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한독의약박물관
교회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있다면 절에는 인자한 모습의 부처님 불상이 있죠. 우리나라에도 절과 박물관에 다양한 불상들이 있는데, 경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불국사의 석굴암에는 정교함과 웅장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석가모니상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사실 부처는 유언으로 자신을 개인적으로 숭배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지금은 불교를 생각하면 불상의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초창기 불교는 부처의 유언에 따라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 이곳에 서양인 얼굴의 불상이 있는 이유
불교 불상 문화가 시작한 중심지는 간다라 지역이었습니다. 간다라는 인도의 서북부, 지금의 파키스탄 부근인데 이곳은 동서 문화의 교류가 활발했던 곳이었습니다. 간다라 지역은 헬레니즘 문화가 번성했습니다. 헬레니즘이란 ‘그리스와 같은 문화’란 뜻으로 제우스, 헤라 여신과 같은 상상 속의 신들을 형상화해 이를 숭배하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불교도 이런 헬레니즘 문화에 영향을 받아 점차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간다라 지역에서 만든 불상 중에는 서양인의 얼굴을 한 불상도 있다고 합니다.
# 부처는 한 명인데 불상의 모습은 여러 개?
상상 속 존재가 아닌 실제 눈으로 보고 기도할 수 있는 불상이 생기자 불교는 더욱 번성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처의 가르침을 거스르고 부처를 신격화하고 숭배한 것이 불교 발전에 큰 영향을 준 것이죠. 이후 불교의 교리는 더욱 발달하고 부처의 성격도 구체화됩니다. 석가모니불, 무량수불,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약사불, 미륵불 등 사람들은 자신의 염원에 따라 기도하는 대상을 달리하면서 지금과 같이 다양한 모습의 불상이 생기게 됩니다.
# 질병과 번민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금동약사여래상>
한독의약박물관 소장품 중 8세기 신라 시대에 제작된 <금동약사여래상 (金銅藥師如來像)>이 있습니다. 약사여래상은 질병과 번민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입니다.
사실 불상만 보고 종류를 구분하는 건 전문가가 아니면 어렵습니다. 하지만, 약사여래는 비교적 알아보기 쉬운 편입니다. 불상의 손에 쥐어져 있는 물건을 지물(持物)이라 하는데, 약사여래상은 약잔이나 약병을 들고 있습니다. 이 약사여래의 왼손에도 약잔 모양의 지물을 들고 있습니다.
부처의 손 모양을 수인(手印)이라 하는데 여기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금동약사여래상의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고 손바닥을 밖으로 해 어깨 높이까지 올리고 있습니다. 이 수인은 두려움을 없앤다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의미합니다.
# 청동약사여래상 아닌가요?
금동약사여래상의 외형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원래 이 불상은 금동으로 제작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과 같은 청색으로 변했지만 머리, 옷 주름, 발, 받침대에는 금칠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얼굴에는 제3의 눈이라 불리며 깨달음의 상징인 백호(白毫)가 있습니다. 또, 겉옷에 해당하는 대의(大衣), 안에 걸치는 천의(天衣), 치마인 군의(裙衣)는 모두 좌우대칭이어서 엄격한 느낌이 들지만 흘러내리는 옷 주름은 부드럽게 표현했습니다.
도톰한 발을 떠받치는 팔각형 연화좌(蓮花座)는 상하에 연꽃을 배치했으며, 대좌(臺座) 아래에는 다시 받침대를 만들고 8개의 안상(眼象)을 뚫었습니다.
불상은 속세와 중생을 구제하고자 세상에 오신 부처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비록 부처의 유언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중생들이 불상을 보고 기도하며 마음의 위안을 받고 힘을 내는 모습을 본다면 부처님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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