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 화해하기
나의 20대는 '화해' 야. 나 자신을 미워하고 모질게 굴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손을 내밀어 나를 더 이해해보기로 결심하는 여정이거든.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지. 화해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었어. 첫 번째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 두 번째는 마음 깊은 곳에서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라일리'라는 여자 아이의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이야기야. 영화 속에서 '기쁨'이는 '슬픔'이를 좋아하지 않아. 발랄한 기쁨이는 슬픔이가 왜 저렇게 칙칙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거든. 기쁨이의 눈에 슬픔이는 라일리의 행복에 방해만 되는 존재야. 하지만 라일리가 슬픔을 표현하고 공감을 받은 뒤 용기를 얻고 다시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자, 그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그렇게 슬픔과 함께하는 법을 배우게 되.
라일리를 지배하는 주된 감정이 '기쁨'과 '슬픔이었다면, 20대의 나의 마음 속에는 '멋진 나'와 '나약하고 불완전한 나'가 있었어. '멋진 나'는 회의 시간에 동료가 지적을 하면 당당하게 받아치거나, 모르는 게 있으면 모른다고 말하는 친구였지. 20대의 대부분은 '상처받은 나'는 '멋진 나'를 동경하고, 그게 내 원래 모습이라고 생각했어. 불완전한 나를 깎아내다보면, 멋진 OO 을 볼 수 있겠지 하고 말이야. 그런데 실제로 대부분의 순간에는 '불완전한 나'가 자리를 차지 하고 있더라고. 그 친구에게는 마음에 안 드는 점이 가득했어. 키도 작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자신감도 없었고, 늘 타인과 자신을 비교했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우리는 친하지 않았고 나는 그 친구를 인정하지 않았어. 툭하면 그 친구와 싸웠고, 비난했고, 그래서 베게를 눈물로 적신 적이 꽤 잦았던 것 같아.
어느 날, 상담센터를 찾아 갔어. 행복해지고 싶었거든. 웃는 모습이 따뜻했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
OO 씨가 내면아이를 잘 보듬어주고 칭찬해줘야 해요.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사랑해주고 무슨일이 있어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살 수 있어요. 그게 나 자신이 되어야 해요. 우울, 불안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통제가 아니라 수용의 대상이거든요.
지금 OO 를 괴롭히는 완벽주의, 비교의식,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마음은 당장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계속 발달되어 왔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이 폭포처럼 강력하게 흐르고 있겠죠. 그에 비하면 긍정적인 생각이라는 아주 작은 물줄기에요. 하지만 계속 작은 물줄기로 물을 흘리게 되면,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흘러 물의 흐름이 바뀔 거에요.
내 자신이 바보 같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면 선생님이 해 준 말을 다시 생각해. 그리고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말하기 시작했어.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허공에 외치는 힘없는 말이지만, 그렇게 말을 건네. 내가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인정하고 보듬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나를 그대로 받아 들이고 난 다음의 단계는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였어. 내가 원하는 걸 들어주는 거였지. 신기한 것은 마음의 목소리는 근육과도 같아.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신호를 보내는 거야. 때로는 강렬한 원함일 때도 있고, 벅차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해야겠다는 결심의 형태로 나오기도 했어.
'나 무슨 일이 있어도 외국에서 일하고 싶어. 방금 눈물이 또르르 떨어진 거 알아? 그거 네가 정말 원한다는 뜻이야.'
'춤을 배우고 싶어'.
'글을 쓰고 싶어. 근데 혼자는 못하겠어. 함께할 동료들이 필요해'.
'엄마에게 유럽을 보여주고 싶어'
그렇게 한 선택들은 엄청난 기쁨과 성장의 기회를 선물해 주었어.사실 바쁜 일상 속에서 치이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대끼다보면 그 목소리가 꺼질 듯 작아지는 순간도 있었지. 하지만 계속 목소리를 듣는 연습을 하다보니, 그 목소리는 끊기지 않고 계속 내게 말을 건넸어.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 OO 은 스스로와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자신을 사랑하게 된 그녀는 이후에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두 문장으로 이 글을 맺을 수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지. 아마 내일 오전 11시쯤 되면, '지금 스마트폰으로 딴 짓 하는 거야? 넌 너무 게을러. 월급 값 못하는 거야' 하고 날카로운 말들을 또 내뱉을 거거든. 아무리 나랑 화해를 해도 도돌이표 처럼 다시 갈등으로 돌아가. 하지만 그게 꼭 같은 지점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야.
악보의 세계에는 여러 줄임표가 있고, 그 중에 '달 세뇨'라는 표현이 있어. 세뇨 기호는 S와 ※ 표시가 합쳐진 것 처럼 생겼는데, 다시 돌아가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세뇨' 가 표시된 곳 부터 시작하라는 뜻이야. 자신과 모종의 화해를 하기 시작한 것이 내게는 일종의 희망으로 느껴졌어. 도돌이표를 그리다가도, 이상하게 앞으로의 나의 삶은 더 나아질 거라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거든. '최선을 다하는 나'는 마음에 들겠지만, 내일 회의 시간에 말을 더듬고 있는 나는 바보 같이 느껴질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기 시작한 이전의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야. 내가 나를 사랑하기로 결심한 순간 부터, 나는 '세뇨'를 찍고 있다고 생각해.
주춤할 지라도, 다시 원점 근처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분명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거라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돌아가지 않고 앞으로만 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