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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Aug 15. 2020

I hear you 의 힘

나의 귀한 모모에게 

안녕 앨리스,

 

앨리스는  앨리스가 되었을  새삼 궁금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생각나서 인지모험심 많은 씩씩한 소녀를 위한 이름 같거든요예쁘지만 흥미롭죠아마 앨리스가 미국에 가기  7-8 무렵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겠지요작명 센스가  좋으신  같아요


앨리스가 나의 세상으로 걸어 들어온  2018 10 무렵이었던  같아요하루 일과를 마치고 회사를 나서기 잠깐 화장실에 가는 길이었어요그때 맞은 편에서 앨리스가 환하게 웃으면서 걸어오는 거에요 순간 ' 사람 나보고 웃는 건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그리고 얼떨결에 뱃속에서  말이  튀어나왔죠. "우리 조만간 점심 먹어요!" 앨리스는 인사  소속이었기 때문에 영업 팀에서 일하는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었고우리는 업무를 함께  적도 없었어요그럼에도 앨리스는 "그럼요우리  잡아요언제가 좋아요?" 하고 반갑게 웃어주었죠

 

그때 이후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어요앨리스에게는 직장 동료 이상의 우정을 느껴요친구 같기도 하고 자매 같기도 하고요앨리스와 있으면 동질감이 들었어요. 우리는 경계에 있는 사람 같았거든요어떤 면에서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 한국과 외국 사이를 방황하고 있었으니까요저는  마음을 한국 밖에 두고해외에서 일할 목표 살아갔고앨리스는 평생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살아서 가끔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기분을 느끼곤 했죠정체성의 혼란으로 쉽지 않은 청소년기를 보냈음을 고백하기도 했어. 저는 영어가 완벽하지 않지만, 앨리스와는 영어와 우리 말과 섞어서 쓰면서 일종의  3 소통 방법을 쓰곤 했어요우리를 보는 누군가는 어쩌면 잘난척 한다고저게 무슨 말이냐고 생각했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저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때로는 영어만이  전달할  있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나를 의식하지 않고그저  마음에 있는 것들을 풀어 놓을  있었지요

 

지난 2싱가포르에서 일을 시작한  3개월이 되었을 무렵이었어요친구도 없는 타지에서 새로운 일에 적응 하다보니하루가 끝나고 집에 오면 내일이  온다는  무서웠던  같아요 날은 퇴근을 하고 도시의 전경이  눈에 내려다 보이는 우리  옥상으로 올라갔어요노을이 아주 예쁜 날이었거든요그런데 갑자기 하루 동안 쌓인 긴장이 풀리고외롭고 서러운 마음이 밀려오는 거에요얼굴이 젖도록 한참을 울었어요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어서 앨리스에게 SOS  쳤어요전화를 받은 앨리스가 얼마나  마음을 담아서  말을 건넸는지 생생히 기억해요


"I hear you"(그 마음 알아 라는 뜻의 영어 숙어)


I (나는) Hear (듣는다) You (너를)


내가 너를 듣는다는 말이  너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신기하지 않나요앨리스가  말을 해주고 나서 'I hear you'라는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아  끝에 두고 조금씩 곱씹었어요황송했어요누군가 나에게  말을 해준다는 것이요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만큼 설레더라고요앨리스는 유년시절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살았기 때문에 이방인으로서 겪는 혼란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어요제가 타지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겪는 불안정함과 우울함을 깊숙이 이해했죠"지금 힘든  너무 당연해요그러니까 그냥  하지 말아요그냥   있는 선에서만 열심히 하고잘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소연을   사실 앨리스가 처음은 아니었어요인기 없는 서비스를 팔고회의 시간에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들의 찌푸린 미간을 보고내가 도대체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너무 버거웠어요자신감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죠친구들을 붙잡고 구구 절절 나만 아는 사연을 늘어놓으며 우는 소리를 하곤 했어요착한 친구들은 내게 긍정적인 기운을 주거나일종의 해결책을 주었죠.  


"지금 힘들 다는 걸 보니 너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 외국에서 일하고 싶어 했는데 지금  곳에 있잖아정말 좋은 기회다." 그럼에도 마음속의 답답함과 두려움은 해갈이 되지 않았어요배부른 투정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오히려 입을  다물어야 겠다고 다짐 했어요

 

당신의 "I hear you"라는 말은  결심을 와르르 무너트렸어요그저 "얼마나 힘들겠어요" "  기분 너무  알아요하는 말들을 영어와 우리말을  가며 나를 토닥여주었지요1시간 동안 넉넉히 공감 해줬어요엄마의 다정한 말에 울음보가  터지는 어린아이처럼 내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무서웠는지 울면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나의 약한 모습을 앨리스에게 보여줬어요상처 입은 마음에 빨간 약을 바르고 하얀 연고를 발라준 것과 같았어요그날 개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생각이 나요.  요즈음 그때 보다  자신감을 갖고 계속 타지 생활을  나갈  있는 이유  하나는 앨리스가 나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그날  나는 경청의 힘을 보았어요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는 재주였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모모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일들은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모모가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모모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개, 고양이, 귀뚜라미, 두꺼비, 심지어는 빗줄기와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그들은 각각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모모에게 이야기를 했다. 

<미하엘 엔데, 모모>


모모를 읽으면서 앨리스를 생각해요들을  있다는  엄청난 재능이에요. 듣는 것은 나의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상대에게 주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금전적시간적 자유가 있는 사람이 더 여유가 많겠지만, 타인에게 마음을   있는 여유는 다른 차원이니까요사회 초년생 딱지가 여물어  무렵부터저는  시간과 에너지를 계산하는게 익숙해졌어요우리의 시간과 마음을 돈과 자원이라는 가치로 계산을   들어줄 여유는 바닥을 드러내요. 급해져요. 그래서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힘내라는 말이 아니라그저 옆에서 따뜻한 관심으로 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왠지 이번 여름에는 한국에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그때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글을 전할  있길 바라요건강해요

 

-2020 5 7. 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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