이룹니다. 특히, 유튜브가 새로운 정보와 문화 공유의 장으로 자리 잡으며 소화제 광고 역시 짧고 임팩트 있는 디지털 광고를 선보입니다. 디지털 광고의 특성상 단 6초 만에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이때 유머 코드를 주로 사용합니다. ‘요즘 식사 스탈’ 광고에서는 사자성어를 재치 있게 해석하며 야식 배달(십시일반: 10시가 되면 일단 반응이 온다)과 맛집(좌고우면: 좌측엔 고기 우측엔 면) 등 요즘의 식생활 문화를 소개합니다.
최근에는 훼*탈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마음껏 먹어도 Eat's OK란 주제로 광고를 선보였습니다. 1960년대 ‘훼*탈이 있으니 마음껏 드세요’란 과식 조장 광고처럼 보일 수 있지만, 먹는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이번 학기 학고 먹고, 작심삼일 맘만 먹고, 통장 잔고 충격 먹고, 배 터지게 잔소리 먹고’ 등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답답할 수 있는 상황을 중독성 있는 랩과 안무로 MZ 세대에게 It’s OK(괜찮아)라며 응원을 합니다.
광고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란 말이 있는데, 이처럼 50년대부터 이어온 소화제 광고 속에서도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