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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Sep 07. 2020

때로는 롤러코스터가 도움이 된다.

마음 답답한 날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요

혼자서 건강히 잘 사는 데에는 꽤나 많은 에너지가 든다.    

  

홀로 보내는 시간동안 생각이 많아지며, 이에 따라 감정이 널뛰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올해의 첫 반년은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시기였다. 회사에서는 잡음이 많은 비즈니스를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 분투해야 했고,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 맞춰진 나의 태도와 성격을 싱가포르라는 새로운 문화에 맞게 바꿔야 했다 (영어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Out of the comfort zone -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3년 동안 준비해서 왔으니, 성공적으로 외국 생활에 적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중압감은 점점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고, 이방인의 눈으로 새로운 땅을 탐험하던 내 안의 생명력이 어느 새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지난 달부터 싱가포르에서 꼭 가봐야 할 곳들을 나열해보기 시작했다. 매일 반복되는 풍경과 일상에 조금은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그 리스트에 낯선 이름들을 적었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지낼 때, '이 정도면 충분했어' 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나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목록에는 천장이 높은 웅장한 칵테일 바에 가보기, 창이 보드워크에서 노을 보기 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싱가포르의 유일한 놀이공원인 유니버셜 스튜디오였다.      



롤러코스터를 탔다.      


사막같이 해가 쨍한 날. 한여름 날의 놀이공원. 코로나로 위기를 맞은 놀이공원은 워터쇼도 없었고, 츄러스 등을 파는 노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으며, 일부 놀이 기구는 운행을 중단하고 있었다. 유니버셜이라는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망해가는 놀이공원에 가까워 보였다. 운영 중인 라이드는 10개 남짓이었고, 그마저도 스릴 있는 롤러 코스터는 3개 뿐이었다. 동행한 친구 J는 전날 밤새 술을 하도 마셔서, 고작 가족용 놀이기구 두 세개를 타고선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I am so fucked up" (망했다. 나 못타겠어)      


상관 없었다. 오히려 혼자 탈 생각에 신이 났다. 미친 년 처럼 소리를 질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죽을 것 같은 공포를 생생히 느껴보고 싶었다. 손이 땀에 젖어 촉촉해지고 롤러코스터가 상승할 때 몸이 뒤로 쏠려 떨어질 것 같은 기분 말이다. 발이 안 닿고 90도에서 뚝 떨어지는 그런 걸 타보면, 절벽 끝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놀이기구에 거꾸로 매달려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면, 다시 생의 감각이 살아날 것 같았다.     


사이론이라는 이름의 은색 롤러코스터는 바닥이 없으며 레일 아래에 매달려 주행하는 라이드다. 보기만 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라이드를 바라보면서 궁금해졌다. 요즘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생각에서 도망치고 싶은데 그럴 수 앖어서 너무 괴로운데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고 싶은지. 내 생명을 위협하는 물체 위에서 안전바만 달랑 잡고 있으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롤러코스터가 상승하면서 하늘이 내 품으로 들어왔다. 엄청난 속도로 바람을 가르는 느낌을 만끽하며 목이 메이도록 소리를 질렀다. 이 모든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도시의 불빛처럼 화려한데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도 많은 도시의 삶. 그럼에도 최대한 이렇게 살아있는 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6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생애 처음으로 이국 땅을 밟았던 그 여름. 미국 씨더 포인트 (Cedar Point) 놀이공원에서 보낸 하루였다. 미국에 도착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9월, 노동절을 맞아 교환학생으로 만난 친구들과 함께 놀이 공원에 갔다. 씨더 포인트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놀이공원이자 세계에서 롤러코스터가 제일 많기로도 유명했다. 입구로 들어서자 마자 사방에 포진한 무시 무시한 모양의 롤러코스터와 비명소리들은 마치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탄 롤러코스터에서 나는 튕겨져 나갈 것 같은 느낌에 온힘을 다해서 안전바를 붙잡았고, 목이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는 내가 집에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3시간을 달려서 왔는데. 친구들이 롤러코스터 타는 걸 구경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족용 라이드를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씨더포인트는 스릴 라이드의 천국이었다.       


그렇게 라이드 하나, 둘 씩 도장 깨기를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어떤 해방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친 라이드의 움직임에 긴장한 목이 뻣뻣히 굳어가면서도, 세상에 끝에 선 위기감, 누군가 나를 툭 치면 떨어질 것 같은 그런 기분에 아무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바람을 가르면서 피부에 와닿는 강한 바람에 정신을 못 차리고 흔들리는 몸의 균형을 잡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머지, 그 순간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무섭기로 유명한 롤러코스터를 마지막으로 탔던 기억이 난다. 그 라이드의 노선은 강가에 위치해 있었는데 천천히 엄청난 경사로 기구가 상승할 때,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이 참 예뻤다. 서서히 정점을 찍고 90도 가까이 방향을 내리더니 강변쪽으로 정신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꼭 물속으로 빠져들 듯, 밑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몸이 붕 뜨고, 철렁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조금은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다.



생애 처음으로 낯선 땅에서 맞은 30일. 미국은 냄새조차 낯선 곳이었고, 돌다리를 두드리듯 살금살금 경계하며 지내던 때였다. 나를 정신없이 패대기치는 롤러 코스터 위에서 안전바를 붙잡고 생각했다. 마음을 조금은 열어보고 싶어,  낯선 세계가 주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 조금은 과감하게 발을 내딛을 때 펼쳐지는 세계도 있으니까. 생각보다 라이드는 순식각에 끝나니, 너무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그냥 뛰어 들어보자고 말이다.       


요동치는 심장을 안고 라이드에서 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무는 해와 함께 분홍과 보라의 경계에 있는 하늘, 사람들의 환호성, 귀엽고 예쁜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굿즈들. 그게 뭐든 나는 푹 빠지고 싶어졌다. 겁내지 않고 다 겪어보고 싶어졌다. 한국에서의 나를 잊고, 적응 해야 된다는 압박감,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  그런 것은 다 잊고 그냥 하루 하루,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마치 동화 속의 성처럼 느껴졌다. 뉴욕을 모방한 거리와, 거리의 찻집과 과일 가게도 신기루 같았다. 여는 문조차 없는 가게와, 반점 하나 없는 장난감 바나나에서 감추려는 노력 조차 없음이 느껴졌다. 마법이 풀리면, 불이 꺼지고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놀이공원에서 누리는 찰나의 순간들이 참 좋았다. 다가올 월요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쏘다니는 주말. 조금은 시시한 놀이공원일지도 모르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얻은 선물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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