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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건강 Dec 23. 2022

영화 <올빼미> 속 '주맹증'은 과연?

by 배뚱뚱이

이번 달에 편집팀에서 받은 주제는 지난 11월에 개봉한 영화 <올빼미>에 나오는 질병에 대해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영화관을 잘 가지 않게 됐습니다. 예전에 어떤 영화를 보고 스토리에 너무 심취해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뭘 그 정도까지?라 할 수 도 있지만, 영화로 인한 불필요한 감정 동요를 피하고자 역으로 스토리가 훌륭한 영화나 소설 등을 잘 안 보려 합니다. 죽음을 자주 마주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이런 다소 황당한 노력도 필요하게 됐네요. 그래도 <올빼미>에 어떤 질병이 나오는지는 인터넷 서칭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질병으로 시작해 질병으로 끝나는 영화더군요.  영화에 대한 공식 줄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맹인이지만 뛰어난 침술 실력을 지닌 ‘경수’는 어의 ‘이형익’에게 그 재주를 인정받아 궁으로 들어간다. 그 무렵, 청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8년 만에 귀국하고, ‘인조’는 아들을 향한 반가움도 잠시, 정체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던 어느 밤,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는 ‘경수’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진실을 알리려는 찰나 더 큰 비밀과 음모가 드러나며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다. 아들의 죽음 후 ‘인조’의 불안감은 광기로 변하여 폭주하기 시작하고 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경수’로 인해 관련된 인물들의 민낯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데... 

# 밤에만 볼 수 있는 주맹증? 팩트체크!

주인공 천경수(류준열 분)는 ‘주맹증’ 이란 병이 있습니다. 맹인이지만 맹인이 아닌 사람으로 나옵니다. 낮에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불빛이 없는 밤이 되면 앞을 볼 수 있죠. 주맹증의 의학용어는 Hemeralopia (Day blindness)입니다. ICD(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10코드라 하는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질병 코드에서는 H53.11 이란 고유의 코드를 가진 실존하는 질병입니다. 주맹증이 흔한 질병은 아니고 (야맹증에 비해서는) 그 원인이 상당히 다양합니다. 주맹증은 눈 안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세포 중 원추세포(Cone)가 제 역할을 못하는데 간상(Rod)세포는 기능이 살아있을 때 나타난다고 합니다. 원추세포는 빛의 삼원색 RGB (Red Green Blue)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세포입니다. 물체의 색 뿐만 아니라 형태, 명암도 감지합니다. 간상세포는 약한 빛을 감지합니다. 원추세포보다 훨씬 빛에 민감하게 반응해 아주 어두울 때에는 물체의 윤곽을 보는 기능을 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사실 실제는 훨씬 더 복잡하지만) 밤(조명이 거의 없는)에 기능을 하는 것이 간상세포입니다.

이처럼 어떠한 원인에 의해 원추세포가 기능을 못하는데, 간상세포는 기능을 잘 하면 주맹증이 됩니다. 주맹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백내장(특히, 중심성 백내장) 초기라 합니다. 주맹증은 실존하는 질병이긴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밤에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엄청 좋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낮에는 빛을 받아들이지 못해 시야가 깨끗하지 못하다가 밤에는 빛의 간섭이 적어져서 조금 물체가 보이는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밤에 궁궐을 날아다니 듯 뛰어다니는 천경수의 모습은 영화를 위한 약간의 픽션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저도 병원에서 주맹증 환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병 자체가 드물어 적절한 학술 자료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 갑자기 흥분을 하고 안면 마비가 생긴 인조, 구안와사

영화에서 인조 (유해진 분)는 갑자기 흥분을 하고 안면 마비가 생깁니다. 아마도 스트레스성 혹은, 흥분에 의한 뇌내 출혈(뇌졸중)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영화 <올빼미>에서는 '구안와사'가 왔다고 설명하죠. 

구안와사는 사극 드라마에서도 종종 등장하는데요, 다들 한 번씩 들어본 적 있을 듯 합니다. 저도 이번에 조사하면서 알았는데, 구안와사는 원래 잘못된 표현이었다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많이 써서 2014년에는 표준어로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구안와사의 원래 표현은 구안괘사 (口眼喎斜) 즉 입과 눈이 비뚤어져 기울어진다는 뜻입니다. 괘(喎)라는 한자가 ‘입 비뚤어질 괘’인데 그것을 사람들이 渦(와)와 헷갈리면서 구안괘사가 구안와사가 된 것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현대 의학에서는 구안와사와 정확하게 맞는 질환은 없습니다. 벨마비9Bell’s palsy)라고 불리는 7번 신경 무기력증/마비가 가장 비슷하지만 중추신경 이상에 의한 편측(한쪽) 안면마비 또한 아마 예전에는 구안와사로 불리지 않았을까 합니다. 구안와사의 원인은 생각보다 명확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이 증상을 ‘설명할 수 없는 증상(Unexplained episode)’이라 말할 정도입니다. 경험상으로 봤을 때 구안와사는 아주 큰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에 종종 발생해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하는데,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또, 단순 포진(Herpes simplex) 감염 내지는 상기도 감염(감기) 직후에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 이와 관련된 면역학적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됩니다. 그 이외에는 대상포진, 라임병 같은 감염성 질환이나, 길랑 바레 증후군 같은 선천성 질환에 의해서도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는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실제로 안면마비가 장년층이나 노년층에 새로 생겼다면 이는 뇌병변에 의한 것인지에 검사가 꼭 필요합니다. (신경과 진료를 추천드립니다) 


# 소현세자와 인조를 죽음으로 이끈 학질(瘧疾)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이목구비 일곱 구멍에서 모두 선혈이 흘러나와…’ 조선왕조 실록에 담겨있는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소현 세자는 ‘학질’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인조 역시 ‘학질’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영화 <올빼미>에서도 그렇게 설명하는데요...

학질은 현대의학에서 ‘말라리아’라고 합니다. 의과대학 과목 중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의사학(醫史學 medical history)란 학문이 있습니다. 의사학자들이 모여서 발행하는 대한의사학회지 2011년판에 (Korean J Med Hist 20 ː53-82 June. 2011) ‘학질에서 말라리아로’ 라는 논문이 있어 인용을 해보았습니다. 학질, 여기에 쓰는 한문 ‘학(瘧)’ 자는 오로지 말라리아에만 존재하는 한자입니다. 모질 학(虐)에서 부수만 (왼쪽/위쪽의 疒) 바꿔서 만든 한자인데, 사람을 모질게 학대하는 질병이라는 뜻입니다. 말라리아는 열이 계속 나는 것이 아닌 주기적으로 열이 발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원충의 종류에 따라 삼일열 (48시간마다 열이 발생) 또는 사일열 (72시간마다 열이 발생)로 구분됩니다. 

말라리아의 또다른 특징은 바이러스 질환이 아닌 기생충의 한 종류인 원충(단세포성)이 모기에 의해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모기에 물린 직후에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삼일열(P. vivax 원충에 의한)의 경우 모기에 물린지 1~2주, 사일열(P. Malariae)의 경우는 모기에 물린 지 40일은 지나서 증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병이 학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한 것이 제중원 기록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서양 의술을 도입해 진료한 제중원의 1886년 진료 성과를 보면, 풍토성 간헐열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간헐적인 열 증상)을 정리했는데, 매일 열 환자가 177명, 삼일열 환자가 171명 사일열 환자가 713명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중 삼일열 환자는 대부분 말라리아, 학질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기나나무(Quinine 퀴니네)라는 남미 콜롬비아/볼리비아 기원의 나무 껍질이 말라리아 치료에 효과적이어서 사용을 하고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이 퀴닌 합성 약물인 클로르퀸이 말라리아의 표준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클로르퀸에 듣지 않는 말라리아도 생겼는데, 이 경우 메플로퀸이란 약을 복용합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은 열병으로 사망을 하기도 합니다. 또, 이 원충이 지속적으로 적혈구를 파먹고 터트리고 다시 다른 적혈구 등에 들어가는 식으로 증식합니다. 손상된 적혈구는 모여서 비장에 부담을 주는데, 이 경우 비장 폐색(비장안 혈관이 막히는 증상) 또는, 비장 자체가 터져버리는 비장파열이 발생합니다. 다만 비장 폐색이 온다고 해서 영화에서 나오는 우리 몸의 모든 구멍으로 피가 쏟아져 나오는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2020년도 말라리아 환자 발생 지역별 분포 >

 말라리아는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감염병입니다. 아마 헌혈을 해보신 분들은 위의 지도와 비슷한 지도를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군 복무를 서부(경기도) 최전방에서 했거나, 강화도, 김포, 파주 등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헌혈을 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이 동네는 모기에 의한 말라리아 감염이 발생하고 있고, 혈액 속에 혹시나 이 말라리아 원충이 있을 수 있어 짧게는 1달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헌혈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북한에서 내려온 새터민들의 경우 전원 헌혈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북한 전역이 말라리아 발생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2016년 말라리아가 박멸되었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말라리아는 살아있는 전염병, 그리고 몇 안 되는 기생충 질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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