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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Aug 10. 2020

내가 춤 바람이 난 것은

춤의 시작 

작년 4월 이었다. 당시 나는 매주 월, 수, 금요일이면  퇴근 후에 수영장으로 쪼르르 달려가곤 했다.  회사에서 찌든 마음을 벗고 물 속으로 풍덩 빠져드는 게 좋았고, 무엇보다 다른 회원들과 꼬리를 물며 정신없이 헤엄치다보면 회사 생각을 잊어버리는게 좋았다. 1년차 딱지를 떼갈 무렵, 나는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봄날, 서늘한 바람이 살랑 거리는 밤이었다. 수영장을 빠져 나와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어떤 맥락도 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수영을 할 때가 아니야. 그래. 춤을 추러 가자"  영문학에 등장하는 개념 중 Epiphany (에피파니)라는 말이 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사건들 속에서 깨닫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어로는 '귀한 것이 나타난다' 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에피파니 였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는 막 초등학교를 시작할 무렵부터 춤을 추는 것을 좋아했다. 발레 하듯이 빙글 빙글 돌아도 보고, 손끝을 세워서 널리 팔을 뻗기도 하고. 가족들은 별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속 춤에 이끌렸다. 내 안에 꿈틀 거리는 무언가를 믿었고, 언젠가는 꼭 토해내고 싶다고 어렴풋이 생각해왔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청소년기를 지나면서도 댄스나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당시 내게 춤은 날씬하고, 주목받는 걸 즐기고, 시선을 받을 만큼 예쁘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그날 밤의 깨달음 이후로 나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가진 젊음과 건강함은 가장 소중한 것에 쏟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 다음주에, 강남의 한 입시 학원으로 향했고 그렇게 춤이라는 큰 돌이 내 인생에 굴러 들어왔다.


겨우 일년 전의 일인데, 왜 10개도 넘는 수업 중 왁킹을 선택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이전에 한달이나마 배웠던 힙합이나 걸스힙합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주말에 하는 수업이고 대충 시간표가 맞아 선택했을 테지만, 왁킹을 선택했던 것은 행운이 따랐다고 생각한다. 단지 정해진 안무 뿐만 아니라 움직임을 탐험하고 동작을 만들어가는 춤의 세계, 나를 내려놓고 자기 검열을 허무는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춤을 시작하고 춤을 출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무엇보다도 내 몸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절반은 거짓말이다. 당시 연습실은 두 벽면이에 거울이 붙어있는 널찍한 공간이었는데, 늘씬함과는 거리가 먼 내 다리를 볼 때면 바지의 허리춤을 끌어 올려 조금이라도 길어보이려고 애썼다. 오밀 조밀해서 눈에 띄지 않는 나의 이목구비에 한 숨을 쉬며, 다음 주에는 화장을 한 겹씩 더해보기도 했다. 중, 고등학생들과 춤을 추면서 나의 몸은 왜 저렇게 날렵하게 움직이지 못하는가 매번 자괴감에 빠졌다. 흥미롭게도 춤이 끝나고 밀려오는 행복한 피로감은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잣대와 자신의 몸에 대한 불만족을 압도하곤 했다. 


주말 밤, 수업이 끝나고 텅 빈 연습실에서 혼자 구르고, 연습복으로 바닥을 쓸다가, 불을 끄고 연습실을 나선다. 단단히 근육이 뭉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는 길에는 코끝을 스치는 공기가 알싸하게 나를 채운다. 일주일 중 가장 좋아하고 설레이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황홀한 기분을 나만 알 수 있다니 그저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고, 허벅지가 뻐근하도록 춤을 출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게 진심으로 감사해졌다. " 저 너무 행복해요!" 하고 누군가를 붙잡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몇년 전에 유행헀던 남자에게 참 좋다는 산수유 광고 처럼, '춤 좋은데정말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하는 답답한 마음인 것이다. 그 설레임이 소강되고 나면, 내가 지금 건강하고 내 마음대로 몸을 쓰고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깊이 남았다.


나에게는 여러가지 자아가 있다. 회사원 OO , 친구 OO , 둘째 딸 OO, 춤추는 OO, 글 쓰는 OO, 한국인 OO.  춤 추는 내가 점점 자랄 때마다, 다른 자아들이 위기 의식을 느끼는 지 고개를 들이밀며 아우성 치곤 한다. '춤을 춰서 어디에 쓸 건데?' 그럴 때 박민규 작가의 말을 생각한다. 


달리세요. 굴러가세요. 짐짓, 해 주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에서 멀리멀리 벗어나세요. 님의 귀에 이끼가 끼지 않게, 가슴속에 가득한 단팥이 새지 않게, 말입니다. 정체성은 어차피 찾아지지 않습니다. 세상도 마음도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니까요. 한 가지에 집중 못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모든 답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말씀하셨듯 우선 마음 가는 대로 차선도 마음 가는 대로 해 보는 것입니다.             

<태도의 말들 - 엄지혜> 중 박민규 작가의 인터뷰


그렇게 귀를 닫고 춤의 세계로 첨벙 빠져들 때면,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사랑스럽고 좋다. 지금의 간절함에 몰두 할 수 있는 스스로가 그렇게 자랑스럽고 용감할 수가 없다. 댄스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시간은 내 안의 뜨거움과 간절함이 태워지고 소진되는 순간들 이었다. 조금의 후회도 없었다. 춤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길어야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그 시간을 열심히 지켜왔고, 나를 위한 삶을 사는 기분이었다. 


싱가포르로 떠나면서 학원을 그만 둘 무렵, 공교롭게도 그 입시 학원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나의 춤 바람은 바다를 건너 싱가포르에서도 나와 함께 있다. 집을 구하기 전 임시 거처에서도, 회사 워크샵으로 떠난 말레이시아 어느 리조트의 방에서도, 우리 집 옥상에서도. 나는 오늘도 스텝을 밟고 고개를 돌리고 다리를 뻗는다. 가슴속에 단팥이 새지 않도록. 춤바람이 나를 떠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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